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8.14. (金曜日) “용서容恕”

2020.8.14. (金曜日) “용서容恕”

용서는 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일방적으로 무효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깊이 묵상하고 상상하여 내가 상대방과 하나가 되는 순간에 일어나는 신비다. 우리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존재한다. 자신의 실존적 경험에서 대상인 세상을 이해하려고 시도하고, 자신이 경험한 세계가 유일한 세계가 아니라는 깨달음에서 ‘용서’의 긴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논어> 위령공 15편에서 공자의 수제자인 자공이 묻는다. “선생님, 인간이 일생을 통해 명심하고 행해야 하는 가르침을 한마디로 말씀해주십시오.”(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그러자 공자는 “아마도 서(恕)일 것이다(其恕乎)”라고 말했다. 공자는 인간 수양의 최고의 단계를 바로 ‘용서’라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기원전 6세기에 나라를 잃고 1948년 독립할 때까지 거의 2,500년 동안 이른바 ‘디아스포라(Diaspora)’ 생활을 했다. 이들은 유럽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와 심지어는 중국에서 유대인들만의 집단촌인 게토를 이루면서 지속적으로 차별받으며 살아왔다. 자신들의 민족성을 잃지 않기 위해 그들은 마치 생명처럼 종교 의식과 절기를 지켰다. 안식일 준수와 유대 절기 준수, 그리고 그들만의 음식법인 코셔(Kosher)는 이들이 생존을 담보하는 마지노선이었다. 여기 19세기말 폴란드 바르샤바에 거주하던 가난한 유대인 부부 이야기가 있다.

이 부부는 자기 집 마당에 가건물(수카, Sukkah)로 집을 지어 7일 동안 머무는 ‘장막절’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에서 탈출한 후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던 시절을 기억하며 새로운 땅에 들어갈 것을 기원하는데,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그들은 10월말 ‘장막절’이 되면 수카 안에서 음식을 먹으며 일부 신실한 유대인들은 그 안에서 자기도 한다. 과거 이스라엘인들이 사막에서 40년 동안 지낸 후 가나안으로 들어가 나라를 세운 것처럼 자신들도 언젠가는 이스라엘로 돌아가 나라를 세울 것을 기원하는 중요한 의례다.

유대인들은 ‘룰라브’(Lulav, 대추야자나무) ‘하다스’(Hadas, 도금양나무) ‘아라바’(Aravah, 버드나무) 그리고 ‘에트로그’(Etrog, 시트론)라는 네 가지 식물을 들고 기도한다. 이 네 가지 식물은 디아스포라에 사는 유대인들의 네 가지 유형이기도 하다.

우선 ‘룰라브’(대추야자나무)는 맛은 있으나 향기가 없는 식물이다. ‘룰라브’는 경전 연구와 오랜 묵상을 통해 박식하나 선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을 상징한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면 무엇 하겠는가. 공자도 『논어』에서 “시경 300편을 외우고도 정치를 맡아서 민심을 통달하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 전문적으로 잘 대처하지 못하면, 비록 많이 외우고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룰라브는 선행이 없는 믿음은 소용없다는 것을 상징한다.

두 번째 ‘하다스’는 향기는 있으나 맛이 없는 식물이다. 이 식물은 천성적으로 착하긴 하나 토라를 공부하지 못해 그 선행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다. 경전 연구와 마음의 훈련을 통해 항상 영감을 받고 선행이 습관이 되지 못한 유형의 사람이다. 세 번째 ‘아라바’는 맛도 없고 향기도 없는 식물로 토라를 연구하지도 않고, 천성적으로 선행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네 번째, ‘에트로그’는 시트론(유자)이다. 에트로그의 특징은 향기도 좋고 맛도 있어서 토라를 지속적으로 묵상하고 연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가장 모범적인 유대인의 상징이다. 여기 에트로그의 본질에 대해 동유럽 유대인들을 통해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18세기 말 동유럽 폴란드 바르샤바에 거주하는 유대인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가난한 살림임에도 다가오는 고대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후, 광야에서 거주하던 과거를 기념하는 장막절을 준비하고 있었다. 때는 10월 말. 이 부부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바르샤바 집 마당에 ‘장막’를 짓고 있었다. 나무판자로 대강 기둥을 만들고 지붕은 큰 나뭇잎으로 덮어 지내는 자기정화 의식이다. 그런데 남편에게 골칫거리가 생겼다. 장막절을 위한 네 가지 식물이 있어야 하는데 ‘유자’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희귀 과실이었다. 이 식물들을 준비하고 의례에 사용하는 행위는 신의 명령이다.

이 명령을 지킴으로써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에서 벗어나 언젠가는 꿈에 그리는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부인에게 유자를 준비하지 않으면 장막을 짓는 의미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러자 부인은 “신이 준비할 것입니다!”라고 말하고는 장막절 식사 준비를 위해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남편은 부인의 말에 힘을 얻어 열심히 수카를 짓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때 아주 오래된 친구가 그를 찾아와 안부를 묻고는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가져왔다는 유자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친구는 자신도 사용해야 하는 소중한 물건이지만 이 유대인 친구에게 유자를 팔기로 마음먹는다. 남편은 10루불이라는 당시 거의 한 달 월급과 맘먹는 거금을 주고 유자를 구입한다.

유자를 구하게 되어 무척이나 신이 난 남편은 그것을 부엌에 잘 놓아둔 뒤 부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다시 수카를 마무리하는 데 열중한다. 그런데 시장에서 돌아온 부인이 부엌에 놓인 유자를 레몬으로 착각해 저녁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만다. 수카를 완성하고 돌아온 남편이 부인에게 유자를 구하게 된 기쁜 사연에 대해 말한다. 이 유대인 부부는 “신께서 모든 일을 준비하셨다!”라고 말하며 눈물이 글썽해 신에게 기도했다. 부인이 그 귀한 유자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남편이 부엌 식탁에 두었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한다. 부인은 울음을 터뜨리며 그 유자를 시장에서 사온 레몬으로 착각해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고 말한다.

남편은 잠시 얼굴색이 변하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잠시 후 말없이 아내를 조용히 껴안는다. 부인은 당황하며 “왜 당신은 나를 책망하고 혼내지 않고 껴안습니까? 제가 신의 명령을 어기게 만들었는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더욱더 사랑스럽고 다정한 눈길로 아내를 보며 말한다. “유자는 내일까지 준비하면 되지 않소. 지금 이 순간 신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명령은 당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이요.” 유자의 진정한 의미는 용서다. 종교의 위대한 교리나 가르침보다 내 이웃과 원수까지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신의 가장 위대한 명령이다.

용서(容恕)라는 한자어는 그 본래 의미를 추적하는 중요한 단서를 남겼다. 먼저 용(容)자에는 ‘얼굴; 모습; 몸가짐, 그릇에 담다’라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용(容)자 모양은 ‘집’을 의미하는 갓머리(宀집, 집 안)와 ‘계곡’을 의미하는 곡(谷)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대상을 보고 그 대상을 요목조목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느낌, 커다란 산과 계곡을 하나의 커다란 덮개로 씌울 만큼 그 대상에 품어내는 인상(印象)같은 것이 아닐까?

한자 서(恕)의 의미는 ‘용서하다; 헤아려 동정하다; 깨닫다; 밝게 알다’이다. 서(恕)자 모양은 ‘동일한 것’을 의미하는 여(如)와 ‘마음’을 의미는 심(心)이란 글자의 합성어로 ‘다른 사람의 마음과 내 마음을 일치시킬 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용기 같은 것이다. 나는 타인의 잘못을 책망하는가? 아니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적하고 용사하는가? 나는 용서하는 내 자신을 용인하는가?

사진


<레몬은 든 랍비>

마크 샤갈 (1887-1985)

유화, 1914, 100 x 81 cm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