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16(木曜日) “걸음걸이”

2020.7.16(木曜日) “걸음걸이”

만물은 변화무쌍하기에 지루하지 않다. 산책길에 등장한 고니들이 그렇다. 매일 아침 만나지만, 그들은 인간들처럼 지루하지 않다.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초연히 집중한다. 자신의 일에 온전히 집중하는 사람은 매력이 있다. 대부분 남들이 좋아하는 일을 흉내 내기 때문에 어설프고 재미가 없다. 자연과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이 그렇다. 인간만이 유일한 예외다.

고니는 나의 촬영을 허락한 적이 없다. 오늘 아침 신기한 고니 한 마리를 보았다. 나에게 무슨 깨달음을 주기 위해 태초로부터 작정한 천사天使와 같다. 천사란 내가 일상적으로 알수 없는 저 하늘에 있는 것을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알도록 도와주는 도움이다. 이 고니는 신비하다. 무엇인가를 향해 한 걸음 한걸음 종말론적으로 걸어간다. 자신이 이 걸음에 온전히 몰입한 나머지, 하천 건너편에서 아이폰을 들고 촬영하는 나도, 고개를 기우뚱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산책 동행자 샤갈과 벨라의 매서운 눈길로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니의 걸음과 걸음 사이는 순간이면서 영원이다. 그 순간이 만물이 창조되고 소멸하는 영겁이자, 인식하지 않으면 이미 사라져버린 순간이다.

나는 아이폰을 꺼내들고 촬영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내심 고니가 무엇인가 굉장한 장면이 연출할 것을 기대했다. 뻐꾸기를 비롯한 온갖 새들이 합창하며 응원하는 가운데, 고니가 자연이라는 최고의 무대 위에 서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조심스럽게 내디딘다. 자신이 가야할 정면에 온전히 몰입하여, 자신이 딛고 있는 발이 뭍에 있는지 아니면 강물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 걸음이 진지하여 한참 녹화하였다. 총 분량이 4분이상이다. 강물에 반영된 자신과 함께 물을 가르며 지난다. 나는 고니가 강물 속으로 그 뾰족한 부리를 전광석화처럼 집어넣고 잡어를 물고 하늘을 쳐다보며 감사인사를 한 후, 입에 문 물고기를 목으로 넘길 줄 알았다.

고니가 내 상상대로 움직일 리 없다. 고니는 오늘 고니답게 걷기로 작정한 날이다. 그것이 다다. 내가 촬영을 그만두고 육안으로 보아도 아직도 걷는다. 반려견과 그 장소를 떠나 다시 돌아보아도 걷고 있다. 고니는 걸음을 통해 자신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적당한 거리를 두고, 호기심이 많은 인간과 진돗개 두 마리가 째려보고 있는데도 상관하지 않는다. 요즘 내가 탐독하고 있는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한 구절이 생각한다.

Ὅ τι ἄν τις ποιῇ ἢ λέγῃ, ἐμὲ δεῖ ἀγαθὸν εἶναι,

“누가 무슨 짓을 하던, 무슨 말을 하던, 나는 나름대로 선한 것을 행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명상록> VII.15a

‘선’(아가쏜, ἀγαθὸν)이란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 자신의 모습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소나무는 소나무이고 잣나무는 잣나무와 같은 것이다.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이다. ‘선’이란 온전한 자신이 되어, 그것을 연습할 때, 등장하는 자연스런 자태姿態다. 만일 에메랄드는 누가 무슨 짓을 하던, 심지어 망치로 그것을 파괴해도, 에메랄드 자신의 빛깔은 햇빛에 비춰 더욱 반짝인다. 철학자 니체가 말한 대로, 인간에게 구원이란 ‘자신이 되는 것’(werde der du bist!)이다.

선을 실천하는 것은 남이 환호하는 것, 칭찬을 받을 만한 것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일을 찾아 본능적으로 즉흥적으로 습관적으로 할 때, 드러나는 아우라다. 그것은 특별한 대상에 대한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은 천지개벽하는 환경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새롭게 발견하고 발굴하는 시도다.

고니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걷는 것처럼 정성을 다하여 걷는다. 흥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태하지도 않는다. 오직 자신의 자태를 뽐내며 걸을 뿐이다. 고니는 이 걸음으로 자신의 개성을 온전히 드러내며, 누구하고도 비교할 수 있는 자신이 되었다. 고니의 걸음은 그에게 열망이자 묵상이다. 거기에는 게으름도 없고 냉소도 없다. 인간은 일상의 집중을 통해 선을 실천하여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소크라테스의 마음과 붓다의 평정심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그 순간에 알기에 지혜롭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을 통한 일상의 자태를 통해 다음과 같은 품격을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런 자는 현재의 상황을 경건하게 받아들여 만족합니다.

그런 자는 지금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대합니다.

그런 자는 검토하지 않는 그 어떤 것이 마음속에 몰래 스며들지 못하도록 외부에서 몰려오는

인상을 세심하게 분석합니다.

이것만이 당신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명상록> VII.54

나는 잘 걷는가? 한 걸음 한 순간에 정성을 담는가? 내 걸음은 어딜 가기위한 수단이자 동시에 그것 자체가 완벽한 목적인가?


동영상

<오늘 아침 완벽한 걸음을 연습하는 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