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30(木曜日) “희망希望”

2020.7.30(木曜日) “희망希望”

희망은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바램이다. 깊고 짙은 밤이 지나야 새벽의 여명黎明이 모습을 드러내듯이, 희망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절망의 과정을 ‘훌륭하게’ 극복한 자들에 주어지는 선물이다. 희망은 바로 고통과 절망이 힘겹게 마련한 자식이며, 인간이 오늘의 불완전한 삶을 내일의 완전한 삶으로 전환하기 위한 마음가짐이다.

인간의 삶에서 ‘희망’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의미를 여실히 드러내는 이야기가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 ‘판도라 이야기’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고대 인도인들이 생각한 것처럼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생각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킬레우스가, 자신이 트로이 전쟁에서 전사할 것이라는 사실을 감지했지만 자신의 명성名聲만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참전하여 장렬히 전사하였다. 전형적인 비극이야기다. <오디세이아>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고향 이타가로 돌아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만나 왕권을 되찾기까지 10년이나 걸렸다.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신들로 시샘하여, 온갖 고행을 한 후에 겨우 고향에 도착한다. 원래의 자신이 되기까지, 인간은 오래된 자아를 살해하고, 새로운 자아를 배태시켜야한다.

호메로스의 작품과 함께 고대 그리스인들이 문자로 남긴 최초의 작품은 헤시오도스가 기록한 서사시 <신통기>다. ‘판도라 항아리 이야기’는 이 책의 560~612행에 담겨 있다. 프로메테우스(‘선견지명’先見之明)와 에피메테우스(‘후견지명’後見之明)는 올림푸스 신들에 대항하는 타이탄 신들이 반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신들은 타이탄 신들을 영원히 탈출할 수 없는 타르타로스에 감금하였지만, 프로메테오스와 에피메테우스에겐 호의를 베푼다. 신들을 이들을 대신해 노동할 ‘노예’인 ‘인간’을 창조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진흙으로 만들고, 아테나는 그 진흙 형상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이 이야기는 옥스퍼드 학자 M. 웨스트가 지적한 것처럼, 바빌로니아 인간창조신화인 <에누마엘리시>와 <아트라하시스>의 영향을 받아, 고대 그리스 문화와 정서에 어울리게 나름대로 각색한 것이다. 문화는 강물과 같아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있는 곳에서 없는 곳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흘러간 강물은, 자신이 정착한 지형에 맞추어 새로운 모양을 갖춘 이야기로 탄생한다.

인간을 창조한 프로메테우스는 에피메테우스에게 지상의 동물들이 각자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을 선사할 특권을 준다. 예를 들어 빠름, 힘, 가죽, 날개 등을 각자 동물에게 만들어 선사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에피메테우스에게 모든 자질을 부여하여, 정작 인간에게 할애할 자질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는 인간들에겐 어떤 신적인 자질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프로메테우스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에게 신적인 자질 두 가지를 주었다. 하나는 ‘두발로 걷는’ 이족보행이며, 다른 하나는 ‘불’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들의 동료인 타이탄들을 지하 세계에 감금시킨 올림푸스의 신들을 공경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 숭배의 대상이 되려한다. 이 신화는 이제 신-중심 세계에서 인간-중심 세계로의 전이를 의미한다. 인간 이성이 신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을 대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제우스가 인간들에게 신들에게 제사로 드릴 동물의 가장 좋은 부위를 바치라고 명령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명령에 따라 수동적으로 사는 로봇의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두 개의 고깃덩어리를 준비하여 신을 속일 참이다. 하나는 향이 나고 먹음직스러운 기름이 붙어 있지만 온통 뼈밖에 없는 제물과 겉이 가죽으로 둘러싸인 순 고깃덩어리다. 제우스가 앞으로 자신이 선택한 것을 정기적으로 제사 음식으로 받겠다고 약속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자신이 받을 제사를 향기를 통해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제우스는 향기가 나는 뼈를 희생제물로 선택했다. 제우스는 인간으로부터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뼈만 받을 운명에 처했다. 그는 자신이 속인 프로메테우스에게 분노하여, 인간으로부터 인간문명의 문명의 핵심인 불을 빼앗는다. 인간은 다시 다른 동물들과 같은 짐승으로 돌아간다.

프로메테우스는 야만적인 생활을 하는 인간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태양에서 횃불에 불을 훔쳐 인간에게 건네 줄 참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제우스는 더욱더 화가 나 인간과 프로메테우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을 가한다. 그는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스토스에게 인간에게 고통을 줄 “아름다운 악”인 여자를 만들도록 명령한다. 이는 당시 가부장적인 그리스의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한 듯하다. 흙과 물로 빚어 몸이 완성되고 네 바람이 불어와 생명을 불어넣었다. 헤파이스토스가 여자를 창조한 후, 아프로디테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했고 아테나 여신은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솜씨’와 은색 가운, 찬란하게 수놓은 베일, 목걸이, 그리고 은으로 만든 정교한 왕관을 선사한다. 포세이돈은 진주 목걸이를 선물해 바다에 익사하지 않도록 하고, 아폴로는 하프 연주와 노래하는 법을 가르친다. 제우스는 바보 같고 장난기가 많은, 동시에 게으른 본성을 선사했다. 헤라는 치명적인 호기심을 선사했다. 헤르메스는 그 인간에게 남을 속이려는 마음과 거짓말 하는 혀를 선사한다.

<신통기>에서 이 여인의 이름을 밝히진 않았지만, 그녀의 이름은 헤시오도스의 또 다른 작품인 <일들과 날들> 590~593행에 다음과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그녀가 처음으로 신들과 인간들 앞에 서자 놀라움이 그들을 사로잡았고 남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숨이 막힐 것 같은 간교함”이 있었다. 그녀로부터 여성이라는 인종이 나왔다. 그녀는 치명적인 인종이며, 지긋지긋한 가난 속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으나 부가 있을 때는 도움이 된다. 성서에서는 남자의 ‘갈빗대’애서 여성을 창조했다고 말하고, 그리스에서는 남성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여자’를 창조하였다. 이런 헤브라이즘 전통과 헬레니즘 전통은 여성을 물건으로 취급하여 비하하는 문명을 구축하였다. 지금까지 악용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차별의 권위적인 근거를 마련하였다.

이 인간의 이름은 ‘모든 선물’이라는 뜻의 ‘판도라’다. 판도라는 첫 여성이며, 처음에 존재했던 인간은 이제 그 상대적인 존재로 남성이 됐다. 헤르메스는 판도라에게 정교하게 만든 상자를 주면서 결코 열지 말라고 명령한다. 그런 후 제우스는 화려한 옷을 입은 판도라를 인간과 지상에 거주하고 있던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낸다. 프로메테우스는 에피메테우스에게 제우스의 선물인 판도라를 받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그만 판도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만다.

신들이 열지 말라는 상자를 바라보면서 호기심으로 가득 차 마침내 참지 못하고 ‘항아리’를 열게 된다. 상자에서는 인간이 겪어야 할 슬픔, 재난, 불행 등 모든 악들이 빠져나왔다. 그러나 항아리 맨 밑바닥에 이전 것들과는 전혀 다른 한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희망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삶이 고되다 할지라도 희망이라는 것이 있어 살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COVID-19이란 판도라 상자가 열려, 현대인들은 깊은 절망과 실의에 빠져있다. 그 항아리에 남아 있을 줄 모르는 ‘희망’을 찾아나 설 시점이다.

사진


<이브 첫 판도라>

프랑스 르네상스시대 화가 장 쿠생Jean Cousin (1500–1589)

나무위 템페라, 1550, 97 cm x 150 cm

파리 루브르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