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원칙은 인과응보因果應報다. 원인은 결과의 어머니이며, 결과는 원인의 자식이다. 결과는 가시적이며 오감으로 감지할 수 있는 어떤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결과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을 행운 혹은 불운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명명은 그 사건을 표면적으로 이해하려는 착각이다. 결과는 원인이 시간이라는 통로를 지나 구체화된 결실이다. 농부가 봄에 땀을 흘리며 정성스럽게 사과나무 씨를 심으면, 한 십년이상 지나야 사과 꽃이 만개하고 그런 후, 사과열매를 딸 수 있다. 저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이유는, 누군가 오래전에 사과 씨를 의도적으로 심고, 오랫동안 병충해에 쓰러지지 않도록 정성스럽게 가꾸었기 때문이다.
만일 한 인간이 오래전에 정직과 배려의 씨앗을 심어, 자신의 삶을 통해 몸에 습관이 되도록 교육받고 스스로 훈련한다면, 그는 정직한 인간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어려서부터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행복이며 성공이라고 배웠다면, 그는 불행하다. 학교는 그에게 비인간적인 양의 데이터를 모두 외우도록 강요하고, 사지선다형 문제들의 답을 정확하게 답하는 것이 자신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는 지름길이라고 세뇌시킨다. 그런 교육을 받는 인간은 권모술수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삶의 철학을 신봉한다. 그의 인생은 자신, 자신가족, 자신에 우연히 속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애쓴다. 자화자찬과 거만은 이런 유형 인간들의 특징이다.
1 + 1은 2다. 이 간단한 수학공식에 어긋나는 만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미세세계에서 시작하여 망원경으로 볼수 있는 저 미지의 세계에서, 이 원칙을 무너지면, 우주 전체는 한 순간에 사라질 것이다. 저 깊은 바다에 유영하는 고래의 지느러미의 모양이나, 들에 핀 야생화의 꽃잎 구조는 이 엄격한 수학원칙을 고수한다. 1+ 1은 2라는 엄연한 사실을 인간사회에 적용하면 ‘정의正義’이며 ‘공정公正’이다. 누가 1 + 1은 2가 아니라 10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런 사람의 주장은 불의이며 불공정이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만물은 자신들이 마땅히 섭렵해야할 자세가 있다. 바로 ‘순리順理’다. 산은 땅 깊숙이 보이지 않는 지하에서 시작하여 산위로 갈수록 점점 좁아져야한다. 그 정상은 반드시 산을 향해 뻗어있다. 강은 반드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쉴 새 없이 흘러 내려 가야한다. 만일 어떤 강이 높은 곳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것은 착시현상이거나 신이 우주를 파괴하러 내려온 종말의 순간일 것이다. 연못에 자라는 연꽃은 사시사철, 일월의 운동, 날씨의 변화를 온몸으로 감지하여, 한 순간에 줄기를 스르르 올려 만개하였다가, 또 다른 순간에 스스로 힘을 빼, 꽃잎을 닫은 채, 수면위로 눕는다. 연어는 바다에서 살다가 죽기 전에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 산란한 후, 일생동안 자신을 먹여준 강에서 자신의 몸을 해체시켜 희생시킨다.
순리를 모르거나 순리로부터 이탈하는 행위가 ‘재앙災殃’이다. 재앙은 천재지변이나 뜻하지 않는 변고가 아니라,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결국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른 대가다. 홍수, 태풍, 토네이도, 화산 폭발, 지진, 해일과 같은 자연재앙은 우연한 변고가 아니라 지구가 스스로 우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자구적인 움직임일 뿐이다. 인간은 과학을 통해, 그런 움직임의 원인을 규명하려하지만, 지구의 생각을 알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재앙’에 해당하는 영어단어 ‘디재스터’disaster는 재앙의 원래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다. 달은 지구주위를 한 달에 한번 정확한 거리를 유지하여 돌아야한다. 지구는 태양주위를 다른 행성들과의 중력을 유지하면서, 그 자리에서 지난 50억년동안 23도를 기울 채 돌아왔다. 태양계로 더 큰 천체 주위를 회전하고 있으며, 그 수를 셀 수 없는 천체들도 블랙홀 주위를 일정한 속도와 거리를 유지하면 돈다. 만일 지구라는 ‘별’(aster)가 자신이 일점일획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 ‘우주의 길로부터 이탈하여 떨어진다면(dis)’, 지구는 재앙이다. 다른 커다란 행성이 지구와 부딪혀 그 천구의 길로부터 이탈 할 수도 있고, 지구에너지가 고갈되어, 더 이상 자전과 공전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진입할 수도 있다. 재앙은 자신의 과거의 행적으로 지금 내가 당하는 인과응보의 실현이다.
데이라네이라는 헤라클레스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자신과 사랑에 빠질 사랑의 미약媚藥을 바른 옷을 아들 휠로스를 시켜 착용하도록 주선한다. 그녀는 그가 바른 약이 사랑의 미약이 아니라, 죽음의 독약이란 사실을 알고 재앙을 맞이한다. 그녀는 휠로스로부터 죽어가는 헤라클레스의 소식을 전해 듣고 자살한다.
무대 위로 유모가 등장하여 그녀의 자살 소식을 합창대에게 자세히 설명한다. 데이라네이라는 휠로스가 아버지 시신을 가져올 들것을 보자 오열하며 쓰러진다. 그녀가 그렇게도 희구하던 남편의 사랑을 획득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은 것이 낫다고 판단한다. 그녀는 침실로 들어가 침구를 하나하나 살피면서 노래한다. “오오, 내 결혼 침대와 내 신방이여! 영원히 잘있거라! 너희는 이 잠자리에서 나를 다시는 받지 못할 것이다.” (920-922행) 그녀는 작정한 듯이 단호하게 황금 브로치가 가슴위에서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부터 긴 왕비 복을 벗었다. 그녀의 옆구리와 팔이 완전히 드러났다. 그런 후 쌍날칼을 집어 들고, 그 끝이 간까지 찌르도록 깊이 들이밀었다. 데이라네이라는 자신이 가야할 정도에서 이탈하여, 남편의 사랑을 강제로 독차지하려고 음모를 세웠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한 노인이 헤라클레스 시신을 들것이 운반하는 하인들과 함께 무대 위로 등장한다. 휠로스는 집에서 뛰쳐나와 아버지의 시신을 잡고 통곡한다. 그러자 노인이 휠로스에게 조용하라고 호통을 친다. 헤라클레스는 온 몸에 독이 퍼졌지만 아직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에게 의식이 돌아오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헤라클레스 인생의 마지막을 장악할 것이다. 노인은 “잠에 제압된 분을 깨우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이 광란하는 무서운 병을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977-980행) 헤라클레스는 휠로스의 통곡소리에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아직 죽지 않는 자신을 보고 한탄한다. “아 무슨 치욕인가, 이게 무슨 치욕이란 말인가. 가련한 내가 너(아들)를 보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나는 치유할 길이 없는 이 불같은 광기와 만지지 않았을텐데!” (998-1000행)
헤라클레스는 영웅으로서 자신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휠로스에게 다음과 같이 간곡히 부탁한다. “내 아들아, 이 아비를 불쌍히 여겨 주저하지 말고 칼을 빼어 들고 내 가슴을 찔러 네 불경한 어머니가 돋궈놓은 이 고통을 치유하거라. 네 어머니가 나를 죽인 그대로,
그대로 쓰러져 있는 꼴을 보았더라면! 오오, 달콤한 하데스여!” 헤라클레스는 고통 속에 죽어가면서 자신이 이룬 열두 가지 과업을 나열한다. 그는 지상의 모든 괴물들을 물리친 영웅이지만,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연약한 부인의 계략으로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모든 인간들이 가장 훌륭한 어머니의 아들이며 하늘의 지배자 제우스의 아들 었던 헤라클레스가 들것에 실려 힘없이 죽어간다.
휠로스는 데이라네이라의 계략과 실수를 헤라클레스에게 알려준다. 헤라클레스는 이제야 자신이 어떤 불행을 당했는지 깨닫는다. 그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긴다. 그의 시신을 제우스신에 계신 오이테 산 정상으로 가서 뿌리 깊은 참나무 가지와 튼튼한 야생 올리브 나무의 가지위에 그의 시신을 올려놓고 불을 지니는 화장火葬하라고 명령한다. 휠로스에게 친부살인이 아버지의 고통을 줄이는 유일한 길이다. 또한 헤라클레스의 애인인 이올레와 혼인하여 가문의 대가 이어지게 하라고 유언한다. 휠소스는 아버지의 유언을 받고 외친다. “미래에 일어나는 일은 아무도 예견할 수 없는 법. 하지만 지금 닥친 일은 우리에게는 비참하고, 신들에게는 수치스럽고, 이 운명을 참고 견디는 이에게는 비할 데 없이 잔혹합니다.”(1270-1274행)
사진
<화장용 장작위에 있는 헤라클레스>
프랑스 화가 기욤 쿠스토 (1677–1746)
대리석 조각, 1704, 74 cm x 63 cm x 56 cm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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