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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9(木曜日) “승화昇華”

2020.7.9(木曜日) “승화昇華”

저는 매일묵상의 글을 쓰면서, 제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조그만 변화를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글을 올리는 동안 인간을 변화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 명상-산책-글쓰기-독서일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요즘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변화하였는가?”

“나는 나에게 감동적인 인간이 되어 타인의 삶에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었는가?”

이 질문은 당혹스럽습니다. 거울에 비친 저의 모습이 초라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조그만 유혹에 흔들리고 나태하며, 하루라는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신뢰가 아니라 이기심으로 저와 관계를 맺은 분들에게 의도하지 않게 걱정과 고통을 번번이 주기 때문입니다. 그 대답은 불확실하고 심지어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새가 알에서 지낸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듯이, 나비가 애벌레의 습관을 완전히 유기하듯이,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이 될 것을 상상하였습니다. 인간이 자기 수련을 거쳐 승화단계로 진입하면, 이전의 상태에서 탈출하여 전혀 새로운 존재로 영원히 머무를 것이라고 착각하였습니다. 종교에서는 이 단계를 ‘깨달음’ 혹은 ‘깨침’이라고 말합니다. 깨달음이란, 이전이 자신이 착용하고 있던 색안경을 버리고 새로운 색안경을 장착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새로운 색안경도 시간이 지나면 유기의 대상입니다. ‘깨침’이란 과거의 색안경으로 구축한 세계관을 과감하여 부수기 시작하는 용기입니다. 개인이 깨우쳤다고 모든 진리를 통달하거나 공중부양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뮈의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야기처럼, ‘더 나은 자신’을 추구하는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정상에 도달했다고 마음을 놓은 순간, 그 큰 바위가 한순간에 산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목격합니다. 시시포스가 다시 하산하여 초인적으로 끌어올린 바위는 정상으로 끌어 올립니다.

승화는 아무런 유혹이나 시련 없이 유유히 지내는 단계가 아닙니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더 높은 정상을 발견하는 깨달음입니다. 그것은 마치 수학자의 삶과 같다. 그(녀)의 수학실력이 나아질 때마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어려운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알면 알수록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고백한다.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도저히 알 수 없는 신비로 가득 차 그 앞에서 취할 태도는 경외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과연 나비처럼, 그 이전의 습관을 버리고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여 하늘로 높이 날라오를 수 있을까요? 승화는 과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고체의 상태에서 액체 상태를 거치지 않고 기체로 변하는 도약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관찰하여 즉시 자기를 혁신하려는 도전입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장애물은 방해가 아니라 극복해야할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임무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를 가능한 한 더 나은 장소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임무는 자신을 감동시킬 정도로 의미가 있고, 자연스럽게 주위에 있는 타인에게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오늘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정성스럽게 사려는 마음가짐과 그런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언행이 승화입니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별’입니다. 자기혁신을 스스로 연습하지 않고 진리하고 주장하는 철학사상이나 종교교리에 순응하는 사람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발견한 별을 자신의 별로 착각합니다. 그런 위대한 사상들은 우리 스스로 자신에게 유일하고 감동적인 길을 찾으라고 촉구하는 훈련교본일 뿐입니다. 인간에게 유일한 구원은 사상이나 교리가 아니라 ‘자기극복自己克服’입니다. 내가 발견해야할 별은 도달할 수 없는 저 하늘에 있지 않습니다. 그별은 내가 두 발을 묶어 좌정하고 눈을 감으면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 발견되길 기다라는 원석原石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별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별이 자신의 별이라고 착각합니까?

사진


<니체>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

유화, 1906, 201 cm x 160 cm

스웨덴 스톡홀름 틸Thiel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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