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11.(金曜日) “독서讀書”


젊은이들이 자신의 삶의 나침반을 마련하는 공부모임 ‘서브라임 2020’이 11월에 시작될 것이다. 누가 올지는 모르지만, 이들을 위한 최상의 공간을 마련하려고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 1년 동안, 함께 새로운 인간으로 변모하고 싶다. ‘서브라임’교육의 중요한 부분은 ‘스스로’ 읽고, 가만히 멈추고, 상상치 못한 것들을 생각해내고, 다시 멈추고, 그것을 자신의 심장에서 끓어 올라오는 영혼의 피로, 글을 쓰는 일련의 과정이다. 읽기의 대상은, 펭귄에서 출간된 ‘Great Books 50’이고 이들을 위한 몰스킨 수첩과 만년필이 자신의 생각을 백지위에 적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일정한 시간이 지니면, 주위 환경을 눈으로 확인하고 인식하고, 귀로 들은 모국어를 종합하여 갑자기 말문이 터진다. 어린아이의 머릿속에는 세상의 어떤 컴퓨터보다 성능이 좋은 슈퍼컴퓨터가 장착되어있다. 어머니의 말투와 식구의 어휘가 어린아이 말 습관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COVID-19로 대면수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교육敎育이 위기에 봉착하였다. 교육은 세상의 정보를 머리에 심어놓은 강요가 아니라 스승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자신을 자극하여 발현시키려는 일련의 과정이다. ‘교육’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에듀케이션’education 어근이 말하는 것처럼, 학생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자신이 되어야하고 될 수 있는 ‘자신’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기술이다. 이 감염병이, 교육의 원래의미를 상기하고 새로운 교육의 좌표를 설정할 절호의 기회다.

교육의 내용은 생각하기(思), 말하기(言), 읽기(讀), 그리고 쓰기(作文)다. 이 네 가지 중 우선순위를 정하자면, 읽기와 쓰기가 우선이다. 인간은 생각하기와 말하기를 아무런 노력도 없이 저절로 터득한다. 동시에 생각하기와 말하기는 그 인간의 수준을 결정하다. 생각하기와 말하기는. 저절로 터득되는 기술 같지만, 사실, 오랜 기간의 수련을 거쳐야만 획득되는 궁극의 무기다. 누가 생각해야만 해는 것을 생각하고, 말해야만 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가?

오래전, 학교 체육관에서 요가와 명상수업을 학교 체육관에서 진행한 적이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있으라고 요구했다. 인간이 가장 하기 힘든 것이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안하기’는 습관적으로 본능적으로 떠오른 생각에 잡혀 허망한 생각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평정을 찾아 유유자적하는 상태다. 요가는 그런 상태, 즉 ‘삼매三昧’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모르는 정신적인 유전자에 남겨져 있는 인상까지도 오랜 수련을 통해 걷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습관이 만들어 내는 생각하기와 말하기를 조절하고 개혁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읽기’와 ‘쓰기’다. 이 후천적인 습관을 통해 선천적인 습관인 ‘말하기’와 ‘생각하기’를 수정할 수 있다.

독서의 목적은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이전에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멋진 일을 감행하는 용기다. 한마디로 ‘영감靈感’을 주는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 열려있는 가장 고상한 취미는 독서다. 현대는 종이위에 검은 색 잉크보다는 스크린이 내는 빛에 익숙하고 매료되어있다. 인터넷이 등장하여 당장의 오락과 재미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책’은 철지난 유물이 되어간다. 인간은 두 번 태어난다. 한번은 부모를 통해 육체적으로 태어나고, 두 번째는 책을 통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현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지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다. 인생이란 항해에서 오디세우스나 베르길리우스와 같은 안내자를 가진다면, 행운이다. 독서는 우리의 인생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숨겨진 정체성을 찾도록 유도한다. 양서는 이 두 번째 태어나기를 시도하는 인간에게 산파다.

미국 초월주의 철학자 랄프 왈도 에머슨(1803-1882)은 <미국 학자>The American Scholar라는 에세이에서 천재는 보이에는 상관이 없어 보이는 두 개를, 그들 안에서 숨겨진 공통분모를 찾아 하나로 연결하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심지어는 수많은 현상들의 기저에 깔린 원칙을 찾아, 그 차이점을 줄여, 이것들이 하나의 근원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범인이 보기에는 상관이 없어 보이는 두 가지를 별도로 본다. 천재는 이 두 가지는 하나이며, 융합을 통해 상상할 수 도 없는 멋진 것이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독서는 괴테가 말한 대로 ‘마음 도서관’을 구축하는 행위다. 책은 인생을 먼저 살다간 현인들의 지혜가 담긴 최선이다. 독서의 대상은 세 가지다. 오늘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베스트셀러’다. 많은 베스트셀러들중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빛이 나는 책이 있다. 바로 ‘고전古典’이다. 고전은 ‘오래된 책’이 아니라 오래되어도 읽을 만한 책, 가치가 있는 책이다. 한자 ‘책 전典’자는 그 책들이 소중하여 제사상위에 묶어놓은 형상이다. 고전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깊이 읽는 사람의 정신과 영혼을 개선한다.

고전 중에 고전이 있다. 바로 ‘경전經典’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경전’의 의미를 확정하여 서양전통이 되었다. 그리스도교가 등장하여, 수많은 책들 가운데,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책들을 골라 ‘캐논canon’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리스도교의 66권은 그들이 수백년동안 치열한 논쟁을 거쳐, 시대를 초월하여 읽는 사람의 인생을 전환 시킬 정도로 강력한 ‘경전’으로 확신하고 그것을 고정하였다. 고대인도인들로 수많은 현인들의 어록가운데, 특별한 어록들을 별도로 구별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나뭇잎에 문구를 기록하고, 그 잎들을 차곡차곡 겹쳐 하나로 묶었다.

그 특별한 묶음을 산스크리트어로 ‘수트라’sūtra(सूत्), 팔리어로는 ‘수타’sūtta라고 불렀다. 이 단어들은 ‘실로 엮다’라는 의미를 지는 동사 ‘시브’siv의 과거분사형으로 ‘실로 엮여진 것’이란 의미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중국인들은 이런 책을 한자로 ‘경전’經典이라고 불렀다. ‘경전’이라는 실로 정성스럽게 엮은 책으로 제사상위에 올려놓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란 의미다. 성서, 꾸란, 논어, 도덕경, 금강경, 바가바드기타, 아베스타와 같은 경전들은 그것을 읽고 자신의 삶의 기준으로 삶는 자들에게 언제나 영감을 준다.

미국 예일 대학교 비평가 헤롤드 블룸Herold Bloom 교수는 서구문명의 핵심은 ‘경전’에 담겨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1994년 저술한 The Western Canon에서 현대인들이라면 반드시 일어야하는 경전 수준의 고전들을 소개하였다. 그는 창의성은 인류가 남긴 최선이자 유산인 ‘경전’을 통해 전달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캐논은 단순한 책이거나, 읽기 힘든 책이 아니라, 삶의 기준이 되는 캄캄한 밤하늘의 등대와 같은 비전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2부에서 셰익스피어, 단테, 초서, 세르반테스, 몽테뉴, 밀턴, 사무엘 존슨, 그리고 괴테를 서구인들의 정신을 다른 차원으로 고양시켜, 삶과 문화의 기준을 마련한 영웅으로 소개한다. 불룸이 한번은 이런 말을 했다.

“Reading well is one of the great pleasures that solitude can afford you.”

“독서를 잘 해보십시오. 고독이 당신에게 안겨다 주는 위대한 쾌락이 될 것입니다.”

COVID-19은 우리에게 완벽한 독서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경전과 고전 독서를 통해, 마음의 지도와 도서관을 구축하여, 세상의 이치를 어렴풋이나마 구경할 절호의 기회다.

사진

<책상에서 독서하고 있는 사람>

목탄화, 1827

뉴욕 칼 휴위트 스미소니언 디자인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