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19(日曜日) “희생犧牲”

2020.7.19(日曜日) “희생犧牲”

우리는 지난 9년간의 시골생활을 접고 서울로 다시 이주移住하기로 결심하였다, 짧은 인생을 좀 더 치열하게 시끌벅적한 현장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1년, 내가 다시 서울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지 실험을 감행할 것이다. 청평호수의 바람과 설악산 지류의 위용이 지난 9년 동안 나를 꾸짖어 왔다. 어느 순간에 어지러운 세상에서 홀로 시골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이 사치스러워 보였다. 내가 되고 싶은 미래의 나에게 미안했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처럼, 미래나의 부름에 화답하기도 결정하였다. 단테는 <신생>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Ecce deus fortior me,

에체 데우스 포르티오르 메

qui veniens dominabitur michi.”

꾸이 웨니엔스 오미나비투르 미키

“아, 보십시오, 저보다 강력한 신입니다!

그 분은 저를 강력하게 이끌기 위해 오신분입니다.”

샤갈과 벨라를 앞세워, 지난 8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아침의례인 산책길에 나섰다. 몸무게가 37kg 샤갈과 17kg인 벨라가 마치 쌍두마차의 두 명마처럼, 나와 일심동체가 되어 때로는 천천히 걷고 때로는 달린다. 내가 이들의 몸짓, 눈빛, 그리고 목소리를 통해 원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이들도 나의 작은 손놀림을 통해 전달되는 리드줄 언어를 통해, 내가 원하는 바를 담박에 알아차린다. 오늘은 어떤 동물이 나에게 영감을 줄 것인가?

우리와의 이별이 아쉬운지, 지난 열흘 동안 이 변화무쌍한 산책무대에 한 배우俳優가 고정 출현하였다. 이례적이다. 그 배우는 어미 오리다. 오리는 논밭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다. 산책하는 의도적으로 우리를 무시한다. 아니 분명 인식하는 것 같으나, 우리 움직임을 예의주시할 뿐 동요가 없다. 오리는 진화적으로 야생동물들의 접근을 금방 알아차린다. 오리의 오감은 온통 우리에게 맞추어져 있을 것이다. 샤갈과 벨라가 무섭게 짖기 시작한다. 이 오리를 잡겠다고 아우성을 친다. 예전 같으면 이 오리는 우리가 저 멀리서 오기도 전에 후루룩 날라 가버린다.

이 어미는 샤갈과 벨라의 사나운 짖음에도 꿈쩍도 안한다. 신기한 일이다. 나는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오리 앞으로 달려 가보기로 결정했다.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오리는 멀리 날라 가 버리지 않는다. 겨우 10m정도 날라 가더니 다시 내려앉는다. 심지어, 다리를 쩔뚝거린다. 마치 우리보고 “너희들이 열심히 달려오면 나를 잡을 수 있어!”라고 유인한다. 자신을 끝까지 따라오라고 심지어 아픈척한다. 약이 오른 샤갈과 벨라는 더욱 세차게 짖어댄다.

이 어미 오리가 멀리 나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엔 우리 모두 오리가 있는 곳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그러자, 이번엔 논마지기를 넘어 저편 논마지기로 도망갈 뿐,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 얄미운 어미 오리를 두고 우리는 산책코스인 야산으로 진입하였다. 오늘따라 머리가 뾰족하고 온몸에 검은 점이 박힌 살모사를 세 마리나 보았다. 보슬비가 내리는 야산은 수많은 동물들과 곤충들의 보금자리다. 야산을 한 바퀴 등산하고 다시 논밭이 있는 산책길로 내려왔다. 그 어미 오리가 우리가 처음 본 장소로 돌아와 아직도 서성거리는 것이 아닌가!

오리가 우리와의 이별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작별인사를 하는 것인가? 나는 샤갈과 벨라는 강가 나무에 묶어 놓고 어미오리의 이상행동을 알아보기 위해 다시 오리가 있는 장소로 돌아왔다. 오리는 이제 더 여유 만만하다. 이번에 꽥꽥 소리를 낸다. 나더러 오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 오리로부터 10m정도 떨어져 가만히 앉았다. 오리도 내가 자신을 헤칠 의도가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부동자세로 있다. 서로를 응시하는 잠시였다. 몇 초였지만 오랜 시간처럼 느껴졌다. 적막이 흐르는 순간에, 논 밭 한 가운데서 풀들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그 곳에 내 주먹보다 작은 새끼 오리들이 숨죽이며 숨어있었다. 미운 오리새끼 한 마리가 참지 못하고 부스럭거린 것이다.

어미오리는 새끼오리들이 논밭 안에 있는 곤충들을 잡아먹는 동안 보초를 서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야생동물들이 습격을 하면, 자신이 그들의 주위를 끌기 위해, 심지어 비틀거리며 연기를 한 것이다. 어미는 새끼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기꺼이 희생할 것이다. 어미 오리가 인간들처럼 학교에 다닌 적도 없고 고전이나 경전을 읽은 적도 없는데, 자연스럽게 자비慈悲를 실천한다. 자비란 여유가 있어 생색을 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겨, 상대방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犧牲하려는 거룩한 마음이다. ‘희생’이란 영어단어 ‘새크리파이스’sacrifice의 어원은 의미심장하다. ‘거룩한 행위’란 의미를 지닌 라틴어 단어 ‘사크라’sacra와 ‘정성스럽게 배치하다; 만들다’란 의미를 지닌 라틴어 동사 ‘파체레’facere의 합성어다. 희생이란 자신의 성스러움을 정성스럽게 배치하는 행위‘다. 어미오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우리에게 그런 삶을 살아볼 의향이 있는지 묻는 것 같았다.

사진

<보초를 서고 있는 어미 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