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20(月曜日) “보여 줄”

2020.7.20(月曜日) “보여 줄”

일주일 내내 세차게 비가 내렸다. 일기 예보에 의하면 오늘날 예외적으로 보슬비가 오전에 잠시 내렸다 오후에 그친다고 한다. 서울로 이주하는 날이다.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20년이나 걸렸다. 10년동안 영웅 아킬레우스와 함께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고, 다시 10년 동안 고향 아타카로 돌아가 가기위해 10년동안 유랑하였다. 호메로스는 아킬레우스가 <일리아스>에서 보여준 ‘명성’보다 오디세우스가 <오디세시아>릍 통해 보여준 가치를 찬양한다. 바로 ‘귀향’歸鄕이다.

오디세우스는 전쟁에서 ‘명성’을 얻으면, 만사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명성’보다 더 힘든 영웅적인 전투가 남아있다. 바로 자신의 고향 이타카로 안전하게 돌아가, 자신의 본래 자리인 왕으로 다스리는 일이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꼬박 십년이 걸렸다. 호메로스는 ‘귀향’을 고대 그리스어로 ‘노스토스’nostos라고 불렀다. 자신의 뿌리로 돌아가는 일이기도 하여 ‘귀근’歸根이라 번역해도 괜찮다. ‘노스토스’는 인생이란 여정의 시발점이면서 동시에 종착점이기도하다.

오늘은 나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노스토스’의 날이다. 이삿짐 직원들이 오전 8시에 올 것이다. 나는 샤갈과 밸라를 데리고 오전 6시에 산책길에 들어섰다. 그 코스는 논밭-야산 산책길이 아니라 설악면에서 정착해서 맨 처음 다니던 그 길이다. 집 앞에서 시작하여 왕복 3km 정도의 도로다. 샤갈과 벨라는 나의 달리기 보폭에 맞추어 달린다. 이들이 8살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건강한 이유는, 이 달리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나에게 모든 것을 최적화 시켜주는 구원이었다.

나는 30년 전 인생의 멘토를 머나먼 미국에서 만났다. 그는 공부하러온 나에게 인생을 바꾼 나의 좌우명을 남겼다. “달리기하고, 나머지 시작에 공부하십시오!” 그의 이 말 한마디가 내 인생을 전환시켰다. 그때부터 시간만 있으면 포레스트 검프처럼 달린다. 무엇을 위해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달기기 위해 달린다. 완벽한 달 리가, 그 자체가 다른 모든 것을 최적의 상태로 정리하기 때문이다. 새벽묵상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정신적으로 알려주고 아침달리기는 그 결심을 신체에 각인시킨다.

이 이주하는 날, 신이 아브람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인생의 마감해야할 나이에 들어선 75세 아브람(후에 아브라함으로 개명)에게 신은 <창세기> 12.1에서 이렇게 말한다.

“네 고향과 친척과 어버지의 집을 떠나라,

그리고 내가 장차 보여 줄 (미지의) 땅으로 가거라!”

고향, 친척, 그리고 아버지의 집은 과거이자 관습이다. 인간은 지금-여기에서 살아야한다. 그것을 떠나야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우리가 갈 곳은 어디인가? 그 미지의 땅의 구체적인 주소는 어디인가? 이 글으 기록한 성서저자는 그 땅을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보여 줄.”

이 구절에 대한 히브리어 원문은 이렇다.

‘아르에카’( אַרְאֶֽךָּ/ ʼarʼekā)

이 구절을 문법적으로 분석하면 이렇다. 이 동사의 어원은 ‘보다’라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동사 ‘라아’의 사역형으로 그 기본의미는 ‘보게하다’다. 이 동사의 시제는 미완료형이다. 히브리어 시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과거, 현재, 미래고 구분되어 있지 않고 완료와 미완료로 구분한다. 어떤 사건이 완료되거나 완료될 것이라고 확신하면 시간하고는 상관없이 완료형이다. 과거완료, 현재완료 그리고 미래완료형이 한 단어로 표현된다. 미완료형은 아직 완료되지 않는 상태로, 진행 중이거나 미완료상태를 표시한다. ‘아르에카’를 풀어서 번역하자면 ‘내가 너에게 보여줄’이다.

신은 아브람에서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 목적지가 아니라, 자신의 구태의연한 과거와의 결별을 감행할 수 있는 용기다. 문제는 내가 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런 여정에 나설 수 있는 가다. 그 목적지는 내가 여행을 시작하는 동안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태권도를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매일의 수련이 목표다. 그 수련이 지속되면 적절한 시간에 검을 띠를 허리춤에 차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달리기 산책길 중간에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선착장으로 내려왔다. 강 건너편에 숲속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가 분이 오래전에 만드셨다. 샤갈과 밸라는 이 선착장을 특히 좋아한다. 벌써부터 입에는 미소가 가득하고 출렁거리는 물살을 관찰하고 있다. 샤갈은 청평호수의 오른 쪽을 보고 있고 벨라는 그 반대쪽을 응시한다.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의 발길 하나하나가 길이자 목적지가 되면 좋겠다.

사진


<청평호수를 응시하는 샤갈과 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