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26.(日曜日) “보화寶貨θησαυρός”
<신약성서>에서 예수가 말하는 천국天國은 장소가 아니라 깨달음을 통한 경지境地다. 이 경지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남다른 시선을 지녀야한다. 그런 시선을 지닌 자는 어디에 있던지 자신이 존재하는 곳이 천국이다. 예수는 사람들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천국에 관한 이야기를 특별한 형식을 통해 알려준다. 바로 ‘비유比喩’다. 사실 우리가 흠모하는 최선들, 예를 들어 진선미와 같은 가치들은 인간의 경험을 넘어서기 때문에, 비유를 통해서만 설명가능하다.
천국은 종교시설에 열심히 다닌 자들이 사후에 가는 장소도 어니고, 경전을 달달 외우거나 신을 위해 헌신적인 인생을 산 사람들을 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장소도 아니다. 천국은 천국을 일상에서 이미 경험한 자들 것이다. 천국은 지금-여기에 관한 은유다. <마태오 복음서> 13장 44절에 천국을 이렇게 비유하여 말한다.
Ὁμοία ἐστὶ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θησαυρῷ κεκρυμμένῳ ἐν τῷ ἀγρῷ,
“천국은 밭에 은닉된 보화와 같다.
ὃν εὑρὼν ἄνθρωπος ἔκρυψεν,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다시 감춘다.
καὶ ἀπὸ τῆς χαρᾶς αὐτοῦ ὑπάγει
그리고 그것 때문에 기뻐, 그는 가서
καὶ πωλεῖ ὅσα ἔχει καὶ ἀγοράζει τὸν ἀγρὸν ἐκεῖνον.
자신이 가진 것을 팔아 그 밭을 구입한다.
예수는 천국을 사후세계에서가 아니라 ‘밭’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천국을 특별한 장소, 찬란한 빛이 가득한 천사들이 찬송을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 한 없이 아름다운 장소에서 찾으려 한다. 천국을 이렇게 장소라고 착각하는 인간은 우리가 사는 이 땅에 거대한 성당이나 교회를 짓는 오류를 범한다.
천국의 첫 번째 특징은 ‘일상성日常性’이다. 예수는 천국을 그 일상성을 ‘밭’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한다. 농부는 밭에서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어 가을이 되면 추수한다. 자신의 생계를 위해 땀을 흘리는 삶의 터전이다. 밭은 겨울이 되어 눈이 쌓이면 죽은 것처럼 보이다가도 봄이 되면 다시 싹을 틔워내는 신비한 곳이다. 농부는 밭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함을 배운다. 예수는 천국을 당시 가장 위대한 도시인 예루살렘이나 로마라고 말하지 않는다. 혹은 훌륭하게 건축한 종교 건물들도 언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건물에는 신을 인간의 공간에 가두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인류 최고의 가치가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이라고 깨닫고 생의 마지막을 예루살렘에서 보낸다. 그가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 가장 먼저 한 일는 거대한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 그곳을 뒤엎는 일이다. 그리고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러한데 너희는 그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버렸다”라고 외친다. 예루살렘 성전은 사람들이 자신을 심오하게 돌아보고 신의 뜻을 알기 위해 깊이 묵상하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들끓는 강도들의 소굴로 전락했다. 인간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욕망이 투사된 신을 만들어 숭배한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예배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신을 ‘이단’이라고 손가락질한다. 자신이 이해하는 신만이 참된 신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천국은 밭으로 상징되는 일상日常이다. 농부에게 밭은 힘들고 거름 냄새가 나고 땀을 흘려야 할 대상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삶의 터전이다. 예수는 ‘일상’이야말로 천국이라고 주장한다. 그 일상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학생에게는 학교와 공부, 직장인에게는 일터, 군인에게는 군대, 심지어 수감자에게는 수용소가 천국이다. 이러한 장소뿐만 아니라 내가 보내는 이 일상의 시간과 하루하루도 천국이다. 또한 나를 힘들게 하지만 나와 일상생활을 하는 나의 가족, 친구, 동료들도 천국일 것이다.
천국의 두 번째 특징은 ‘은닉성隱匿性’이다. 천국은 감추어져 있으므로 주변의 모든 ‘밭’이 천국은 아니다. 천국은 모든 사람에게 명약관화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게 드러나는 것은 십중팔구 속임수이거나 가짜다. 천국은 거대한 산 안에 숨겨진 광맥과 같다. 우리는 보통 천국은 진귀한 명품과도 같아서 모든 사람들이 소유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명품에 대한 광고에 현혹되어 그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나 참된 명품의 특징은 신비하고 미묘하고 좀처럼 찾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천국은 보통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천국이 밭이라는 ‘일상’에 숨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신은 천둥번개와 함께 강력한 빛을 뿜으며 하늘에서 등장하는 그러한 분이 아니다. 구약시대 에스겔이 경험한 것처럼 “미세한 침묵의 소리” 안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일상에 숨어 있는 천국을 어떻게 하면 발견할 수 있을까? 밭에 묻혀 있는 천국을 캐내는 유일한 방법은 그 일상을 일상으로 대하지 말고 거룩하게, 큰 손님을 모시는 것처럼, 더 나아가 신처럼 대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일상이 천국으로서의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천국의 세 번째 특징은 ‘보화寶貨’다. 성서는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다시 감춘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기뻐, 그는 가서 자신이 가진 것을 팔아 그 밭을 구입한다”라고 기록한다. 그 드넓은 밭에서 보화를 발견하는 장소는 한 곳이다. 보화의 특징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가를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화를 찾기 위해서는 다른 돌들과 구별할 줄 아닌 지혜가 필요하다. 그 보화는 매력적이고도 압도적이어서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예수는 이 보화를 다시 ‘극히 값진 진주’ 하나와 비교한다. 천국은 보화 자체라기보다는 보화를 찾는 과정이다. 예수는 말한다.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다.
(…)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그물을 던져서, 온갖 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과 같다.”
예수는 어떤 것이 우리 각자의 삶에 가장 중요한 진주인지 찾아나서는 것을 천국이라 정의한다. 보화를 찾는 것은 끝없이 탐구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은 바다에 그물을 치고 그물에 걸린 각종 물고기 중 좋은 것을 선별하는 행위다. 천국은 그러한 삶의 우선순위를 아는 지혜이며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다.
사진
<신이 아담에게 천국을 보여주고 있다>
스위스 상징주의 화가 아놀드 뵈클린Arnold Böcklin (1827–1901)
유화, 1884, 87 cm x 121 cm
독일 도르트문트 예술과 문화 역사박물관Museum für Kunst und Kulturgeschich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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