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9. (火曜日) “몰스킨수첩”


어제는 반가운 페북 도반들이 찾아오셨다. 페북에 글을 올리면서 함께 글을 읽고 생각을 나누던 도반들이다. 강의가 내 생각에 대한 일방적인 강요라면, 페북에 올리는 매일묵상은, 내가 오늘 생각해낸 주제와, 그 주제를 글이라는 소통수단으로 표현하여, 불특정 다수에게 점검을 받는 일련의 절차다. 급하게 글을 올려 오탈자가 종종 있지만, 글을 읽어 주시는 도반들이 있어 글을 지속하여 쓸 수 있었다.

COVID-19이 극성을 부려, 지난 11월에 도반들을 ‘코라채플’에 초청하려했지만, 여의치 못했다. 5인 이상 집합명령 금지로 부득이하게 3분만 채플에 모셨다. 문경에서 올라오신 채성오 관장님, 대전에서 올라오신 프라즈나 윤선생님, 그리고 천안에서 오신 김광선 대표님이다. 오늘은 특히 김광선 대표님에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가시는 날이다. 상상해 보면, 그가 오전 일찍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에 올라와 병원에서 점검을 받고, 오후에 이것 강남으로 오는 것이, 한라산이나 백두산 등반보다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오후 3시에 코라채플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21세기북스 정지은 본부장과 내 책을 모두 편집해서 출판한 10년 지기 양느녕 팀장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가 채플 안에서 이야기하는 동안, 썬큰Sunke쪽 유리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멀리서 귀한 손님들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바로 채플을 휘감고 있는 짙은 고동색 나무 장막을 헤치고 복도도 나섰다. 세분이 도착하셨다.

김광선 대표님은 이전에 몇 번 뵙지만, 채관장님과 윤선생님은 오늘이 초면이다. 자신의 글과 수묵화처럼 섬세한 윤선생님과 문경에 도서관을 새로 개관하신 채관장님의 얼굴을 뵈었다. 초면이지만 오래된 친구처럼 서스럼없이 반가웠다. 매일 글을 읽고 자신을 바라보고 수련하시는 모습이 이들의 걸음걸이와 웃음에서 그대로 묻어 나왔다. 이들은 3시 이전에 도착하여 바로 윗 층에 있는 ‘애슐린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고 내려오셨다.

채관장님이 꽤나 무거워 보이는, 몰스킨으로 가득한 종이박스를 두 손으로 부둥켜안고 들어오셨다. 나는 1월에 시작하는 서브라임 학생들에게 몰스킨 수첩과 만년필을 주고 5개월 동안 매일묵상일기를 쓰게 만들 작정이었다. 지난 11월 김대표님께서 이들이 사용한 라미만년필 30자루를 이미 기증하셨다. 프라즈나 윤선생님께서 나에게 자신은 몰스킨을 기증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오늘 드디어 그 수첩들을 들고 오신 것이다.

나는 윤선생님에게 선발된 9명의 학생에게 각각 5권의 수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가 원하는 수첩은 Moleskine Classic Collection 하드커버로 줄이 그러지지 않는 Plain Notebook이었다. 1-2월은 붉은색, 3월은 짙은 남색, 4월은 고동색, 그리고 5월은 노란색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윤선생님께서 수첩 앞에는 2021 The Chora Sublime 1st를 뒷면에 학생 영어이름을 이탤릭으로 도르라지는 잉크로 새겨 선물해 주셨다. 선물은 받는 사람에게 황송하지만, 주는 티를 내지 않을 때, 언제나 감동이다. 윤선생님의 마음이 그대로 스며든 선물이었다.

나는 이분들과 소파에 마주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공자가 말씀하신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를 피부로 느낀 기쁨의 시간이었다. 채관장님께도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가만히 도인처럼 말씀해 주셨다. 자신이 마련한 도서관과 관장이 되게된 인생 이야기를 말씀해 주셨다. 그곳에서 일어날 기적을 상상해 보았다. 분명히 형용할 수 도 없이 피곤하실 김대표님은, 성한 사람들보다도 더 맑고 친절하게 우리가 하는 말을 경청해 주시고, 자신의 삶의 여정과 현재 쓰고 계신 동화에 대해 덤덤히 말씀해 주셨다. 김대표님 앞에서는 항상 옷깃과 마음 깃을 여미게 된다.

나는 이분들을 위해 책을 선물해 드렸다. 세분에게 잠언 23.7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히브리어로 써 드렸다.

׀ כְּמֹו־שָׁעַ֥ר בְּנַפְשֹׁ֗ו כֶּ֫ן־ה֥וּא

커모 샤아르 버-나프쇼 켄-후

“사람은 그가 생각하는 만큼, 그런 사람이다.”

As (wo)man thinketh in his heart, so is (s)he.

‘생각하다’라는 의미의 ‘샤아르’는 동시에 명사로 ‘성문’이란 뜻이다. 생각이란 한 지점에서 성문이란 경계를 통과하려는 자신을 성문 위에서 바라보려는 관찰이다. 이들이 바라는 간절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이 몰스킨 수첩과 만년필을 받아든 서브라임 학생들이 윤선생님과 김대표님의 간절한 심정으로, 자신들이 꿈꾸는 희망을 한자 한자 적어나가길 바란다.

사진

<서브라임 1기 몰스킨 일기장과 만년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