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8.18 (火曜日) “모세Moses”
COVID-19가 그 거만한 우리를 굴복시키고 있다. 먼지보다 수 천 배나 작은 바이러스가 느닷없이 나타나, 현명하고 이성적인 우리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정확한 수학적 능력으로 우주선을 아득하게 먼 화성에 정확하게 안착시키고, 인류의 몸 안에 숨겨진 난해한 유전자 정보를 판독해냈다. 그렇게 자신만만한 우리의 자존심이 한순간에 구겨져 버렸다. 인생의 중요한 것은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들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어, 형용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인간사회를 지탱하는 기둥과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신뢰, 배려, 공감, 충성, 사랑과 같은 가치가 재화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사치라고 여긴다. 우리는 오감을 지속적으로 자극하여 중독이 된 쾌락을 행복이라고 착각한다.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이며 폭력적인 동물인 인류가, 과연 지구에서 다른 동물들과 자연의 혜택을 누리면서 공존할 자격이 있는지, 호된 시험을 치루고 있다. 시간이 달팽이 움직임처럼 느릿느릿 움직인다. 지난 1월에 멈추기 시작한 시간이 속도를 줄여 거의 멈췄지만, 그 시간이란 우주의 주인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벌써 거의 9개월이나 내보냈다. 요즘 하루는 코로나 확진자 숫자발표 시작한다. 하루는 다음 날 확진자 숫자 발표를 기다리는 초조다. COVID-19은 우리의 코에 고삐를 걸어놓고 이리저리 자기마음대로 흔들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를 이 혼돈의 물에서 건져낼 영웅英雄은 어디 있는가?
영웅은, 범인과 다르기 태어나 특별한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영웅이 아니라, 영웅적이며 감동적인 일을 상상하고 그 일을 위해 온전히 몰입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범인凡人으로 태어나지만, 누구나 영웅이 될수 있다. 영웅이란 자신이 될 수 있고 되어야만 하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무모한 모험을 감행하는 자다. 인류는 언제나 그런 무모한 인간인 영웅으로 칭송해왔다.
영웅들은 어려운 시절에 등장한다. 기원전 24세기 인류 최초의 셈족 왕국인 ‘아카드’왕국을 ‘사르곤’이 바로 그런 인간이다. 그의 이름은 쐐기문자로 ‘샤-루-기’(šar-ru-gi 𒊬𒊒𒄀)로 표기되었다. ‘샤루기’라는 이름은 셈족어인 아카드어와 세계의 어느 언어하고도 유전발생학적으로 상관이 없는 고립어인 수메르어 합성어다. ‘샤루’šarru는 아카드어로 ‘왕’이란 의미며 ‘기’gi는 수메르어로 ‘정당한; 합법적인’이란 의미다. 후대 셈족인들인 바빌로니아인들은 ‘샤루기’를 šar-ru-um-ki-in(𒊬𒊒𒌝𒄀𒅔)으로 표기하였다. ‘합법적인’이란 의미를 지닌 수메르어 단어 gi를 아카드어 kīn으로 번역하였다. ‘샤루킨’은 영어로는 Sargon으로 한국어로는 ‘사르곤’으로 표기한다. 자신의 이름을 ‘합법적인 왕’이라고 지었으니, 그는 분명 왕가의 적법한 승계자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사르곤’에 대한 전설은 후대에도 지속되었다. 기원전 7세기 신-아시리아 시대에 기록된 ‘사르곤 전설’이 기록된 토판문서가 19세기에 발견되었다. 이 문서는 사르곤의 자서전적 기록이 담겨져 있다. 누군가, 자신이 사르곤에 되어, 영웅의 시작을 표현하였다. 그는 이 문헌에서 자신은 ‘신전 여사제’ 혹은 ‘창기’에서 태어난 사생아라고 말한다. 고대 근동지방에서 여사제는 ‘신전창기’로 풍요를 비는 남자들을 성적으로 접대하여 풍요를 빌었다. 사르곤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출생을 말한다:
“나는 위대한 왕이며 아카드 왕국의 왕인 사르곤이다.
나의 어머니는 여사제였고,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른다.
내 아버지의 형제들은 거친 언덕들을 좋아했다. (야만적인 유목민이었다)
내 도시는 유프라테스 강둑에 위치한 아주피라누Azupiranu다.
나의 사제 어머니는 나를 임신하여 몰래 나를 낳았다.
그녀는 나를 갈대를 엮은 바구니에 놓고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역청을 바구니 사방을 발랐다.
그녀는 나를 강물에 띄웠다.
강은 나를 물을 깃는 아키Akki에게로 인도하였다.
물을 깃는 아키는 나를 아들로 받아들여 키웠다.
물을 깃는 아키는 나를 정원사로 임명하였다.
내가 정원사였을 때, 이쉬타르 여신이 나를 사랑하였다.
나는 (xx)년동안 왕으로 치리하였다.”
셈족의 조상이며 아카드 왕국의 창건자인 사르곤의 탄생에 관한 전설은, 영웅탄생신화의 전형이다. 비천하게 태어난 사르곤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여 영웅이 되는 과정을 적었다. ‘사르곤’ 영웅신화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인 ‘모세’의 탄생 이야기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모세는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지낼 때, 히브리인 자식으로 태어난다. ‘히브리인’은 후대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인처럼 인종적인 명칭이 아니라 사회학적인 명칭이다. ‘히브리인’을 ‘정착할 곳이 없어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히브리인들은 이집트에 거주하면서 점점 수가 늘어나자, 이집트인들이 히브리인들을 산아를 제한하기로 결정하였다.
구약성서의 두 번째 책인 <출애굽기>은 그런 불안한 상황에서 시작한다. 이집트 왕 파라오는 히브리인에게서 태어나는 남아들을 모두 나일강에 유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자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익명의 레위지파, 즉 사제집안 출신 히브리 남성이 또 다른 사제집안 출신 여성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다. 아이의 어머니는 석 달 간 이 아이를 몰래 키웠다. 그녀는 더 이상 비밀리에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하여 기발하지만 전형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살린다. <출애굽기> 2.3는 이 순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녀가 더 이상 그(아이)를 숨길 수 없자,
그녀는 파피루스로 만든 바구니를 마련하여 역청도 송진을 발랐다.
그녀는 아이들 그 안에 두고 나일강 둑의 갈대 사이에 두었다.”
위 문장에서 ‘바구니’를 의미하는 히브리 단어 ‘테바’(tēbā(h))는 의미심장한 단어다. ‘테바’는 <창세기>에서 노아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모든 동식물들과 자신의 가족을 태운 ‘방주’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테바’는 히브리 민족을 구원하여 자유를 선사할 모세를 담은 ‘바구니’이면서 인류를 구원할 노아의 ‘방주’이기도 하다. 그때 마침, 파라오의 공주가 바구니에 담긴 아이를 보고 불쌍히 여겨, 그 아이를 강에서 건져 살린다. 파라오 공주는 이 아이의 이름을 ‘모세’라고 부른다. ‘모세’는 히브리어로 ‘건져내는 사람’이란 뜻이다.
모세의 등장은 우연인 것 같지만 필연이고, 평범하지만 비범하다. 파라오 딸에 의해 보잘 것 없는 바구니에서 발견되었지만, 그는 광야에서 ‘나는 나다’라는 신의 음성을 듣고 히브리인들을 구원하는 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어린 모세는 나일강 둑에서 악어나 야생동물의 먹잇감으로 사라질 수도 있었지만, 히브리인들을 자립하는 공동체로 담금질하기 위해 이집트로부터 탈출시켰다. 영웅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환경에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포기 속에서 연약한 불빛으로 등장한다.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사진
<모세를 발견하다>
네덜란드 화가 로렌스 알마-타드마Lawrence Alma-Tadem(1836-1912)
유화, 137.5 x 213.4 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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