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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25.(土曜日) “일기日記”

2020.7.25.(土曜日) “일기日記”

지난 삶을 돌아보면, 나를 조금씩 변화시켜 더욱 변모하는 자신을 추구하도록 만든 계기가 있다. 2011년에 일어난 일이다. 그 시점에 서울을 떠나 시골로 이사하였고 동시에 그것을 기념하여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였다. 바로 ‘일기’쓰기다. 50년을 생존한 나에게 무슨 선물을 주고 싶었다. 지난 삶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꿈꾸면서, 내 자신의 생각을 엄연한 글로 정리하고 싶었다. 나는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붉은 색 몰스킨 다이어리를 12권 구입하였다. 내가 붉은 색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모든 글들 중에, 저는 자신의 피로 쓴 사람의 글만 사랑합니다.

피로 글을 쓰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그 피가 영혼이란 사실을 발견할 것입니다.”

누군가 인생을 바꾸기 위해서는 일기를 써야한다는 말이 생각나, 일기를 무작정 매일 쓰기 시작하였다.

대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매일묵상’ 형식처럼 연도와 날짜를 아라비아 숫자로 쓰고 괄호 안에는 그 날에 해당하는 요일을 한자로 기록하였다. 세 살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더니, 요즘 내 ‘매일묵상’ 글쓰기 형식과 동일하다. 그리곤 직접인용구 따옴표 안에 대개 두 글자로 된 주제를 쓴다. 그 주제는 한자가 있어야한다. 우리말의 중요한 개념어들은 대부분 한자에서 왔다. 한자는 영어의 라틴어처럼, 그 원래 의미를 추적할 수 있는 소중한 근거다. 그 단어에 해당하는 한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어원에서 단어의 뜻을 명확하게 획득하고 그 의미를 상상을 통해 확장할 수 있다. 예들 들어 ‘일기’라는 한자日記는 그 날 그날(日)에 일어난 사건을 내 몸(己)을 경험하여 글(言)로 표현한 것이다.

매일아침 일어나 그 날 해야 할 일을 적는 일기쓰기가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이 되었다. 하루를 정리하는 중요한 의례이기 때문이다. 특히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행위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조적인 행위다. 생각은 무형의 자산이지만, 말과 글을 그 자신을 유형의 자산이자 추상이다. 태초에 ‘말’이 있었다. 말은 생각을 여러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등장한 도구다. 신이 우주를 창조하려고 생각을 했다면, 그것은 입을 통해 ‘말과 글’로 등장해야한다.

<창세기> I.3에 처음으로 ‘말하다’라는 동사가 등장한다: “신이 ‘빛이 있으라’라고 말했더니 빛이 생겨났다.” 여기서 ‘말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 ‘아마르’āmar는 ‘말하다’라는 의미 이외에 ‘나타나게 하다; 보이다’라는 의미도 있다. 결국 말이란 자신의 생각을 소통 가능한 매개인 언어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글은 말보다 선택적이며 추상적이고 임의적이다. 프랑스 구조주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말한대로 밤하늘에 반짝이는 ★과 한국어 ‘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우리가 ★을 ‘달’이 아니라 ‘별’로 부르자고 임의적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일기는 자신의 생각을 입을 통한 말이 아니라, 손을 통한 글들의 조합을 통해 표현하는 이야기다.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단어와 표현, 그와 어울리는 이야기를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런 후에, 글이 물이 흐르듯, 스르르 거침없이 흘러가면 재미있다. 글을 쓴다는 것, 특히 일기를 쓰는 행위는 자신을 섬세하게 응시하는 인간에게 가장 어울리는 작업이다.

일기를 쓰기 위해 나는 정색한다. 정색은 내가 마음을 모아 글을 쓰려는 주제에 몰입할 때, 고요를 선물로 준다. 나는 이른 아침 혹은 늦은 저녁에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정돈된 책상에 앉는다. 좌정坐定은 묵상을 위한 준비이지만, 일기쓰기는 하루이자 인생을 위한 설계이자 점검이다. 일기는 하루를 단위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들을 미리 준비하고, 그 날, 내가 알게 모르게 행한 일들을 평가하는 나만의 법정法廷이다.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1882-1941년)는 소설가이면서 26년간 일기를 종교적으로 일기를 썼다. 그녀는 수잔 손탁Susan Sontag이나 아나이스 닌Anaïs Nin과 견줄 수 있는 헌신적인 일기작가다. 그녀는 33세가 된 1915년부터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그 후 26년 동안 1941년까지, 임종하기 4일전까지 26년 동안 매일 일기를 썼다. 그녀는 자필로 쓴 26권의 일기를 남겼다. 그녀에게 일기는 자기-탐구 이상으로 ‘글쓰기’란 예술을 위한 훈련이었다.

나는 이번 구월(2020년 9월)부터 젊은이 20명 내외를 선발하여 본격적으로 훈련시키는 ‘서브라임Sublime’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이다. 일주일에 이틀 하루 종일, 일 년 동안 고전어(라틴어와 히브리어), 경전과 고전들을 가르칠 계획이다. 8월 초에 선발공고, 자격 그리고 커리큘럼을 공지할 예정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몰스킨 다이어리를 선물하고 일기쓰기를 습관을 안겨주고 싶다. 일기쓰기가 내 삶을 조금씩 변하게 한 것처럼, 그들의 삶도 변모시켰으면 좋겠다.

사진

<버지니아 울프 초상화>

1902

영국 사진작가 조지 찰스 베레스포드 (1864–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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