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8.7.(金曜日, 立秋) “일상日常”

2020.8.7.(金曜日, 立秋) “일상日常”

나를 변화시키는 공간과 시간은 ‘일상’日常이다. 내가 그 일상을 응시하여 그 안에서 최선을 발견하면, 그 일상은 특별한 일상인 ‘비상’非常이 된다. 만일 내가 그 일상을 방치하거나 흘려보내면, 그 일상은 진부陳腐가 된다. 비상이란 내 안에 숨겨진 천재성을 작동시키는 환경인 위급이다. 인간은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는, 그러나 자신에게 은닉된 힘을 발휘한다. 진부란 자신이 무엇을 지녔는지 모르는 상태다. 자신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기’(肉)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기를 소화하여 에너지도 만들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이란, 타인에게 그 고깃덩이를 진열陳列하는 자랑한다. 고기는 서서히 부패腐敗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서서히 진행되는 부패의 악취에 취해, 자신의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벤 줄 모르고 날뛴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리더가 되어 자신의 삶을 이끌 때 변화한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현재의 자신을 응시하고, 그런 자신에서 유기해야할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장려해야할 장점을 찾아 일깨우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응시를 하루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여긴다. 자신의 실존적인 위치를 정확하게 판단하여,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그 하나를 끊임없이 찾아간다. 그는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희생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양한 인간들이 모여 사는 도시를 이끌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수사학’이라고 여겼다. 수사 능력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지닌 타인을 설득하는 능력으로 다음 세 가지다. 에토스ethos, 로고스logos, 그리고 파토스pathos. 이 세 가지 수사학적 용어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에토스는 말하는 사람이 일상의 습관과 습관에서 나오는 언행이며, 로고스는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이성적인 판단과 대화다. 파토스는 그 사람에 대한 평판에서 나오는 아우라다. 파토스는 흔히 ‘감동’이라고 번역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 가지 중 ‘에토스’를 가장 중요한 수사 능력일 뿐만 아니라, 온전한 인간이 갖추어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다. 에토스는 로고스와 파토스를 구현하기 위한 기반이다. 에토스는 마치 어머니의 자궁과 같아서 로고스와 파토스가 자라나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우리는 흔히 ‘에토스’를 인격人格이나 품격品格으로 번역한다. 에토스는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만일 누가 인격이 훌륭하다고 말할 때, 그 인격은 무형이다. 만일 누가 품격을 지녔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이 품격을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에토스’라는 단어는 그리스 최초의 문헌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말들이) 거주하는 장소’란 의미로 등장한다. 트로이 전쟁에 나선 그리스 연합군, 특히 아킬레우스와 그의 군대인 뮈르미돈 군인들은 모두 기마병들이다. 이들이 트로이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분신인 말을 준마로 훈련시켜야한다. <일리아스>에서 ‘에토스’는 여느 장소가 아니다. 야생에 살던 말들이 오랜 훈련을 통해 전차를 끄는 명마로 거듭나는 특별한 공간이다. 말들은 ‘에토스’에서 자신만의 생존방식을 습득하고 장점을 살려, 탁월한 준마駿馬로 변모한다.

에토스는 고대 인도에 등장한 ‘요가’yoga개념과 유사하다. 요가는 원래 야생말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코와 목에 거는 ‘고삐’였다. 말이 전투에 투입되었을 때, 말은 기마한 용사와 한 몸이 되어 간결하고 강력하게 움직여야한다. 에토스는 그 말이 내뿜는 어떤 아우라다. 에토스는 오랜 훈련을 거쳐 완성되는 그 개체의 품격이다. 그것은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4년 동안 훈련한 마라톤 선수가 풍기는 위용과 같다.

에토스란 단어에는 심오한 철학적 의미도 담겨져 있다. 이 단어를 맨 처음 사용한 철학자는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등장하기 전 활동한 철학자로 소아시아 에페소스에서 기원전 535년에 태어나 우주의 원칙은 끊임없는 변화라고 주장했다. 그는 “만물은 변화한다”(그리스어로 ‘판타 레이’)라는 명언을 남긴 철학자다. 헤라클리토스는 ‘에토스’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에토스 안스로포 다이몬(ethos anthropō daimon).”

이 문장은 “사람의 개성은 그의 운명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 문장의 해석을 쥔 단어는 ‘다이몬’이다. 다이몬이란 그리스 단어는 영어에서 흔히 ‘악마’로 해석되는 ‘데몬demon’의 어원으로 부정적 인상을 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다이몬’을 자신이 어리석을 행동을 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충고하는 긍정적인 ‘전령’ ‘천사’로 번역하였다. 그는 ‘다이몬’을 ‘악마’의 정반대 의미인 ‘천사’란 의미로 사용하였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에르의 신화>Myth of Er에서 에토스와 다이몬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이 육체적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불멸한 인간의 영혼은 지상에서 완수해야할 임무를 선택한다. 인간은 ‘망각의 강’인 레쎄Lethe 강을 건너면서 그 물을 마셔, 자신의 영혼이 선택한 운명을 잊어버린다. 인생이란 자신의 임무인 ‘다이몬’ 즉 천재성을 찾는 여정이다.

독일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헤라클리토스가 남긴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인간이 거주하는 일상 공간(에토스)은 비상한 신들(다이몬)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열린 공간이다.”

하이데거는 일상日常을 자신의 비상한 것인 ‘천재성’이 드러나는 열린 공간이라고 정의한다. 다이몬이 인간에겐 찾아볼 수 없는 신적인 어떤 특질이라면, 나는 이 단어를 인간을 한껏 고양시키는 인간 심성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신성’神聖이라고 번역하고 싶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언 “에토스 안스로포 다이몬”을 다시 번역하자면 “한 사람의 인격(에토스)은 그 사람이 인생을 통해 수련한 결과로 도달한 신성 혹은 카리스마다”이다. 인격이란 인간 각자가 지니고 있는 그 사람만의 신성성을 발현하는 수련이다.

에토스는 심지어 가축이 거주하는 공간인 마구간이며, 인간이 거주하고 생활하는 일상이다. 일상은 일상이 아니라, 천재성을 발휘하기 위한 구별된 습관을 서서히 만들어가는 비상한 공간이다. ‘오늘’이라는 일상은 나의 인격과 품격을 형성하는 구별된 습관을 위한 시간이다. 나는 그런 일상을 흘려보내는가? 아니면 그 일상을 개성을 형성하기 위한 훈련으로 삼는가?

사진


<독서하는 소녀>

프랑스 화가 토니 로베르 플뢰리(1837–1912)

유화, 1880

개인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