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2(木曜日) 매일묵상 “신의 손수건”

2020.7.2(木曜日) 매일묵상 “신의 손수건”

배철현과 함께 해보는 수련

산책길 논밭은 꽉 채운 풀잎들이 고요히 춤을 춘다. 한 순간도 가만있지 않는다. 미세하게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정중동을 연주한다.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춤을 춘다. 아이폰을 가져나 녹화를 하는 나를 무시하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를 잔잔한 춤으로 보여준다. 뿌리는 저 진흙 속 깊은 곳에 숨겼다. 뿌리가 풀잎들의 존재이유이지만, 과시하지 않는다. 풀잎들은 앞으로 40일이 있으면 자신의 속에서 등장한 벼를 준비하는 세례요한이다.

그런 풀잎을 휘트먼은 <내 자신을 위한 노래> 6단락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A child said What is the grass? fetching it to me with full hands;

어린아이가 나에게 양팔을 내밀어 풀잎을 가져오면서 물었다. “풀잎이란 무엇입니까?”

How could I answer the child? I do not know what it is any more than he.

내가 무어라고 아이에게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아이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I guess it must be the flag of my disposition, out of hopeful green stuff woven.

나는 추측한다. 풀잎은 희망적인 녹색을 엮어 만든 내 기질의 깃발이라고.

아이의 질문은 언제나 어렵다.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누구도 생각해 보지 않는 질문을 던진다. “풀잎이란 무엇인가?” 그는 정의란 무엇인가? 삼위일체란 무엇인가? 팔정도란 무엇인가와 같은 현학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가 무식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질문들 대개 부질없는 말장난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세상의 현자처럼 기원과 종말에 대해 이론과 학파를 설명하고 주장하지 않는다. 혹은 만고의 진리라고도 설교하지도 않는다.

시인은 아이에게 대답하기보다는, 순수한 경이로움을 품고 자신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남들한테 들었거나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가 아니라, 풀잎을 보고 경험하여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한다. 시인 또 다른 질문을 유도하는 추측으로 대답한다. 시인에게 추측이 최선의 답이다. 그는 풀잎이 무엇이지 생각하면 할수록, 풀잎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시인은 생각한다. 땅이 있으면 언제나 어디서나 자라나는 풀잎은 ‘나라는 인간의 구성을 표시하는 깃발flag of my disposition’다. 인간을 구성하는 흙이 신비한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낸 표식이다. 그것엔 말로 설명할 수 없고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살아있음’이 깃들어 있는 ‘신의 표시sign of God’다.

Or I guess it is the handkerchief of the Lord,

혹은 그것은 신의 손수건이다.

A scented gift and remembrancer designedly dropt,

의도적으로 떨어뜨린 향수가 배어있는 선물이자 기념품이다.

Bearing the owner's name someway in the corners, that we may

see and remark, and say Whose?

손수건 구석엔 주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우리가 보고 알아차리고

누구의 소유인지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시인은 풀잎을 신이 일부러 떨어뜨린 손수건이라고 말한다. 풀잎은 어디에다 떨어져 누군가의 관심을 기다리는 신이 살아있다는 흔적이다. 누군가 영적으로 깨어있다면, 그것을 주워 그 주인이 누구인지 찾을 것이다. 이 손수건에 거부할 수 없는 신적인 향기에 담겨있다. 그 손수건을 가만히 살펴 보면 구석에 모세가 발견했다는 신의 표식 ‘에흐에’ 혹은 ‘IAM’이 새겨져 있다. 사랑에 빠진 여인이 일부러 손수건을 떨어뜨려 그 연인이 주워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가져오기를 바란다. 그래야 사랑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Or I guess the grass is itself a child, the produced babe of the vegetation.

혹은 풀잎은 아이 그 자체다. 식물성장을 통해 생산된 어린아이다.

Or I guess it is a uniform hieroglyphic,

혹은 똑같은 모양을 한 이집트 상형문자다.

And it means, Sprouting alike in broad zones and narrow zones,

그리고 풀잎은 넓은 지역과 좁은 지역에서 싹을 틔우고

Growing among black folks as among white,

흑인들에게서나 백인들에게서나 자라나고

Kanuck, Tuckahoe, Congressman, Cuff, I give them the same, I receive them the same.

캐나다에 거주하는 프랑스인을 비하는 용어인 카눅, 버지니아에 원래 거주하던 인디언 투카호, 의원, 금요일에 태어난 흑인 남자아이라는 의미인 커프, 나는 그들을 같은 사람으로 취급하고 그들을 똑같은 사람으로 반긴다.

시인은 풀잎이 바로 어린아이라고 말한다. 생명의 신비인 식물성장이란 창조행위를 통해 만들어진 귀한 아이다. 그것은 이집트 상형문자처럼, 우리가 시간과 정성을 바쳐 공부할 때 비로소 판독되는 문자다. 풀잎은 백인과 흑인라는 인종을 차별하지 않고 어디에서 나 자라나는 신의 손수건이다. 이민자, 원주민, 흑인 노예, 그리고 스스로 정의의 사자라고 떠드는 정치인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자연은 신이 우리에게 자신의 흔적을 찾으라고 남긴 흔적이다. 나는 그 향기로 가득한 신의 손수건을 찾아 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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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일 아침 논밭 풀잎들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