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1. (月曜日) “희망希望”


며칠 후면 크리스마스다. 들판에서 자던 목자들이 아이 예수의 탄생을 목격했다는 복음서의 기록을 믿는다면, 예수의 생일인 크리스마스는 겨울이 아니라 봄이나 여름에 태어났을 것이다. 신약성서의 네 복음서들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되었다는 <마가복음서>나 가장 나중에 기록되었다는 <요한복음서>에는 예수의 탄생기사가 없다.

<마태복음서>나 <누가복음서> 저자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예수에 관한 탄생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신의 도성이라고 여겼던 70년에 예루살렘이 무참하게 파괴되었다.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식민으로 절망가운에 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이들은 유대인들에게 절망을 이기는 생존 장비인 ‘희망希望’의 소식을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들은 지금부터 1만2천전까지 빙하시대에 살고 있었다. 기원전 만 년경 지구전체의 온도가 높아졌다. 우리는 이전 빙하기와 앞으로 가다올 빙하기 사이인 간빙기間氷期에 잠시 살고 있다. 빙하기시대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을 가장 위협하는 시기가 ‘동지冬至’였다. 일 년 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다. 그들은 낮에 보았던 태양이 땅거미 아래로 내려가 영원히 다시 떠오르지 않을 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동물들은 겨울이 되면, 먹을 것을 찾지 못해 동면冬眠에 들어간다. 강이나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 없고, 눈으로 덮인 초원엔 먹을 만한 과실이나 풀이 없기 때문이다.

창, 도끼, 활로 무장한 인류는 얼어붙은 자연과 정지된 먹이사슬에서 배고픔을 견뎌야했다. 어떻게 인류는 차디찬 겨울을 생존할 수 있을까? 그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어둠의 터널에서 희망을 보았다. 희망이란 절망을 처절하게 경험한 인간들이 피워내는 불씨다. 희망이란 가치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인간을 신적인 존재로 만드는 이상을 져버리지 않고 작동시키려는 엔진이다.

<마태복음서>나 <누가복음서> 저자들은, 수 만 년 전부터 인류의 생명을 근본적으로 위협한 동짓날 희망에 관한 전설들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것들은 예수 탄생에 관한 이야기로 승화하였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이고 그 노래가 ‘아베 마리아’다. 이 저자들에게 인류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춥고 배고픈 육체적인 고통과 괴로움이 아니라, 삶이 무의미하며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없다는 체념이었다.

당시 지식인들은 그 희망을 율법과 교리에서 헛되이 찾고 있었다. 이들은 경전의 사소한 구절에 대한 해설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폄하하는데 세월을 보냈다. 이들은 위안을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마련하지 못하고 시기, 질투, 그리고 상대방의 불행을 통해 스스로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위안하였다. 희망의 별이 책이나 논쟁에서 발견될 리가 없다. 별은, 고개를 숙이고 발아래 땅만 쳐다보며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려는 이기적인 인간이 볼 수 없는 장소에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 저자들은 희망을 낮에는 보이지 않다가 밤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별에서 찾았다. 이 별은 고개를 가만히 들고 드넓은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을 조용히 찾으려는 소수에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마태복음서> 저자는 이 별을 발견한 자를 ‘동방박사’라고 소개한다. ‘동방박사’는 머나먼 땅 페르시아에 거주하면서 ‘빛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를 섬기는 사제인 ‘마기’Magi들이었다. ‘마기’들은 한글 성경에는 ‘동방박사’로 번역되었다. ‘마술사’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magician이 이 단어에서 파생하였다. 별의 움직임을 보고 미래를 예측하던 ‘마기’들은 밤하늘에 등장한 커다란 별을 보고 유대까지 왔다. 이들이 별을 따라 도착한 곳은 예루살렘 궁궐이 아니라 ‘베들레헴’이라는 조그만 동네의 누추한 마구간이었다. ‘메시아’라는 희망을 발견한 사람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종교인이나 지식인이 아니라, 머나먼 이국땅에서 온 외국인이었다.

또 다른 부류는 들판에서 양떼들과 잠을 자던 목동들이었다.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목동들은 하루하루 연명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인도하여 초원으로 가서 풀을 뜯어 먹게 하고 시냇가로 인도하여 물을 먹이는 노동자다. 목동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고유한 의무를 묵묵히 완수하는 자다. 그(녀)는 양떼를 자신의 자식처럼 여기며, 양을 치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는 자다. 어느 날, 양떼들을 방목하다 집에서 너무 멀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목동은 양떼들과 함께 들판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고요한 한 밤중에 목동을 잠을 잘 수 없었다. 근처에서 이들을 공격하여 물고 가려는 늑대와 여우와 같은 야생동물들 때문이다.

목동은 쌔근쌔근 잠을 자는 양떼 위를 환하게 비추는 큰 별을 보았다. 그 큰 별들이 목동들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다.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한 갓난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분을 알아보는 표이다,” 메시아가 탄생했다는 복음을 가장 먼저 들은 사람은 종교인이 아니라 일상의 생계를 위해 묵묵하게 일하는 보통사람이었다.

천사가 전달한 내용도 파격적이다.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포대기에 쌓여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 안에 있는 말과 소 먹이통인 구유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이다. 희망이란 고개를 높이 들고 밤하늘에서 자신만의 별을 발견하는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 별은, 자신만이 찾을 수 있는 빛나는 별이다. 희망이란, 가축 먹이통 구유와 같이 자신의 일상에서 가장 흔한 것에서 발굴되는 보석이다. COVID-19으로 일상이 마비된 크리스마스는 자신만의 별을 찾을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다. 나는 고개를 들고 밤하늘에서 나만의 별을 응시하는가? 나는 나만의 ‘먹이통’에서 희망을 발견하는가?

사진

<목동들의 경배>

르네상스 화가 지오르지오네Giorgione (1478–1510)

유화, 1510, 91 cm x 111 cm

워싱턴 국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