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2020.9.10.(木曜日) “관찰觀察”



요즘 반려견들과 산에 오르면 깜짝 깜짝 놀란다. 숲길에서 발견한 구불구불한 나무가 마치 뱀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요즘은 등산길 입구에 가을은 벌 쏘임과 뱀 물림이 가장 빈번한 계절이다. 이맘때쯤 가평 산책길에는 뱀이 득실거렸다. 뱀들은 개울가와 야산 중간에 있는 길가에서 곤충이나 개구리를 잡아먹기 위해 잠복한다. 샤갈이 한번 산길에서 뱀을 세 마리나 잡은 적이 있다. 샤걀이 뱀처럼 생긴 나무만 보면 공격하는 트로마가 있다.

샤갈이 3년 전, 집에서 풀려나 1시간 만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동공이 풀리고 온몸 특히 목이 퉁퉁 부어 현관 앞에 쓰려져 있었다. 가만히 목을 살펴보니 살모사가 샤갈의 목을 물어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호기심이 많은 샤갈은 가만히 잠복하고 있는 뱀을 순진하게 건드렸을 것이다. 그리고 뱀의 공격을 받았다. 샤갈은 분명 뱀의 중간을 물로 헤비메탈 가수처럼, 뱀을 마구 흔들어 반 조각을 냈지만, 정작 자신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샤갈 온몸은 뱀의 피로 얼룩져있었다. 나는 샤갈을 데리고 서울대학교 동물병원 응급실에 찾아갔다. 살모사에 물려 해독제가 있는 병원이 어린이 대공원과 서울대학 동물병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샤갈은 우여곡절 끝에 살아났다. 샤갈은 그 이후, 뱀과 유사한 구불구불한 형태만 보아도 공격한다.

나무와 뱀은 인간의 심성에서 떼어낼 수 있는 하나다. 이 둘과의 관계를 상징하는 인류의 오래된 이야기가 <창세기>이 등장하는 소위 ‘선악과’이야기다. <창세기> 저자는 에덴동산 한 가운데, 두 개의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고 전한다. 한 나무는 영생을 부여하는 열매를 매단 ‘생명나무’이고 다른 나무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모든 지식, 곧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지식’의 열매를 매단 ‘모든 지식의 나무’다. 저자는 이 나무에 기거하는 한 동물을 소개한다. 세상의 어떤 생물보다 눈치가 빠른 ‘뱀’이다.

뱀은 원래 ‘악’의 상징이 아니라 ‘지혜’와 ‘영생’의 상징이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구분이 안되 않아, 인류에게 ‘영원한 회기’와 ‘영생’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때가 되면, 껍데기를 벗어내는 모습을 보고 항상 부활한다고 여겼을 것이다. 또한 신약성서에서 예수가 ‘뱀처럼 지혜로워라’라는 말처럼, 뱀은 악이 아니라 ‘지혜’의 상징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하늘의 뜻을 지상에 전달하는 전령인 ‘헤르메스’가 뱀과 관련된 형상으로 등장한다. 헤르메스는 두 마리 뱀이 꽈리를 틀고 지팡이를 휘감고 있는 형상이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이 형상을 케뤼케이온κηρύκειον, 로마인들은 ‘카두케우스’cādūceus라고 불렀다. 그리스어 ‘케뤼케이온’은 ‘전령; 메신저’를 의미하는 ‘케뤽스’에서 유래하여 ‘전령이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지팡이’를 의미한다. 그 상징은 헤르메스의 임무에 걸맞게 영생과 지식을 상징하는 두 마리 뱀이 지팡이를 휘감고 있다.

지팡이와 뱀이 밀접한 관계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이 둘이 하나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모세의 지팡이 이야기다. ‘모세의 지팡이’는 구약성서뿐만 아니라 이슬람 경전인 <꾸란>에도 등장한다. ‘지팡이’를 의미하는 히브리 단어는 ‘마테’다. ‘마테’는 동시에 같은 토템을 공유하는 집단인 ‘부족’이란 의미도 있다. 아주 오래 전에 부족을 상징하는 토템이 뱀이었고, 뱀을 나무위에 휘감은 상징을 토템으로 삼았을 것이다. 모세는 이 지팡이를 들고 광야에서 물이 없이 거의 죽기 직전의 히브리인들을 위해 바위를 쳐서 물을 내는 기적을 일으킨다. 또한 모세는 이 신비한 지팡이로 홍해를 쳐서 바다를 갈라 바닥이 드러나게 만드는 기적을 행한다.

목동 모세에게 지팡이는 생계를 위한 도구였다. 양들이 집단에서 대오를 이탈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양을 공격하려는 늑대와 같은 들짐승들을 물리치는 무기다. 모세가 남들이 들어가 보지 않는 경내로 들어가 불에 연소되지 않는 가시덤불에서 신을 경험한다. 신은 모세에게 이집트에서 자유를 포기하고 속박의 삶에 안주하는 동료 히브리인들을 탈출시키라고 명령한다. 모세는 신에게 자신이 신을 경험하여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가시적인 증거를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자 신이 모세의 손에 있는 지팡이가 신이 모세와 함께 한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모세가 지팡이를 땅에 던지니, 지팡이가 뱀이 되고, 다시 뱀을 집으니 지팡이가 되었다. 모세는 히브리인들을 광야로 데리고 나와 자신들이 정착할 수 있는 땅을 찾아 나선다. 사막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는 죽음의 공간이다. 사막이라는 상징은, 오래된 자아를 온전히 살해하고,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자기엄격의 공간이다. 대부분 히브리인들은 이 사실을 모를 뿐만 아니라, 설령 안다할지라도 믿고 싶지 않다. 그들은 실제로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 죽기 직전이다. 히브리들은 자신들을 사막으로 데리고 나온 모세에게 불만을 쏟아 놓는다. “당신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결국 사막에게 죽게 만들 셈이냐?” 그러자 신은 독사를 풀어 불평하는 히브리인들을 죽게 만든다. 다급해진 히브리인들이 모세에게 달려와 뱀을 퇴치해 달라고 부탁한다.

모세가 신에게 뱀에 물린 히브리인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묻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는 붉은 반점에 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 놓아라.

그리고 뱀에게 물린 사람마다 그것을 쳐다보게 하여라.

그리하면 죽지 않을 것이다."

<민수기> 21.8

모세는 자신의 지팡이를 바닥에 던졌다. 그러자 그 지팡이가 불뱀이 되었다. 뱀에 물린 사람들이 기둥에 매달린 불뱀을 보자 목숨을 건졌다. 이 신화와 같은 이야기의 의미는 무엇인가? 지팡이와 불뱀으로 변한 지팡이 모두 인간의 일상생활이나 일상용품이다. 그 일상은 인간에게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이며, 동시에 그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이기도 하다. 나에게 다가온 역경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성서 저자는 ‘쳐다보다’란 의미를 위해, 일반적인 히브리어 동사인 ‘라아’를 사용하지 않고, ‘유심히 보다’ 혹은 ‘관찰觀察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동사 ‘나바트’nābaț의 사역형 ‘히브트’hibîț를 사용하였다. 뱀이 휘감긴 지팡이는 아주 오래전에 인류에게 어려움을 벗어나게 하고 생명을 구하는 상징이 되어, 모세의 지팡이, 헤르메스의 상징, 더 나아가 오늘날 의학의 상징이 되었다.

인생에 있어서 큰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저 그 원인을 더듬어 찾는 것이다. 그 원인은 외부에서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내 일상의 소홀이 더해져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나온 결과다.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내가 그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면, 나를 어렵게 만든 역경이, 내 삶을 원래대로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도약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사진

<익시온의 형벌>

폼페이, 1세기, 프레스코

1세기 폼페이 베타의 집에서 발견된 식당 동편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

“중앙에 머큐리신(로마의 헤르메스신)이 두 개의 뱀이 감겨있는 지팡이들 들고 있다.

오른 쪽엔 주피터의 아내인 주노가 왕좌에 앉아있고 그녀 뒤에는 이리스가 서있다

왼편에 대장장이 신인 불카노스가 익시온이 들어가 있는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