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5(日曜日) 매일묵상 “나오미Naomi"
저의 이름은 나오미로 잡종견雜種犬입니다. ‘나오미’는 성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영웅이자 왕인 다윗의 증조할머니로 그 의미는 ‘달콤한 여인’이란 뜻입니다. 저는 원래 모진 운명을 타고나 비참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존재였으나, 지금은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에 입양되어 새로운 삶을 이제 막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채취를 한 번도 맡은 적이 없어 그들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 고아孤兒로 태어났습니다. 제 몸은 온통 검은 색입니다. 심지어 눈의 흰자위도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슴에는 흰 눈송이보다 더 하얀 털이 하트모양으로 나있고 네 발은 흰색 페인트 통에 들어간 것처럼, 하얀 장갑을 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유난히 긴 다리와 흰색 발로 사뿐사뿐 걷는 모습이 유명한 흑인여성 모델 ‘나오미 캠벨’Naomi Campbell과 같다고 하여 나를 구조한 분이 붙여준 이름입니다. 저의 파란만장한 삶을 여러분께 알려드릴 참입니다.
누군가 제가 태어나자마자, 제 목에 꽉 조이는 노란색 고무 밴드를 묶어 놓았습니다. 그 인간에게는 장난이었지만, 제겐 죽음과 같은 공포였습니다. 그 고무 밴드는 점점 커가는 목 주위를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급기야 상처를 내고 살 속으로 깊이 파들어 가버렸습니다. 내 목에 감겨졌던 그 공포의 고무줄은, 이제 밖에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목을 깊이 파고 들어갔습니다. 목 주위의 살과 뼈와 뒤엉켰습니다. 제가 목소리를 밖으로 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움직일 때마다 신경조직을 건드려 순간순간이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어떤 분이 저를 발견하였습니다. 목 주위 상처에 진물이 흘러내려 움직이지도 못하고 불쌍하게 길바닥에 버려진 저를 구조하여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분은 선한 의도로 저를 구조하였지만, 결국은 제 고통을 방치하고 심화하였습니다. 앞뒤가 횅하게 뚫린 허름한 개집에 못을 박아놓고 저를 다시 1m 쇠줄에 묶어놓았습니다. 그는 무시무시한 쇠줄을 차마 진물범벅인 목에 묶지 목하고, 대신 허리에 묶어 놓았습니다. 저는 아마도 허리에 개-목줄이 묶인 최초의 개일 것입니다. 저를 처음 구조한 그분의 행위는 그에겐 최선이었지만, 저에겐 최악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주는 음식찌꺼기로 하루하루 겨우 목숨만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저의 모습을 우연이라고 보셨더라면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셨을 것입니다. 저는 항상 의기소침한 가장 불행한 동물이었습니다. 숨 쉴 때마다 느끼는 통증을 참아내며 도망가지 못하도록 허리춤을 조이는 쇠줄로 허리도 구부정하게 구부러졌습니다. 제가 묶인 장소도 동네 사람들과 차들이 빈번히 지나나니는 먼지가 펄펄 날리고 벌레와 모기가 들끓는 골목길이었습니다.
작년 12월 중순 추운 오후, 저는 운명적인 분들과 만났습니다. 그 부부는 우연히 제가 거주하고 있는 골목을 차를 타고 우연히 지나던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저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즉시 차에서 내려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제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취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쇠줄이 허리춤에 매여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들의 심장박동수가 빨라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눈에 눈물이 솟아오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이분들은 며칠 동안 매일 저를 방문하여 배설물을 치워주고 추위를 견딜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김치찌개 찌꺼기와 생선뼈조각에 익숙한 제가 처음으로 사려와 신선한 물을 마시며 음식의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 이들은 저를 키우고 있는 분들에게 무엇인가를 설득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다음날 이 부부의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전처음 차를 타 보았습니다. 속이 울렁거리고 목에 통증이 더 심해졌습니다. 우리는 가평을 떠나 서울 한남동에 있는 한 동물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 병원 원장님과 모든 스탭들이 저를 반갑게 맞아해 주었습니다. 제가 그런 환대를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원장님은 세 시간 동안 고름과 피로 굳어버린 저의 목 주위 털들을 제거하였습니다. 그 비린내가 너무 역겨워, 원장님은 구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원장님은 외과의사로서 이전에 집도해본적인 없는 수술을 집행하였습니다. 목 전체 둘레를 한 땀 한 땀 벌려 그 안에 이미 살과 뼈와 엉킨 노란 고무줄을 조심스럽게 제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고무줄이 목주위 신경조직과 엉켜 붙어 극도의 정교함을 요구하는 대수술이었습니다. 4시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그 다음날 눈을 뜨니, 이 병원 회복실에 누어있는 저를 발견하였습니다. 목에는 베이지색 압박붕대가 감겨져 있고 발에는 링거 주사바늘이 몇 개나 꼽혀있었습니다. 저는 눈을 깜짝거렸습니다. 제가 죽었는지 아니면 살아있는지 파악하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습니다. 목에는 통증이 있었지만 숨쉬기는 한결 쉬워졌습니다. 제 생애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본적이 없는 숨쉬기였습니다. 저는 신이 바로 들숨과 날숨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원장님은 그런 나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셨습니다. ‘베티’입니다.
제 주위에는 저를 집도한 원장님과 다른 수의사들, 그리고 간호사들이 저를 바라보고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제 고통이 없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저녁, 저를 이 병원으로 데려온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크리스마스이브 데이트를 나와 함께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목에 붕대를 감고 그들 앞에 가만히 앉았습니다. 그들이 눈에서는 연민과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안도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새로운 가정에 입양될 때까지, 원장님은 임시보호자가 되었습니다. 저의 7개월 동물병원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사연으로 이 병원을 찾아오는 수많은 개들을 환영하는 ‘접수담당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나비넥타이나 스카프를 메고 모든 개들과 견주들을 그 사람들의 상황에 맞게 접대하였습니다. 저는 수백 마리도 넘는 사연이 많은 개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병원에 방문한 개들의 상태를 순식간에 파악합니다. 그들이 병원 문을 지나 또 다시 강아지 안전 문으로 들어오면, 저를 처음 만남니다. 저는 그들에게 다가가 냄새를 맡고 건강과 기분을 파악하기 위해 주위를 몇 번 돌면서 긴장을 풀어줍니다. 원장님은 제 엄마가 되었고 간호사들은 제 이모와 삼촌, 그리고 병원을 방문하는 개들은 제 친구가 되었습니다.
저를 병원으로 데려온 부부와 원장님은 제가 병원에만 머물러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입양하기에 적절하고 훌륭한 분을 신중하게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간절한 기도가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저의 반려자되어 주겠다는 분이 등장했습니다. 그 분은 사실 저를 구조한 부부와 깊은 인연을 맺은 분입니다. 그는 그 부부가 구조한 반려견 세 마리를 이미 키우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이분은 반려견을 입양하고 자신이 사시던 강남에서 양평으로 이주하신 분입니다. 저는 7개월 동안 저를 돌봐준 병원식구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모두들 아쉬워했지만 저의 행복을 위해 저를 결정했습니다. 저는 지금 저를 구조해 주신 분의 차를 타고 저를 입양하시겠다는 분의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그가 어떤 분인지, 그리고 그분이 키우고 있는 반려견들이 저를 좋아할지 무척 궁금합니다. 이 집에 도착해서 벌어진 이야기는 다음 주에 이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진
동물병원에서 반려견들을 안내하는 나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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