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세상을 보는 색안경이다. 마음이 검정색이면 세상은 온통 시커멓고 답답하다. 마음이 파란색이면, 세상은 희망에 차있다. 내가 외부를 보기 위해 코 위에 장착한 안경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내가 보는 외부 세계는 색안경을 투과한 왜곡된 모습일 뿐이다. 인류는 모두 COVID-19 백신이 개발이 되어, 이 감염병이 이내 사라지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전문가들의 예측은 그렇지 않다. 오래전에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인류생존의 최대위협은 전쟁이 아니라 감염병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지난 주 다시 한 번 성급한 인류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말을 했다. 그는 COVID-19이 아무리 빨라야 2022년이 되어야 종식된다는 예측하였다.
우리는 이런 소식을 듣고 불안과 답답함을 떨쳐낼 수가 없다. 이런 심리적인 불안정이 우리의 일상을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색안경을 투과하는 광경처럼, 인간마음과 의식의 가감이 없는 반영이다. 외부外部는 내가 경험을 통해 내부內部에 축적된 지식만큼, 보인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는 기원전 18세기에 바빌로니아 시대에 제작된 함무라비 법전 석비가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 검은색 섬록암위에 쐐기문자로 빼곡하게 기록된 282개 법전조항을 눈으로 볼 수 있지만, 그것을 이해 할 수는 없다. 만일 그(녀)가 오랜 수련을 거쳐 쐐기문자가 기록된 아카드어 문법과 기호들을 숙지하지 않는다면, 그 법전은 그저 낙서일 뿐이다.
나의 생각, 욕망, 열망이 내가 존재하고 생활하고 있는 세계를 구성하고 창조한다. 세상이 아름다움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지, 혹은 세상이 추함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아는 방법이 있다, 내 마음의 상태를 가만히 응시하면 된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천국으로 만들기도 하고 지옥으로 만들기도 한다. 고대인도 현자들은 사람이 머릿속에 떠올린 생각을 산스트리트어로 ‘클레샤’klesha, 즉 ‘인상印象’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한번 떠올린 생각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마음에 자국을 남겨, 언젠가 말과 행위로 그러나게 마련이다. 그들은 그런 생각을 제어하는 훈련을 ‘요가’라고 불렀다.
불결한 생각과 욕심으로 가득 찬 마음은 분명히 그를 불행과 불운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반대로, 청결하고 이타적이며 숭고한 마음을 지니는 자에겐 행복과 번영이 찾아온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그것을 품고 언행으로 옮기려는 수고가 이미 행복이다. 모든 영혼은 자신과 유사한 것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동서고금의 현자들이 깨달음 세상의 법칙이다. 이 법칙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외부 환경의 영향을 허용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외부 환경이 그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고 믿는다면, 그는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외부의 변화에 굴복하는 것이다. 그는 이미 그 환경의 노예이며, 환경이 그에게 절대적인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다.
인간에게 고통과 역경은, 그가 어떤 품격을 지닌 자인가를 측정하는 시험이다. 한 종류의 인간은 예기치 못한 불행이 찾아올 때,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주위 탓을 하며 우울에 빠진다. 다른 종류의 인간은 어려움을 자신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잠재적 품격’을 형성하고 드러낼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다. 그는 자신도 몰랐던 저력을 발휘한다. 역경이 비관적이며 소극적인 생각의 소유한 사람에겐 저주이자 비극이지만,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생각을 수련하는 자에겐, 축복이자 희극이다.
만일 환경이 어떤 사람에겐 행운이며 또 다른 사람에게 불운이라면, 환경은 그 사람이 지닌 심성에 따라, 그 결과를 다르게 도출한다. 만일 내가 내 생각을 장악하고 조절하고 훈련시키기 시작하여, 내 마음 속에 불굴의 내성內省을 건축하다면, 나는 외부의 공격에도 흔들림이 없다.
콘스탄티노플(오늘날 터키 이스탄불)은 거의 천년동안 난공불락의 도시로 명성을 누렸다. 콘스탄티노플에는 다른 성에서는 불수 없는 특별한 구조가 그 비밀을 담고 있다. 콘스탄티노플 크기가 다는 두 개의 성벽들이 건설되었다. 해자 안에 외성과 내성이 있다. 외성벽의 두께는 2m, 높이 8.5m이다. 외성 안쪽으로 20m 떨어져 내성이 있다. 내성벽의 두께는 두께 5m, 높이 12m 규모다. 총 22.5m 길이로 55m마다 18~20m 육각형 혹은 팔각형 망루가 96개나 세워졌다. 만일 적들이 외성벽의 외소함을 보고 침공한다면, 외성벽과 내성벽 사이 20m 공간이 그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이 내성이 인간에게 마음이다. 자신의 마음을 다양한 식물들에 대한 지식으로 훈련시킨 식물학자는 야산은 자연의 아름다움, 조화 그리고 경외의 총체다. 그런 지식을 훈련하지 않는 사람에게 야생화는 아무런 생각이 없이 밟고 지나가야할 대상이지만, 시인의 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섭리를 담은 천상의 편지다. 바다는 보통사람들에겐 배들이 드나들고 가끔 침몰하는 끝을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물 덩어리이지만, 작곡자에게는 살아있는 생물이며, 출렁이는 파도가 천상의 음악소리다. 이 소리는 자신의 마음 소리 듣기를 수련한 사람에게 주는 신의 선물이다.
범인은 재난과 혼동을 보지만, 철학자는 이것들을 통해, 완벽한 인과관계의 연결고리를 확인한다. 유물론자들은 세상의 끝과 죽음을 보지만, 시인은 그 안에서 새로 태어나고 있는 영원한 삶에 대한 박동 소리를 듣는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친절을 찾기 원하십니까? 친절하십시오. 당신은 진리를 추구하고 있습니까? 진실한 사람이 되십시오. 세상은 우리의 마음이 만든 거울이다. 인류의 일상을 피폐하게 만드는 COVID-19을 이길 힘은, 내 마음 뿐이다. 요즘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흔들리지 않는 내성을 구축할 절호의 기회다.
사진
<뎀시와 피르포 권투시합>
미국 화가 조지 벨로우스 (1882–1925)
유화, 1924, 129.5 cm x 160.6 cm
미국 클리블랜드 위트니 미국 예술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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