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8.3.(月曜日) “흑야黑夜”

2020.8.3.(月曜日) “흑야黑夜”

희망의 빛이 사라지고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의 늪 한가운데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유대인 작가 엘리 위젤Elie Wiesel처럼 그것을 온몸으로 표현한 작가는 없을 것이다.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자신의 경험을 ‘침묵의 글’로 표현하였다. 그는 1928년 당시 루마니아에 있는 트란실바니아(후에 헝가리에 편입되었음)의 조그만 동네에서 태어났다. 엘리 위젤은 보수적인 유대 가정에서 정통 유대인으로 성장한다. 그의 아버지 슬로모는 유대인 게토인 ‘쉬테틀’에서 잡화상을 운영했으며 신앙생활에 열정적이었다.

엘리 위젤은 어려서부터 유대인 경전인 토라, 그리고 토라에 대한 구전 해석을 모아놓은 탈무드, 심지어는 유대 신비주의인 카발라에 심취해 깊은 신앙심을 가졌다. 헝가리에 반유대인 정서가 만연했지만, 나치의 반유대 정책이 영향권 밖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가족은 안전했다. 그러나 1944년 3월 독일이 헝가리를 침공해 꼭두각시 정부를 수립하면서 엘리 위젤을 포함한 헝가리 유대인들의 운명은 바뀌게 된다.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은 헝가리에 거주하는 유대인 학살을 직접 지휘하기 위해 그곳에 도착한다.

1944년 당시, 헝가리에서 독일과 폴란드로 이동된 56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됐다. 엘리위젤이 살던 ‘시겟’이라는 도시에서는 1만 5,000명의 유대인 학살 이후 50가정만 살아남았다. 1944년 5월, 그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 그의 가족과 쉬테틀 거주자들은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로 이송됐다. 엘리위젤은 그곳에서 부모와 여동생을 잃고 혼자 살아남아 프랑스로 이주했다. 엘리위젤은 홀로코스트의 충격으로 10년 동안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가족, 친구, 그리고 유대 인종이 학살된 것을 목격한 청소년 엘리위젤이 할 수 있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인간의 언어로 홀로코스트의 경험을 담아낼 수 없었다.

그는 1956년 이디시어로 된 『Un di Velt Hot Geshvign(그리고 세상은 침묵하였다)』라는 제목의 자전적 소설을 출간한다. 그 후 1958년 그의 작품은 프랑스에서 『La Nuit』 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이 책은 다시 영어로는 <Night>, 한국에서는 <흑야>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됐다. 한 유대인의 절망적인 내용이 담긴 이 책은 처음에는 출판조차 꺼려했으나 후에 홀로코스트에 관해 가장 널리, 그리고 많이 읽힌 책이 됐다.

소설의 화자는 엘리에제르라는 소년이다. 엘리에제르는 작가 엘리위젤의 경험을 전하는 소설 속 ‘제2의 자아’다. 이것은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소년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정통 유대교 소년에서 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인간성에 대한 심각한 오류를 발견하며 세상에 환멸을 느낀 청년으로 변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엘리에제르의 신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신에게 기도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왜 기도했냐고? 왜 사냐고? 왜 숨 쉬냐고?”라고 다시 묻는다. 전지전능하고 자애로운 신에 대한 그의 믿음은 무조건적이며 그는 신앙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던 그의 신앙이 홀로코스트를 경험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엘리에제르의 신앙은 유대 신비주의인 카발라였다. 카발라는 신은 세상 어디에나 있고 신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신적인 세계의 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세상은 선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엘리에제르의 이러한 믿음은 홀로코스트에서 자신이 경험한 잔혹성과 악의 엄연한 횡포로 인해 흔들리고 만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는 신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그는 우주를 창조하고 인간에게 선을 베푸는 신이 나치로 상징된 인류의 절대 악이 만행을 저지르도록 허락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신앙심으로 가득한 동료 유대인들이 이 극한 상황에서 쉽게 종교심을 포기하고 이기심으로 가득한 잔인함과 폭력을 일삼는 동물로 변하는 모습에 실망한다. 만일 모든 유대인들이 힘을 합쳐 나치의 만행에 항거한다면, 엘리에제르는 나치의 위협을 객관화해 악으로 대상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료 유대인들 내면에 만연한 악의 모습은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의 실망은 바로 악의 ‘무정형성’, ‘무객관성’ 혹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그는 홀로코스트를 통해 나치뿐만 아니라 동료 유대 포로들, 유대인들, 심지어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이기심과 악, 그리고 잔인함을 확인했다. 이 세상은 이기적이고 잔인하기 때문에, 신도 이기적이고 잔인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험은 엘리에제르의 신앙을 근본적으로 일깨운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첫날부터 그는 자신의 신앙 문제와 씨름한다. 이 씨름은 신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의 존재에 꼭 필요한 요소다. 엘리에제르의 카발라 신비주의 스승인 랍비 모세 알쉬흐가 왜 기도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엘리에제르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신이 저에게 올바른 질문을 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다시 말해 질문은 신앙의 핵심이다. 홀로코스트는 엘리에제르에게 선과 악의 본질, 신의 존재에 대한 적나라한 질문을 묻도록 강요한다. 이러한 질문을 한다는 것은 그가 아직 신을 의지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엘리에제르를 가장 괴롭히는 풀 수 없는 숙제는 신이 침묵한다는 사실이다. “내게서 나의 살고 싶은 욕망을 영원히 빼앗은 그 칠흑 같은 침묵을 내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또한 게슈타포가 어린아이를 목매달아 처형하는 장면을 보고 한 유대인이 “신은 도대체 어디 있나?”라고 하는 이 외침에 대한 대답은 “아우슈비츠 안에 도도히 흐르는 완전한 침묵”이었다. 전지전능한 신이 신실하게 신을 믿는 자들에게 이러한 극악무도한 폭행이 일어나도록 허락하고 방관할 수 있는가? 이러한 공포의 존재와 신의 침묵이 엘리에제르의 신앙을 뒤 흔든다.

이 장면은 <창세기> 22장에 등장하는 장면과 유사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한 이른바 ‘아케다 사건’에서 아브라함은 신에 대한 추호의 의심도 없이 이삭을 바치려 했다. 그 순간 신은 자신의 전령인 천사를 보내 이삭을 살린다. 천사는 신이 아브라함의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 이러한 일을 벌였다고 전한다. 신은 결코 무고하게 피를 흘리게 하는 그런 매정한 존재가 아니다. 『흑야』에서 침묵과 무반응으로 점철된 신과는 달리 아케다의 신은 침묵하지 않았다.

<흑야>는 아케다 이야기에 대한 충격적인 반전이다. 신은 그 끔찍한 순간에 개입해 무고한 사람들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새로운 삶의 모습을 제시한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어갈 때처럼 신은 침묵한다. 천사가 내려와 유대인들을 구하고 아우슈비츠를 불태우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엘리에제르의 아버지 슬로모가 두들겨 맞아 피범벅이 되었을 때, 엘리에제르가 아무리 신을 불러도 돌아오는 반응은 ‘침묵’이었다. 아케다 사건에서 신은 희생을 요구하는 점이나 홀로코스트에서의 신의 침묵은 신이 자비하지 않다는 증명이다. 그런 신이 이 세상에 필요한가? 신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 인간 허상의 투영인가? 엘리위젤은 신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의에 대해 침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의 욥의 깨달음과 유사하다. 신이 인간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리가 없다. 이 절망가운데 정말 희망이 있을까?

사진

<부켄발트 홀로코스트 수용소>

가운데 칸 왼쪽에서 여덟 번째가 엘리위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