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11(土曜日) “안개”
이른 아침은 언제나 나를 안개로 맞이한다. 하늘에 있는 구름이 내가 좌정한 1층 공부방으로 앞까지 내려와 나를 조용히 부른다. 커다란 창문에 막혀 더 이상 올수 없자, 유치창이 미세한 수분을 남기고 다시 마당에 머무른다. 청평호수와 그 건너편 산들은 안개로 장식된 신비神祕다. 신비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자신의 지극한 일부만 살포시 보여준다. 내가 나머지를 알려는 순간, 이내 자취를 감춰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는다. 보고 싶어도 전체를 파악할 수 없는 사랑하는 대상의 마음과 같다.
내가 사는 곳의 주인은 안개다. 새벽마다 혹은 비가 온 후에 미지의 장소에서 내려와 온 대지를 감싼다.
어디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자신이 감싸는 대상을 침투하지만 상처를 내지 않는다. 그 대상을 포옹하여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다. 안개는 하루라는 인생의 시작을 알리는 친절한 안내자다.
<안개>를 노래한 시인이 있다. 월트 휘트먼처럼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고 우유배달부가 되어 고단한 삶을 시작하였지만 퓰리처상을 세 번이나 받은 칼 샌드버그Carl Sandburg (1878-1967)다. 그는 보통사람들의 애환을 자신의 경험으로 터득한 미국 ‘국민시인’이다. 30대에는 시카고에 있는 한 신문사에 일하면서 미국사회가 직면한 경제 불평등이 미국사회전체를 반복과 갈등으로 몰아넣었는지를 간결과 열정이라는 솜씨로 표현하였다. 그는 자유自由가 있는 곳엔 언제나 그것을 위해 목숨을 희생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샌드버그는 <안개>라는 6줄 시로, 개인, 자유, 일상, 섭리를 모두 담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안개>는 그가 시카고 그랜트 공원을 지나가다 영감을 얻어 썼다. 그는 당시 계절변화에 대한 시인의 인상을 담은 17음절로 구성된 일본 시 ‘하이쿠’에 매료되어있었다.
"Fog"
The fog comes
on little cat feet.
It sits looking
over harbor and city
on silent haunches
and then moves on.
<안개>
"안개가
조그만 고양에 다리에 내려옵니다.
안개가 앉아
항구와 도시를 봅니다.
조용히 웅크려 앉아.
그런 후 움직입니다."
우주의 심연에서 태어난 안개가 부둣가 노동자들의 밥벌이를 위한 치열한 공간인 항구로 내려온다. 전체와 일부, 무형과 유형, 무형과 유형이 만난다. 이 둘이 조우하여 상호침투하고 서로 구별할 수 없는 신비한 합일을 기꺼이 이루려한다.
나는 새벽을 신봉한다. 새벽은 언제나 나에게 고요한 마음과 오늘 펼쳐질 하루에 희망을 품도록 다독여준다. 새벽은 나뿐만 아니라 셀 수 없는 벌레들, 그들을 찾아 자신의 일부로 만들려는 새들에게도 살아있음이라는 생생한 기운을 선물한다. 안개로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짙은 안개로 변하지 않고 여명의 힘으로 온 세상이 선명한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한 프랑스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Parce que j'attends le pire, l'inattendu peut être meilleur. “내가 최악을 기대하고 준비했지만, 예상하지도 않았는데, 더 좋은 것이 등장하였다. 안개가 바로 그렇다.
안개가 부둣가에서 생선 조각을 찾아 움직이는 앙증맞은 고양이 다리 위에 내려온다. 고양이의 걸음만이 안개의 하강을 맞이할 수 있다. 고양이만이 우주의 소음들을 모두 죽이고 미세하게 완벽한 침묵으로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독립적인 인격체다. 인간이 만든 법을 따르는 법이 없다. 완벽한 자기의지와 판단으로 주위를 살피며 한 순간에 왔다 금방 사라진다. 고양이는 안개와 같이 경계나 터부를 모른다. 고양이는 쥐도 새도 모르게 천천히 움직인다. 영원한 침묵의 순간의 연속이 고양이의 걸음이다. 자신이 응시하려는 대상을 만나면, 태곳적 시선으로 황홀경에 빠져 쳐다본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초월의 시간에 이미 저기에 가있다.
안개가 고양이고 고양이가 안개다. 안개 고양이가 되고 고양이는 안개로 변해 순식간에 천천히 자취를 감춘다. 안개는 살아 움직이는 동물이다. 고양이는 항상 온 우주를 호령하는 장소에 올라가, 앉거나 눕는다. 순간을 머물기도 하고 몇 시간이고 거대한 산처럼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다. 안개로 서서히 산과 강을 감싸면서 침묵과 신비를 가져온다. 안개는 고양이처럼 보면 볼수록 알 수 없다. 완전히 알려지기를 거부한다. 고양이는 발이 아니라 다리로 걷는다. 짙은 하얀색 안개는 고양이의 다리처럼 정지와 움직임을 반복하여 이내 사라진다. 순간이 영원이고 영원이 순간이다. 지체가 움직임이고 움직임이 지체다. 나는 오늘 영원한 순간을 누릴 것인가?
사진
<호숫가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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