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였다 철학자가 된 에피텍토스는 파란만장한 인생경험을 통해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인간이 되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그는 <담화> 3.26.34-35에서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자신만의 무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의 명성, 돈, 혹은 지위를 신뢰하지 마십시오.
오로지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힘에 의지하십시오.
그 힘이란, 당신이 조절할 수 있는 것과 조절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구별입니다.
왜냐하면 이것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고 족쇄로부터 벗어나게 만듭니다.
이것만이 깊은 수렁으로부터 우리의 목을 잡어 채고
부자들과 권력자들을 처다 보는 시선으로부터 우리를 들어 올립니다.”
사람들은 흔히 명성, 돈, 혹은 권력이 인생의 역경을 해결할 수 있는 무기이며 심지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착각한다. 이런 것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명성을 타인이 나에게 부여하는 부러움이며, 돈은 누군가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상대적인 쏠림이며, 지위는 타인과의 경쟁에서 획득한 트로피다. 이것들은 모두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가변적이며 불안한 자산이다.
깊은 산중에 사는 사자가 자신의 힘을 믿는다. 사자가 사냥하는데 다른 동물의 힘을 의지하겠는가? 자신의 삶을 숭고하고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그것이 불행이든 행복이든, 덤덤하게 자신의 운명으로 수용해야한다. 그것이 불행이라면, 앞으로 나아질 일만 남았기 때문에, 다행으로 생각하고, 그것이 행복이라면, 앞으로 나빠질 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너무 기뻐하지 말고 자신을 낮추고 조심해야한다.
스토아철학의 창시자인 제논는 우리에게 ‘아모르 파티’amor fati라는 라틴어 문구로 알려진 사상을 맨 처음 펼친 사람이다. ‘운명’은 개인이 조절할 수 없어 ‘상관이 없는’ 수많은 사건들로 구성되어있다. 현자는 자신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평정심을 가지고 수용한다. 우리기 조절 할 수 없는 것에 대항하는 것은 부질없을 뿐만 아니라 무식이다. 그런 대항은 고통을 배가하고 자신의 내공을 축내고 자산을 탕진시킨다.
‘아모르 파티’를 현대인 삶의 모토를 정착시킨 철학자는 프리드리히 니체다. 니체가 1908년에 저술한 <에체 호모Ecce Homo> 10단락에 등장한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에서 ‘아모르 파티’를 언급한다: “인간이 위대함을 획득하기 위한 나의 공식은 ‘아모르 파티’다.” 니체의 영향을 받은 알베르 카뮈는 ‘아모르 파티’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고 살려는 의지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명예롭게 여기는 덕입니다.”
로마 황제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자신에게 주어진 ‘황제로서의 임무’를 운명으로 수용하였다. 그런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것이 자신을 위한 최선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는 동유럽 최전선에서 인생의 마지막 16년을 지냈다. 그가 매일 처리해야 할 이들이 산더미처럼 많았을 것이다. 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을 싫어했다. 그 심정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으면, ‘나는 인간으로서 일하기 위하여 일어난다고’ 생각하십시오.
그 일 때문에 내가 태어났고, 그 때문에 내가 세상에 나온 일을 하려는데 아직도 불평을 한단 말인가?”
<명상록> V.1.1a
그런 후에, 인간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때,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고 말한다. 그는 보통사람들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완수하기 위해, 심지어 목욕이나 식사 거른다고 말한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 자신을 사랑하다면, 당신의 본성과 당신의 의도를 사랑할 것입니다. 자신들의 선택한 전문영역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씻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자신들이 녹초가 될 때까지 일을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본성을 존중하는 것을, 청동조각가가 청동상을, 무용가가 무용술을, 수전노가 돈을, 헛된 이런 자들이 자신의 일에 몰입할 때는, 자신이 마음먹을 일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먹고 자는 일을 포기한다. 당신은 공동체를 위한 행동들이 더 하찮고 노력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명상록> V.1.3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나에게 주어진 운명과 임무를 위해 몰입하는가? 내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사랑한단 말인가? 예수와 동시대 살았던 랍비 힐렐은 탈무드에서 자기응시와 자기사랑에 대해 <선조들의 어록> I.14에서 다음과 같이 외친다.
“내가 나를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하겠는가?
내가 나 자신을 위한 유일한 사람이 아니면,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란 말인가?”
사진
<에체 호모(이 사람을 보라!)>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안드레아 멘테냐 (1431–1506)
템페라, 1500, 72 cm x 54 cm
파리 자크마르 앙드레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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