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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14.(月曜日) “긍지矜持”


내 삶은 하루다. 내가 오늘 하루 동안 하는 일이 내 삶의 수준이며 운명이다. 오늘은, 하루가 아니라 어제의 지속이며 내일의 기반이다. 이 전체가 구분할 수 없는 자연스런 흐름이다. 오늘이 인생이며, 인생은 오늘이다. 나의 하루는 언제나 내 삶 안으로 들어와 인연을 맺은 샤갈, 벨라, 그리고 유기견 예쁜이와 함께 시작하고 맺는다. 아침에는 샤갈-벨라를 데리고 ‘삼각산’에 올라 서울전경을 보고, 늦은 저녁에는 예쁜이를 산책시키는 아내도 합류하여 북한산에서 꼭대기서 흘려 내보내는 물과 바람의 세례를 받는다.

산山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마다한 적이 없다. 언제나 맑은 공기, 햇살, 별빛과 달빛, 물소리와 바람소리로, 아무런 입장료를 징수하지도 않고 나를 품어준다. 산은 미지의 영역이다. 수메르인들은 산을 자신들이 영원히 파악할 수 없는 ‘신기’라고 여겼다. 그들의 일상이 벌어지는 터전인 ‘땅’을 ‘키KI’로, 그들이 볼 수 있지만 도달할 수 없는 ‘하늘’을 ‘안AN’으로, 그리고 미지의 세계인 ‘산’을 ‘쿠르’KUR로 불렀다. 수메르어 ‘키’의 기본의미는 ‘아래’ 혹은 ‘아래에 다져진 흙덩어리’라는 뜻이다. ‘안’은 ‘하늘’이면서 동시에 ‘신神’이란 의미다. ‘신’이란 ‘하늘’과 같이, 위에 존재하나 구체적인 모습을 띠지 않아 오감으로 감지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존재’다.

아침등산은 침대라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부지런이다. 완벽한 인생을 수련하는 자는 매일 매일 자기정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그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긴다. 그런 연습을 말없이 수행하는 자는 이미 완벽한 자신을 구가하고 있는 중이다. 욕망은, 지나간 과거경험이 남긴 흔적이 중독이 되어, 그것을 자신도 모르게 정체성으로 만들려는 어리석음이다. 완벽한 자신이란 매순간 변모하려는 수고이며, 그런 수고를 의연하게 실행하려는 평온이다.

눈을 감고 공부방에서 좌정하고 있으면 샤갈과 벨라가 가만히 다가와 내 옆에 좌정한다. 우리는 오늘 아침, 인생의 첫날처럼, 혹은 인생의 마지막처럼 등산이라는 의례를 행할 것이다. 나는 이들을 데리고 집 근처 산으로 행한다. 아침 산책코스는 70m정도 되는 낮은 바위산이다. 중간에 오랜 세월의 흔적을 담은 인위적인 성벽들이 있다, 제법 오래된 산길이다. 나는 샤갈과 벨라를 앞세워 제법 가파른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한 순간이라도 정신 줄을 놓으면 위험하다. 바위산을 오를 때는, 반려견들을 앞세운다. 이들도 나도, 등산을 통해 평상시 사용하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에, 아침운동으로는 제격이다. 이들은 긴 다리를 이용하여 제법 산을 잘 탄다. 나도 이들과 연결된 리드 줄을 느슨하게 잡고 보조를 맞추어 산을 오른다.

바위산 중간에 오르면 벨라와 샤갈은 바위에 올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사방을 둘러본다. 저 아래 숲을 지나, 집들과 건물들이 보인다. 그 안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오늘이라는 인생의 유일한 날을 보낼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자신들이 창조한 하루를 보낼 것이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어제의 습관적인 행동을 반복하고 사회가 정한 규범 안에서 그럭저럭 살 것이다. 나는 전자를 ‘탁월한 인간’라고, 그리고 후자를 ‘기꺼이 순응하는 노예’라고 부르고 싶다. ‘탁월한 인간’은 남들과 비교하여 IQ가 높거나 운 좋게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의도한 구별된 유일무이한 삶을 감히 사는 사람이다. ‘노예’는 자신의 삶을 타인이 만들어 놓은 틀에 가두어, 그 안에서 허락된 쾌락을 즐기는 사람이다.

탁월한 인간에겐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분야를 찾아, 그 분야의 독보적인 1인이 되기 위해 몰입하는 자다. 만일 그녀가 요가가 관심이 있다면, 자신만의 스타일을 조각하기 위해 삶의 모든 분야를 조정한다. 이 탁월은 계급, 권력, 부에 의존하지 않는다. 자신이 택한 분야에 얼마나 집중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런 탁월은 창의성, 인내 그리고 오랜 기간의 열심과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사회는 가끔 그런 탁월한 인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명성을 얻고 어떤 이는 약간의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탁월한 인간들은 자신이 노력이나 실력에 비해 명성이나 부를 축적하지 못한다. 명성이나 부는 타인이 그(녀)에게 부차적인 것들이다. 명성과 부가 탁원한 사람에게 ‘운이 좋게’ 주어질 수도 있다. 명성과 부는 모든 탁월한 인간들이 획득하는 한 가지 상에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상이 바로 ‘긍지’矜持다. 긍지란 자신이 하고 있는 임무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그것을 지속하여 자신에게 중요하고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탁월의 대가는 부나 명성이 아니라 ‘긍지’다. 그는 타인의 환호, 칭찬 혹은 공개적인 인정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남다른 소질이 있고 그 소실을 개발하고 사회에 공헌하고 싶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해왔던 것을 답습하는 것은 종종 안전하고 편하다. 그러나 진실로 독창적인 일을 하는 것은, 타인이 그것을 인정하든 혹은 인정하지 않든 상관이 없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긍지가 그의 마음 속에 싹이 튼다. 탁월은 타인의 인정이나 인증이 필요가 없다. 심지어 타인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 사람의 가치는 사회가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힘이나 능력이다. 천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지극히 작은 것에 탁월한 인간이다.

긍지가 탁월한 인간의 표식이라면, 사회의 규범과 관습에 순응하는 것은 범인들의 특징이다. 탁월한 인간은 자신만의 삶을 조각하지만, 사회가 부여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라고 여긴다. 범인에겐 자유가 없다. 자유는 자신이 무엇을 소유했느냐, 남들이 얼마나 알아주는냐에 달려있지 않다. 자유는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스스로 소중하게 실행하는 의연함이다. 긍지矜持란 자신만의 창자루(창모矛)를 가지고 그것을 갈고 닦으려는 진지함이다. 나는 내가 선택할 일에 긍지를 느끼는 탁월한 인간인가, 아니면 남이 시키는 일을 반복하는 노예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동영상

동네 야산에서 굽어보는 샤갈과 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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