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4. (金曜日) “용서容恕”


서양문명의 전범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전쟁할 수 밖에 없는 인간사회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일리아스>의 주인공 아킬레우스는 분노에 차있다. 자신의 애인이자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자신의 갑옷을 입고 몰래 전쟁에 나가 트로이 왕자인 헥토르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원수를 갚기 위해 트로이 성벽 앞에 서서 목청껏 소리 지른다. “헥토르, 헥토르!” 헥토르는 트로이 프리아모스 왕의 효심이 많은 맏아들이었고 아내 안드로마케에겐 자상한 남편이었다. 이 세상에서 아킬레우스와 대적해 이길 자가 없다는 것을 안 헥토르는 눈물짓는 아버지와 아내와 작별인사를 하고 아킬레우스와 결투를 한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였고 그의 시체를 전차 뒤에 매달아 파트로클로스의 무덤 주위로 끌고 다니며 시체를 험하게 훼손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최고의 장면은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전투가 아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시체를 찾기 위해 아킬레우스에게 달려온 헥토르의 아버지와 아킬레우스와의 조우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적절한 장례절차가 없이는 다음 세계에 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프리아모스는 변장해 아킬레우스의 진영에 잠입한다.

늙은 프리아모스는 굴욕적으로 아킬레우스의 발 앞에 엎드려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아킬레우스의 손에 입을 맞춘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간청한다.

“오, 아킬레우스여. 나처럼 나이가 들어 생명이 거의 다해 몸을 떠는 당신의 아버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지금 혹시 어떤 이웃이 그를 억압하고 그의 고통을 덜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는 아킬레우스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분명히 기뻐하며 언젠가 그가 당신의 얼굴을 다시 볼 것이라는 생각에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죽은 내게는 어떤 위안도 없습니다.

마치 때늦은 일리움의 꽃처럼 모든 것이 떨어졌습니다. 내게도 하나가 있긴 있었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위해 싸운 이 세상 모든 것보다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그 시체를 가지러 왔습니다.

오, 아킬레우스여! 신들을 생각하고 당신의 아버지를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아버지를 위해 내게 은총을 내리십시오!”

프리아모스의 간청이 아킬레우스를 움직였다. 아킬레우스 안에 있던 자기의 죽은 아버지에 대한 깊은 슬픔을 일깨웠다. 그도 ‘지금은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리고 파트로클로스’를 위해 울기 시작한다. 그는 자기 발 앞에 무릎 꿇은 프리아모스의 백발을 보고 그를 일으켜 세워 말한다.

“프리아모스여! 당신은 여기까지 신의 도움이 아니면 올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인간도 감히 내 앞에 설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저는 당신의 간청을 받아들입니다. 저는 당신의 헥토르에 대한 사랑에 감동받았습니다.”

아킬레우스는 이 말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곧 시신이 너무 무거워 프리아모스가 가져갈 수 없다고 생각해 두 명의 건장한 용사를 불러 헥토르 시신을 전차에 싣고 무사히 트로이로 옮길 것을 명령한다. 그는 헥토르 장례의식이 마칠 때까지 12일 동안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한다.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의 마음은 하나였다.

그리스 문명은 바로 이 정신,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는’ 서(恕)의 정신으로 시작됐다.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 페니키아인으로부터 알파벳을 처음 받아들인 후 지난 300년 동안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그리스 정신을 전하기 위해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기록했다. 그는 앞으로 펼쳐질 서양문명의 기둥은 아킬레우스의 영웅성이 아니라 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서의 정신’에 대한 찬양이다.

사진

<프라아모스가 헥토르 시신을 요구하다>

러시아 화가 알렉산더 아비노프(1806–1858)

유화, 182, 102.5 cm x 125.3 cm

트레야코프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