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8.23 (日曜日) “호흡呼吸”


나의 목숨을 지탱하는 필수적인 물질들이 있다. 나는 손으로 외부의 물질을 입을 통해 몸 내부로 음식을 섭취한다. 그러나 인간은 최대한 30일 정도 금식할 수 있다. 음식을 먹는 행위보다, 더 중요한 내 몸 자체의 내부 활동이 있다. 심장 박동과 호흡이다. 우리는 목숨을 매 순간 지탱해주는 이 신체의 활동들을 무시한다. 당연하고 흔하기 때문이다. 심장과 숨은 우리가 활동하던지 수면상태에 있든지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작동한다. 심장은 하루에 100,000번 정도 박동한다. 그러나 심장이 만일 1분 이상 작동하지 않으면 인간은 곧 사망에 으른다. 인간은 하루에 23,000번 대기 중에 있는 공기를 입과 코를 통해 호흡한다. 우리는 숨을 최대한 3분정도 참을 수 있다. 그 이상으로 숨을 쉬지 못한다면 바로 죽음이다. 우리 대부분은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심장과 숨을 의식하지 않고 하루를 보낸다.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가면, 의사가 가장 먼저 하는 행위는 청진기를 귀에 꽂고 심장박동수와 숨쉬기를 듣는다. 인간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면서 먼 거리로 차를 타고가 즐기지만, 정작 매 순간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는 숨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이 없다. 숨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자기보존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활동이다.

인간은 불안하면 호흡이 가빠진다. 요가수련중 호흡훈련은 빨라진 호흡을 가다듬어, 편안하고 길게 늘리는 수련이다, 고대 인도인들은 기원전 12세기 베다 시대로부터 의식적인 호흡인 ‘프라나’prāṇa를 인지하였다. ‘프라나’는 ‘호흡’이란 의미이지만 현대적인 의미로 산소를 들어 마시는 행위가 아니라 매 순간 삶을 지탱하는 ‘활력’活力이다. 프라나는 우리를 둘러싼 우주로부터,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공기로부터 삶을 지탱하는 에너지를 얻는 방식이다. 이 에너지가 무엇보다도 호흡이기 때문에, 프라나를 호흡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프라나는 우리의 안과 밖에서 에너지를 공급하고 조절하면서 편만하게 퍼져있다. 아침이면 눈이 떠지고 음식을 소화시키고 달리기를 하면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고 바이러스가 와도 항체 면역력으로 물리치는 과정을 복잡하고 섬세하다. 프라나는 인간이 만든 어떤 첨단기계보다 정확하고 간결하게 자신의 임무를 자연스럽게 수행한다. 또한 지구의 자전과 공전, 사계절의 변화, 철새들의 이주, 식물의 변화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인 프라나가 숨어있다.

호흡은 요가수련자 안에 있는 오래된 자아를 밖으로 내보내고 우주 안에 있는 에너지를 자신의 몸 안으로 들여오는 의례다. ‘영감’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인스퍼레이션’inspiration이 ‘프라나’가 지닌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영감’이라는 몰입을 통해 영적인 기운인 ‘스피리트spirit’를 몸 안으로(in) 불러들이는 행위다. 학교는 인생에 가장 중요한 도구들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걷기, 달리기, 식사하기, 인사하기, 숨쉬기, 말하기, 읽기, 쓰기, 생각하기 등은 성인이 돼서야 스스로 배우기 시작한다. 인도인들을 오래전에 인간에게 매 순간 에너지를 공급하는 호흡에 관한 훈련을 ‘프라나야마’prāṇāyāma라는 용어를 빌어 요가훈련의 기초로 삼았다. 이 단어는 ‘삶의 에너지’를 의미하는 ‘프라나’prāṇa와 ‘늘리다; 조절하다’란 의미의 ‘아야마’āyāma의 합성어다. ‘프라나야마’는 ‘삶의 에너지를 조절(yama)하는 방법’ 혹은 ‘삶의 에너지가 자유롭게 흐르도록 장애물을 제어하고 제거하는 방법’이다. 프나라야마는 우주의 조용한 섭리를 관찰하고 동참하려는 인간의 노력이다.

의식적이며 자연스러운 호흡법은 <요가수트라> II.49-51에서 ‘하타요가’란 명칭으로 자세히 소개될 것이다. 파탄잘리는 <요가수트라> I.34에서 요가수련의 중요한 과정으로 ‘호흡’의 방법을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प्रच्छर्दनविधारणाअभ्यां वा प्राणस्य

pracchardana vidhāraṇa ābhyāṁ vā prāṇasya

“프라차르다나 비다라나 아브얌 바 프라나스야”

이 문장이 번역은 이렇다. “혹은 요가수련의 목적은 날숨 전에 숨을 정지시키는 호흡 훈련으로 달성할 수 있다.” 이 문장에는 ‘혹은’이란 의미를 지닌 단어 ‘바’vā 가 들어있다. <요가수트라> I.34-39문장에는 모두 이 단어가 포함되어있다. 파탄잘리는 요가수련의 방해물을 제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이 접속사를 이용하여 여섯 가지를 부가적으로 설명한다.

‘호흡’으로 번역된 산스크리트 단어 ‘프라나’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생명력; 활력; 에너지; 생명의 원칙’등 다양하게 번역가능하다. ‘프라나’는 ‘숨쉬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안’an과 ‘앞으로 나가다’란 의미를 지닌 접두어 ‘프라’pra의 합성어다. 인간의 몸을 쉬지 않고 움직이게 만드는 생명의 원동력이다. ‘안’이란 단어는 인간의 숨쉬기 행위를 그대로 옮긴 의성어에서 조성된 단어같다. ‘안’을 시작하는 첫 음가인 ‘아’ 발음하기 위해서 먼저 숨을 들여 마셔야 하고 그 두 번째 음가인 자음 ‘ㄴ’을 발음하기 위해서는 숨을 내쉬어야한다. ‘안’은 들숨과 날숨을 표현한 의성어다.

프라나는 힌두철학에서 우주 안에 존재하는 생물과 무생물 모두에게 깃들어 있는 에너지를 지칭하는 용어다. 요가수련자는 자신의 활력을 신장하여 육체적이며 정신적인 건강을 향상하기 위해 프라나를 이해하고 훈련해야한다. 프라나는 육체 안에서 ‘나디스’nadis라는 힘의 통로를 통해 이동한다. 몸 안에서는 수천개의 통로가 있다. 그들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세 가지다. ‘이다’ida는 척추의 왼편에 위치한 들여 마시는 음의 통로, ‘핑글라’pingla는 척추의 오른편에 위치한 내쉬는 양의 통로, 그리고 ‘수슈마’sushuma는 척추 중앙에 위치하는 통로다.

호흡은 다음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숨을 들여 마시는 ‘프라카’praka, 숨을 들여 마신후 그 상태를 유지하는 ‘아브얀타라 쿰바카’abhyantara kumbhaka, 그런 후 숨을 내쉬는 ‘레차카’rechaka (exhalation), 그리고 마지막으로 숨을 내쉰 후 그 상태를 유지하는 ‘바흐야 쿰바카’bahya kumbhaka다. 파탄잘리는 이 네 단계 중 세 번째 ‘레차카’와 네 번째 ‘바흐야 쿰바카’를 다른 단어를 이용하여 ‘날숨’을 ‘트라차르다나’pracchardana 로, 날숨 후 정지를 ‘비다라나’vidhāraṇa로 표현하였다. ‘트라차르다나’는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여 수련을 방해하는 생각들을 과감하게(프라) 축출시키는(차르다) 행위다. 그런 후 ‘용감하게 (비)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임무를 위해 자신을 정렬시키는 (다라나) 훈련이다.

요가수련을 위한 훈련은 요가수련장이 아니라 매 순간이다. 내가 어디에 있던지, 내가 숨을 쉬는 이 찰나도 수련의 과정이다. 내가 숨을 내쉬는 행위는 내 생각 속에 남아 있어 수련을 방해하는 잡념을 쓸어내 보내는 과감한 행위이며, 날숨 후 잠시 정지하는 순간은 내가 지금 이 시간에 이루어야한 고유한 임무를 상기하고 다시는 패기가 있는 결심이다.

사진

<14살쯤으로 보이는 소녀>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1834–1917)

조각 , 98.9 x 34.7 x 35.2 cm

워싱턴 국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