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19. (土曜日) “에덴Eden”

사진

<에덴동산에서 나를 바라보는 반려견들>

2020.2.19. (土曜日) “에덴Eden”

아침산책길은 나에게 더할 나위없는 에덴동산이다. 지난 4개월 동안 우리는 이곳에서 고라니, 멧돼지, 그리고 유기견만 목격하였다. 곳곳에 고라니와 멧돼지가 다녀갔다는 배설물과 땅을 파헤친 흔적만 볼 뿐이다. 나무가 쓰려져 있고 낙엽, 솔잎, 솔방울, 밤송이가 산을 아무렇게나 가득 메웠지만, 이들은 충격적으로 조화롭고 아름답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용하는 ‘칼로스 카가쏘스’(καλὸς κἀγαθός) 즉, ‘조화롭고 아름답다’라는 감정이 문득 문득 내 심장에서 용솟음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나의 눈길을 끌고 숨을 멎게 할 만큼 매력을 발산하는 대상의 기준은 무엇인가? 인류 모두에게 적용되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존재하는가? 내가 속한 공동체가 ‘아름답다’고 정의하고, ‘그렇다’고 교육받아 온 그것이 정말 타인에게도 아름다운가?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완벽한 비율을 지닌 동상들, 예를 들어 기원전 2세기 ‘밀로의 비너스’나 기원전 5세기 ‘원반 던지는 사람(디스코볼로스)’에 등장하는 인간 모양만이 아름다운가? 아니면 아프리카 원주민이 그린 그림도 아름다운가?

서양은 18세기 중반 고대 로마의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을 재발견하면서 ‘신고전주의’를 시작했다. 신고전주의는 당시 장식과 비조화, 신의 은총을 강조했던 바로크와 로코코 형식에 대항해 르네상스와 고대 그리스의 예술을 모체로 삼았다. 조화와 비율, 일치는 신고전주의의 문법이다. 18세기에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신고전주의와 더불어, 그 신고전주의가 숨 쉴 수 있는 ‘틈’들도 유럽인들 어휘에 등장했다. 천재성, 상상력, 취미, 정서, 감정, 즉흥과 같은 단어들을 통해 새로운 개념의 아름다움이 등장했다. 천재성과 상상력은 창작자의 능력을 표시하고 취미, 정서, 감정, 즉흥은 창작자가 어떤 대상에 느끼는 사적이며 시적인 능력을 시사한다. 이 용어들은 작품이 지닌 객관적이고 수학적인 특징들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사적인 태도들이다.

우리는 이제 아름다운 것의 객관성보다는 주관성에 집중한다.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원래 지닌 내재적인 가치와 그것이 아름답다고 정의한 권위가 있는 사람의 의견을 통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관찰자, 당신과 나의 즉흥적인 반응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해당 작품을 창작하는 데 필요한 원칙을 찾아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뿜어내는 반응에 대한 효과로 이동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그리스 비극을 ‘완벽한 형태를 추구하는 불안정한 연습과정에 대한 재현’이라고 정의했다. 무대 위에 선 배우의 말과 행동은 단호하고, 수단과 목적이 하나가 되며 압도적이어야 한다. 그 평가는 비극을 보는 아테네 관객들의 정서적인 반응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목표를 ‘공포’와 ‘연민’이라고 정의한다. 공포와 연민은 전적으로 비극을 관람하는 관객의 반응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단어는 ‘프락세우스’praxeus, 영어로는 ‘프랙티스’practice다. 프랙티스는 그 대상의 완벽한 추상인 이데아를 인간의 오감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기 위한 애씀이다. 그 애씀은, 순간순간 달라지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불완전인 추구이다.

18세기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1711~1776)은 ‘취미의 기준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신을 그대로 수용했다. 미에 대한 정서가 사람마다 다른 이유는 세세한 감정을 전달하는 데 필요한 상상력의 섬세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유한 섬세함을 표현하기보다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억지로 편입시키면서 눈치를 보고 문화적인 인간이라고 행세할 뿐이다.

예술에 대한 경험자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자 효과가 숭고(崇高)다. ‘숭고’라는 개념을 맨 처음 학문적으로 소개한 사람은 위(僞)롱기누스(213~273)라는 수사학자다. 호메로스의 시나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웅장하고 감동적인 표현들은 창작자와 관객 모두에게 격정적인 감동을 자아낸다. ‘숭고’란 작품 안에 숨어 있는 신비한 어떤 것으로, 그것을 온전히 감상하는 사람들을 무아 상태로 빠뜨린다.

‘숭고’에 해당하는 라틴어 ‘수블리미스(sublmis)’의 어원을 보면 그 의미를 더욱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 단어는 ‘문지방(門地枋)’이나 창, 입구 등의 위에 댄 가로대인 ‘상인방(上引枋)’, 더 나아가 ‘터부의 공간’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 ‘리멘(lmen)’과 그곳을 향해 부지런히 가는 마음의 상태를 담은 전치사로 ‘~로 향해’라는 의미를 가진 ‘수브(sub)’의 합성어다. 숭고란 남들이 감히 진입해 본 적이 없는 경계로 들어가려는 마음가짐이다.

산책을 마치고 쓰러진 나무에 예쁜이, 샤갈, 벨라를 묶어 놓았다. 호주머니에 있는 고라니 사료를 꺼내 커다른 전나무 밑에 놓았다. 고개를 드니 저 멀리서 샤갈과 벨라가 나를 본다. 그들은 분명 다음 두가지 중 하나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 사료, 왜 우리 안줘요?’ 혹은 ‘아빠, 잘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