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2020.12.19.(土曜日) “실수失手”


“인간은 실수하기 마련이다”라는 말을 한 사람은 고대 로마시대 정치가, 철학자, 그리고 비극작가였던 세네카(기원전 4년-기원후 45년)이다. 이 명언은 다음과 같은 긴 라틴어 원문의 앞부분이다. "Errare humanum est, sed perseverare diabolicum“(에라레 후마눔 에스트 세드 페르세베라레 디아볼리쿰) 이 문장을 번역하자면 “실수하는 것은 인간적이다. 그러나 (오만 때문에) 실수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극악무도하다.” 세네카는 네오황제의 어린 시절 과외선생이었다. 네로의 악의적인 성격을 간파하여 <자비에 관하여>라는 에세이에서 네로의 미래를 예상하듯, 이 문구를 남겼다. 세네카는 결국 네로황제의 명령으로 자살을 명령받았다. 그의 잘린 목과 사지는 로마광장에 전시되어 웃음거리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종교, 정치 그리고 경제 개혁을 일으킨 장 칼뱅은 1532년 <자비에 관하여>에 대한 주석을 달아 당시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에게 종교개혁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탄원하였다.

고대 그리스 비극공연 관객들은 비극주인공의 실수를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았다. 주인공은 자신을 파국으로 몰아간다. 그는 항상 자신의 행위를 최선이라고 착각하지만, 관객들은 그의 행위를 그의 목숨을 앗아갈 치명적인 실수라는 사실을 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유일한 사람은 주인공뿐이다. 관객들은 그의 실수가 가져올 결과에 공포公布에 휩쌓이고, 그가 처할 운명에 연민憐憫을 느낀다. 그들은 무대 위 주인공의 말과 몸짓에 몰입하여 하나가 되어, 인생에서 겪지 말아야할 최악의 상황에 처한 자신을 상상해본다. 그리스 비극공연은 시민들이 자신의 공동체에서 가장 불운한 사람이 되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연습이다. 자신이라는 이기적인 경계를 넘어, 타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민교육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13, 1453a9-10, 15-16에서 주인공의 치명적인 실수를 언급한다. 그는 비극적 주인공이 지닌 치명적인 실수를 그리스어로 ‘하마르티아’hamartia라고 불렀다. ‘하마르티아’의 원래 의미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등장한다. 그 의미는 ‘과녁 빗나가기’다. 궁수가 시위를 당겨 화살을 과녁을 향해 날렸지만, 그 화살이 마땅 가야할 과녁에 적중하지 못하는 상태다. 화살이 과녁에 못 미치거나, 혹은 과녁 옆으로 비껴가거나 혹은 과녁을 넘어 과도하게 넘어가는 모든 경우가 ‘하마르티아’다. 궁수가 과녁에 명중하지 못하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과녁의 존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은 그 존재를 인식하더라도, 활쏘기 연습을 실천하지 않아, 화살을 과녁 안으로 명중시키지 못한다.

‘과녁 빗나가기’라는 축자적인 의미의 ‘하마르티아’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 비극에서는 도덕적인 의미를 취하였다. 인간이 자신의 본연의 위치와 임무를 망각할 때, 그(녀)가 저지르는 치명적인 실수다. 주인공은 자신의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한다. 그는 사건들과 사람들을, 비극을 관람하고 있는 관객들처럼 객관적으로 관조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주인공의 그런 마음을 ‘오만傲慢’이라고 부른다. 오만은 주인공의 위치와 주인공이 가야만 하는 길을 어둡게 만들어, 그는 갈 길을 찾지 못해 한없이 헤맨다. 오만한자는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 위험이 다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장님이 된다. 주인공은 결국 자신의 비극적인 종말을 자초하는 치명적인 실수인 ‘하마르티아’를 저지르게 된다.

데이아네이라는 젊은 여인 이올레에게 남편의 사랑을 빼앗겼다는 사실에 경악하면서 한탄한다. “그녀(이올로)와 한집에 살며 결혼의 행복은 나눠 가질 수는 없습니다. 어느 여자가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그녀의 젊음은 피기 시작하고 내 젊음은 지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사람의 눈은 피는 꽃은 따 모으기를 좋아하지만, 시든 꽃들로부터는 발길을 돌립니다.”(545-549행) 헤라클레스는 명목상 남편이지 사실은 이올레의 남자가 되었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되돌린 묘책을 생각해낸다.

데이아네이라에게 묘책이 ‘구원의 수단’이다. 그녀는 합창대에게 자신이 어떻게 헤라클레스를 만났는지 노래한다. 그녀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신부의 몸으로 헤라클레스를 만나기 위해 에우에노스의 깊은 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강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 강에는 반인반마 켄타우로스 족의 일원인 네소스가 보수를 받고 도강을 원하는 사람들을 팔에 안고 건네주었다. 네소스가 데이아네이라를 어깨에 둘러매고 강 한 복판에 왔을 때, 그녀를 겁탈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강 건너편에서 데이나네리아의 비명을 들은 헤라클레가 깃털달린 화살을 네소스의 가슴에 명중시켰다. 네소스가 죽어가면서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허멍한 유언을 남긴다. “오이네우스 노닝의 따님이여! 내가 강을 건네준 것이 당신에게 큰 이득이 될 것입니다...만일 그대가 내 상처 주위에, 그 중에서도 레르나의 괴사 휘드라의 담즙에 화살이 까맣게 물들었던 곳 주위에 엉겨 붙은 피를 손으로 모은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헤라클레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법의 약이 될 것입니다. 그가 그대보다 더 사랑하려고 다른 여인을 쳐다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566-577행)

휘드라는 ‘물에 사는 짐승’이란 의미다. 헤라클레스의 ‘12 고역’ 중에 하나는 휘드라를 죽이는 일이었다. 휘드라는 머리를 자르면 더 많은 머리가 자라났다. 헤라클레스는 불을 붙인 활인 화전火箭을 쏘아 제압하였다. 헤라클레스가 화전을 쏘면, 그의 조카 이올라오스가 머리가 잘린 목 부분을 불타는 나무로 지졌다. 휘드라의 독은 치명적이다. 데이라네이라는 남편의 사랑을 소유하고 싶어, 악의에 차 거짓 유언을 남긴 네소스의 말을 어리석게도 진실로 수용한다. 그녀는 네소스로부터 받은 선물, 즉 헤라클레스가 네소스를 죽일 때 사용하던 휘드라의 독을 사랑의 묘약으로 착각한다. 사랑에 눈이 먼 그녀의 치명적인 실수다. 그녀는 전령 리카스를 통해 이 독이 칠해진 웃옷이 담긴 항아리를 헤라클레스에게 보낼 것이다. 트라키스의 여인들로 구성된 합창대는 헤라클레스가 도착하기만을 학수고대한다. 마법의 옷을 입고 짐승같이 네소소의 말처럼 사랑에 흠뻑 빠져 데이라네이라와 조우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데이라네이라의 설렘이 한 순간에 걱정으로 변한다. 그녀가 축제에 나가기 위해 네소스의 피를 양모에 바르니, 양모가 한 순간아 오그라들면서 소멸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실수를 감지한다. “내가 끔찍한 짓을 저질렀어요. 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그 괴물이 죽어가면서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온 나에게 호의를 베풀겠습니까? 그 자는 자기를 쏘아 맞힌 자를 없애려고 나를 혼미하게 만들었습니다.”(705-710행) 그녀는 자신이 보낸 옷을 입은 헤라클레스는 자신에게 사랑에 빠지기는커녕, 그 즉시 독에 감염되어 죽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아들 휠로스가 등장하며 어머니를 찾으며 외친다. “어머니, 나는 어머니에게 다음 세자지를 원합니다. 더 이상 살아 계시지 마십시오. 혹은 살아계신다면, 다른 사람의 어머니라고 불리십시오. 혹은 지금보다 더 나은 마음씨를 가지십시오.” (735-377행) 휠로스는 어머니 데이라네이라가 아버지 헤라클레스를 오늘 죽였다고 말한다. 그가 아버지와 재회하는 순간, 전령인 리카스가 도착하여 어머니의 선물, 죽음의 옷을 선물하였다. 헤라클레스는 그 옷을 입고 기뻐하면서 전리품을 챙기고 가축 백 마리를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의례를 행했다. 그 순간에 비극이 일어났다. 헤라클레스의 살갗에서 땀이 나고 있었다. 그의 웃옷이 그의 양 옆구리에 엉겨 붙어 온몸에 독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헤라클레스는 고함을 지르고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구르며 신음하기 시작하였다. 휠로스는 사경에서 헤매는 아버지를 간신히 모시고 왔다. 휠로스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 어머니에게 외친다.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제 아버지께 이런 일을 궁리하시고 행하시다 발각되셨습니다. 그 죄로 정의의 여신과 복수의 여신께서 어머니를 벌하시기를!” (807-809행) 사랑을 자신의 물건처럼 소유하려는 데이나네이라의 욕심이 치명적인 실수를 유발하였다. 자, 이제 그녀는 어떻게 이 일을 수습해야하는가?

사진

<네수수를 살해하는 헤라클레스>

이탈리아조각가 잠볼로냐 (Giambologna, 1529-1608)

대리석조각, 1599년, 피렌체 시뇨리아광장 로자 데리 란치 갤러리




Kommentare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