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2.(火曜日) “발굴發掘”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샤갈-벨라와의 아침산책을 일찍 서둘렀다. 지난 토요일(12월 19일) 서브라임 지원자들 가운데 서류통과자 13명을 면접하였다. 나는 이들은 투명 아크릴판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30분간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고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마스크를 낀 지원자들로부터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마스크를 통해 나오는 목소리와 그들의 눈빛이었다. 현재의 삶보다는 더 나의 삶을 추구하는 방랑자의 눈빛이었다. 인간은 방랑하는 한, 아름답다.

2020년 12월, 이들의 열망이 나의 염원과 조우하였다. 나는 20대 후반부터 몸을 담았던 익숙한 학교를 그만두고, 2년 전 홀로서기를 시도하였다. 홀로서기를 우물쭈물하니까, 누군가 돌을 던졌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목사들과 상상해 본적도 없는 방송국이 나에게 표절시비를 걸어왔다. 나는 그 김에 일주일 만에 학교를 그만 두었다. 나는 그 김에 내가 관계하고 있던 집단 7곳에서부터 직함을 내려놓고 자유인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무엇인가 새로운 삶을 살려는 내면의 소리에 복종한 것이다. 오래전부터 아내는 내가 해야 할 일은 학교가 아니라 사회 안에 있다고 조언해왔다. 그녀는 교수직을 그만둘 것을 오래전부터 종용하였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교수직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아내의 격려와 질타 덕분에 나는 사회도 나왔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에게 어울리는 한 가지 일을 찾기 시작하였다, ‘매일묵상’글쓰기와 책 쓰기를, 가르치는 일을 대신할 나의 고유 업무하고 스스로 위안했지만, 신이 나지 않았다. 명상, 달리기, 그리고 글쓰기로 2019년을 보내고 나니, 좀 지쳤다. 마라토너에겐 결승점이 중요한데, 나는 거리를 알리는 중간 표시를 상실한 채, 달리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리더들 모임 2개를 운영하며 매주 이들과 만나 공부하고 편한 삶을 살고 있었다.

2020년 1월, COVID-19가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 이 모임들을 갑자기 중단하였다. 나의 갑작스런 중단에 모임 멤버들에게는 당황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단절하지 않으면, 아직도 뒤를 돌아보며 소금기둥이 된 롯처럼, 화석화된 인간으로 전락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갑자기’ 결정했다. 플라톤의 저작을 읽으면, 중요한 순간에 그리스어 부사인 ‘엑사이프네스eksaiphnes’가 등장한다. ‘아하’라는 깨달음은 순간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엑사이프네스’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느닷없이’란 의미다. 인간은 즉흥적일 때 진실하고 신실하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에만 복종하기 때문이다.

나는 새로운 공동체 ‘더코라The Chora’를 창업하였다. 그리고 10년 동안 고요하게 지내던 가평군 설악면을 떠나 서울로 이사 오기로 결심하였다. 아내와 ‘더코라’를 위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에 운이 좋게 도산공원 앞에 그 부지를 발견發見하였다. 무엇보다도 도산공원이 있어 몸과 마음이 정돈하고 ‘자기응시’와 변혁을 위한 최적의 장소라고 판단하였다. 나는 이곳을 ‘코라 채플’이란 이름을 지었다. 채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저미어야한다.

코라채플은 예루살렘의 지성소처럼 구분되어 장막이 쳐져있다. 흔들리는 기다란 고동색 나무가 천정에서 거의 바닥까지 매달려있다. 미세한 바람에도 장막과 같은 나무들이 산들산들 흔들린다. 그 안은 텅 비어있다. 우주창조이전의 상태인 ‘코라’chora처럼, 어머니의 뱃속, 땅 속 깊은 곳에서 커다란 나무에 자양분을 주는 어둠, 혹은 깊은 바다 속 심연과 같은 공간이다. 코라 한 벽면은 ‘위문僞門’장식이다. ‘위문’이란 이집트 피라미드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건축물로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경계다. 나는 매일 아침 이 위문 앞에 앉아, 나의 과거라는 죽음을 보내버리고, 미래하는 생명을 맞이한다. 국민대학교 김개천金開天교수님께서 내 생각을 예술적으로 표현해 주셨다.

내가 서브라임 지원자들을 면접하는 동안, 다른 지원자는 혼자 이 코라 중앙에 앉아 R.W. Emerson의 에세이 Spiritual Laws에 나오는 소명召命에 관한 구절에 대한 필기시험을 치뤘다. 나는 벽면에 보라색 글씨로 Man is His own Star, 즉 “인간은 스스로에게 별입니다”라는 구절을 적어놓았다. COVID-19상황이 위중하여 9명만 선발하였다. 이들이 1월부터 5개월동안, 토요일과 일요일에 진행되는 서브라임 수업에서 자신 스스로가 그렇게 찾고 있던 별이란 사실을 깨달으면 좋겠다. 선발된 9명 한명 한명이 원석과 같다.

한 면접자에게 서브라임 지원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교수님은 표절시비가 걸려 항상 칼날 끝에 사시는 분 같아, 배우기 위해서 왔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내가 뜨끔했다. 나는 지금 ‘날카로운 칼날’이 아니라 ‘무딘 칼날’ 위에서 나태하게 지내고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2020년을 남은 날들, 정신을 차려야겠다. 내가 이 보석과 같은 젊은이들을 발굴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젊은이들이 자신의 가슴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자기-자신이라는 별을 발굴하기를 곁에서 열렬히 응원하는 도반이다. 이들과 함께 수련하고 변화될 내 자신의 모습에 가슴이 뛴다.

사진

<라엠카이 무덤 채플>

이집트 대사제의 서쪽 벽에 새겨진 위문僞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