2020.9.16. (水曜日) “타자他者 ”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이거나 보이지 않는 그(녀)다. 1인칭은 2인칭의 반영이며 3인칭의 기억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1인칭으로 살다가, 점차로 가족과 친구를 통해, 2인칭과의 관계서 1인칭을 발견하고, 배움을 통해 3인칭에서 본 1인칭으로 다시 태어난다. 2인칭이나 3인칭을 의미하는 타자는 1인칭을 존재하게 만드는 전제조건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건국 초기부터 3인칭에서 본 1인칭을 훈련시키기 위해 시민교육인 ‘그리스 비극공연’을 그들의 정치적 삶의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여겼다. 우리시대 방송이나 공연처럼, 인간의 쾌락과 중독, 얄팍한 감정을 앞세운 재미를 추구하는 허망한 활동이 아니었다. 그리스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의 <탄원하는 여인들>은 기원전 462년 아테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초연된 비극작품이다. 이 연극은 아이스킬로스의 ‘다나오스 사부작’Danaid Tetralogy 중 첫 번째 작품이다. ‘사부작’은 고대 그리스 비극형식으로 세편의 비극과 한편으로 사튀로스 극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을 부르는 용어다. ‘탄원하는 여인들’ 이외, ‘이집트인들’, 다나우스의 딸들‘과 풍자극 ’아미모네‘는 현존하지 않는다.

아이스킬로스는 기원전 472년 <페르시아인들> 비극작품을 통해 아테네인들과 ‘야만인들’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그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페르시아인들로 상징하는 ‘타자’를 통해 자신을 보라고 촉구하였다. 그는 기원전 462년 <탄원하는 여인들>을 통해 아테네인들에게 좀 더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타자란 누구인가?’다. ‘페르시아인들’에서 아테네 사람이 한명도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듯이, ‘탄원하는 여인들’에서도 아테네인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나오스와 그의 오십 명 딸인 ‘탄원하는 여인들’은 모두 이집트인들이다. 이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당시 아테네와 경쟁관계에 있었던 스파르타 도시 ‘아르고스’로 찾아와 집단 난민을 신청한다.

아테네는 민주주의를 탄생시키고, 그리스 반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다른 도시들, 특히 테베, 코린토, 아르고스와 경쟁하고 있었다. 아테네는 페르시아 제국과의 전쟁을 통해, 자신이 가진 군사적인 능력과 정신적인 바탕을 확인하였다. 그리스의 여러 도시들 중 하나가 아닌 위대한 도시국가로 탈바꿈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시민교육이었다. 시민교육은 비극경연대회를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실행되었다. 특히 아테네라는 위대한 도시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있어야 했다. 아이스킬로스는 이 비극에서 아테네인들에게 묻는다. ‘시민이란 누구인가?’ 아테네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업차 잠시 방문한 방문객들, 활기찬 아테네 도시가 줄 경제적인 기회를 찾아 온 외국인 노동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인들은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었다. 그들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고양시키기 위해 원형극장에 앉아 있었다. 당시 원형극장은 만명에서 만오천명 관객들이 수용하였다. 아테네 사회는 소수만이 자유 시민이었다. 이들이 아테네 정치사회를 이끌었다. 대부분은 아테네를 방문하여 비극을 보러온 ‘외국인’이거나 일거리를 찾아 아테네로 이주해온 ‘노동자’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외국인’을 고대 그리스어로 ‘크세노스’xenos라고 불렀고 아테네에서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메티코스’metikos라고 불렀다.

‘크세노스’는 흔히 ‘낯서 자’로 번역하는데 문맥에 따라 ‘적; 이방인’으로 혹은 ‘손님’, 더 나아가 ‘친구’로 번역한다. 크세노스는 그리스 다른 도시나 멀리는 마케도니아나 소아시아와 같은 외국에서 방문한 ‘외국인’이다. 아테네인들은 외국에서와 일정한 교류를 통해 우정을 나눈 친구를 ‘크세노스’라고 불렀다. 그리스인들이 ‘크세노스’를 이렇게 다양한 의미로 사용한 이유가 있다. 그리스 최고의 신인 제우스의 별칭은 ‘제우스 크세네오스’다. 제우스는 여행자나 낯선 자에게 환대를 베풀어야 한다는 종교적인 의무의 화신이다. 베두인의 삶의 원칙이 낯선 자를 신처럼 환대하는 ‘디야파’인 것처럼, 이제 아테네라는 도시를 건설하여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살기 시작한 아테네인들의 삶의 원칙도 유사하게 ‘크세니아’다.

‘크세니아’는 그리스인들의 ‘환대원칙’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종종 신은 가난한 낯선 자(크세노스)로 변장하여 인간을 찾아온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는 남루한 농부로 변장한 주피터와 머큐리 신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이 신들이 쉴 곳을 찾았지만 사람들이 악해 그들을 거절했지만, 가난한 바우키스와 빌레몬이 환대를 한다. 인간은 주인이 되어 그 손님을 환대함으로 자신의 덕을 수련하고 발휘한다. 크세니아에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주인은 손님이 원하는 모든 것, 특히 음식, 목욕, 숙소를 제공하고 떠날 때는 선물을 준다. 둘째, 손님은 주인에게 공손하게 존경을 표시한다. 손님도 주인에게 그 집을 떠날 때 선물을 준비해야한다.

아이스퀼로스는 세 번째 비극인 <탄원하는 여인들>은 바로 그리스인들의 삶의 원칙인 ‘크세니아’를 아테네인들에게 교육시킨다. 민주주의는 다름과 낯섦에 대한 수용이며 배려다. 아테네 자유인들, 외국인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함께 원형극장에 앉아 <탄원하는 여인들>을 숨죽여 관람하였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그리스 아르고스로 찾아와 집단 난민 지위를 신청한 50명 여인들의 흥미진진한 비극에 몰입하고 있었다.

사진

<필레몬과 바우키스 집에 있는 주피터와 머큐리>

피터 파울 루벤스(1577–1640)

유화, 1620-1625, 153.5 cm x 187 cm

오스트리아 비엔나 예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