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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8.(土曜日) “근본根本” (<요가수트라> 훈련경 10행)

2020.8.8.(土曜日) “근본根本” (<요가수트라> 훈련경 10행)

인간에겐 누구에게나 자신이 도달해야 할 ‘자기-자신’이 존재한다. 파탄잘리는 그런 자신으로 돌아가는 요가수련자를 방해하는 훼방꾼을 무식, 이기심, 욕심, 혐오 그리고 집착 다섯 가지로 나열하였다. 이러한 훼방꾼들은 요가수련자의 경험을 통해 알게모르게 습득되어 습관으로 변한 것이다. 혹은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의 조상으로부터 유전적으로 물려받아 본성으로 굳어진 것이다. 인간이 헛된 정체성을 획득하게 만드는 요소들로, 진정한 자기-자신인 ‘아트만’ 신적인 자아인 ‘브라흐만’ 혹은 원초적인 자신인 ‘프루샤’를 망각하게 만들고 소외시키는 방해꾼들이다. 이것들은 그의 얼굴이나 몸짓에서 나오는 인상印象들이다. 이 훼방꾼들은 벽에 남겨진 못자국과 같아, 못이 낸 구멍을 매울 수 있지만, 그 흔적을 지울 수가 없다. 이 흔적을 산스크리트어로 ‘클레샤klesha’라고 부른다. 파탄자리는 이 클레샤를 약화시키고 결국에는 제거하는 방법을 <훈련경> 10행과 11행에서 설명한다.

요가수련자가 아직 삼매경에 진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의 언행에 남겨진 인상은 능동적인 상태와 잠재적인 상태로 존재한다. 능동적인 상태의 ‘인상’이란 수련자가 일상에서 드러내는 자신만의 습관이자 개성이다. 요가훈련인 ‘사다나sadhana’를 수련하는 훈련생인 ‘사다카sadhaka’가 다섯 가지 훼방꾼들이 만든 자신을 제거하기 위한 훈련 중에 자기응시를 통해 발견되는 개성들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화를 낸다면, 그의 흔적들 중에 하나인 ‘드베샤dvesha’ 즉 ‘분노憤怒’가 그를 사로잡아 노예로 만든 것이다. 만일 그가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 엄격한 요가훈련을 수련한다면, 그는 자신의 분노성향을 줄이고 심지어는 제거 할 수 있다.

분노가 점차로 약화하여 거의 사라진다할지라도, 그가 다시 분노할 수 있는 잠재적인 씨앗은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있다. 만일 그가 분노할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에 처한다면, 그는 다시 분노에 사로잡힐 것이다. 분노의 잠재적인 힘은 남아있다. 파탄잘리는 <훈련경> 4행에서 능동적이며 활동적인 분노를 수동적이며 잠재적인 분노로 전환시키는 훈련인 ‘프리야요가’kriya-yoga를 소게하였다. 요가수련자는 크리야요가 훈련을 통해, 약간의 자극에도 분노하는 성향을 훈련시켜 여간해서는 분노하지 않는 인간으로 변모시킨다.

분노를 수련자의 마음에서 제거하고 난 뒤, 두 가지 상황이 생긴다. 하나는 분노가 식물의 ‘씨앗’으로 줄어드는 경우와 다른 하나는 분노의 씨앗이 불에 완전히 연소되어 ‘불에 탄 씨앗’의 상태로 남는 경우다. ‘씨앗’으로 존재하는 분노는 언제가 커다란 분노의 나무로 자라날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불에 탄 씨앗’의 분노는 더 이상 싹을 틔울 수도 없어 분노의 나무가 될 가능성이 없다.

파탄잘리는 <훈련경> 10행에서 씨앗으로 남아있는 인상들을 제가하는 실질적인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ते प्रतिप्रसवहेयाः सूक्ष्म

te pratiprasava-heyāḥ sūkṣmāḥ

테 프라티프라사바-헤야흐 숙슈마흐

(직역)

“미묘한 상태에 있는 이것들은 거슬러 올라가서 제거되어야한다.”

(의역)

“지금까지 언급한 삼매경 진입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 훼방꾼은, 그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지만, 미묘한 상태로 씨앗이란 형태로 마음속에 존재한다.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 근본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위문장의 핵심단어는 ‘프라티프라사바pratiprasava’다. ‘프라티프라사바’는 다음 두 가지 단어로 구성되어있다. 하나는 ‘반대하는; 거슬리는’이란 접두사는 ‘프라티’prati와 ‘진행; 진화’를 의미하는 ‘프라사바prasava’다. 우주가 창조되는 순리인 만물의 진화과정인 ‘프라사바’를 거슬리는 행위로 ‘자연스런 진화’가 아니라 거꾸로 거슬러 근원으로 찾아 가는 행위다. 그렇다면, <훈련경>에서 인상들을 씨앗의 미묘한 상태로 절제하기 위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훈련경> 3행에서 방해꾼 다섯 가지를 무식, 이기심, 욕심, 혐오 그리고 집착 순으로 나열하였다. 모든 훼방꾼들의 기반은 무식이며, 무식은 자기 -중심적인 이기심을 낳고, 이기심은 그것을 강화하는 욕심으로, 그리고 자신이 경험하지 못하거나 획득할 수 없는 대상을 혐오하고, 자신이 우연히 경험한 것을 집착하거나, 획득할 수 없는 것에 연연해하는 집착이다. 무식으로 시작하여 집착에서 마친다.

‘프라티프라사바’는 이 다섯 가지를 집착부터 시작하여 무식까지 제거하는 방법이다. 요가수련자가 처음부터 자신의 ‘무식’을 제거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이 집착을 응시하고 제거한 후, 혐오, 욕심, 이기심, 그리고 무식을 차례로 없애야 한다. 자신의 클레샤를 씨앗의 형태로 미묘하게 남기기 위해서는, 그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제거방법인 ‘프라티프라사바’를 수행해야한다. 요가를 수련하여 삼매경으로 진입하고 싶은 자는 가장 먼저 자신이 무의식중에 혹은 의식 중에 집착하여 중독이 된 것이 무엇인가를 응시해한다. 그 집착은 혐오, 욕심, 이기심, 그리고 무식과 연결되어있다.

사진


<걱정>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 (1863–1944)

유화, 1894, 94 cm x 74 cm

오슬로 뭉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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