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8. (金曜日) “욕정欲情”


사랑만큼 강력한 것이 있을까? 인간이 사랑에 빠지면 거대한 태풍의 눈에 들어서 돛단배처럼, 귀가 먹을듯한 정막으로 진입하여 자신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자신에게 존재하는 줄 몰랐던 새로운 감정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분출한다. 그 소중한 감정은 사랑하는 대상을 오감으로 인식함으로 비로소 열려지는 마음 속 보석상자다. 르네상스시대와 ‘이탈리아’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만든 시인 단테는 1295년, 시와 산문을 이용한 ‘새로운 스타일’로 <비타 누오바vita nuova>라는 작품을 남겼다. ‘비타 누오바’라는 문구를 직역하자면, ‘새로운 삶’ 혹은 한자로 ‘신생新生’이다. ‘새롭다’는 형용사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은 것, 자신의 상식과 정반대되는 것, 자신도 상상할 수 없는 저 너머의 무엇과 마주치는 대상을 꾸며준다.

단테는 <신생> 24곡 1-4행에서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내 심장에서 무엇인가 깨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잠자고 있었던 ‘사랑이라는 영혼(spirito amoroso)’입니다. 나는 이제 사랑이 저 멀리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두 눈으로 봤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나는 이제 그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르네상스, 종교개혁, 그리고 과학혁명으로 이어지는 근대사상의 총성이다. 단테는 ‘사랑’이라는 가치를 중세 그리스도교의 성모 마리아나 삼위일체에서 발견하지 않았다. 자신과 유리된 이념에 사랑이 존재할 리가 없다. 단테는 그 감정을 자신의 ‘영혼’에서 찾았다. 그 ‘사랑이란 영혼’은 단테의 심장 속에 존재하였지만, 그는 인식할 수 없었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라는 소녀를 보고, 그 마음속에서 사랑을 발견한 것이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인 사랑을 그의 심장 안에게 일깨운 촉매제였지, 사랑 그 자체는 아니다. 베아트리체는 실제로 단테의 지인과 결혼하였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통해 획득한 ‘사랑’이란 가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었다. 그 사랑이란 감정은 어떤 권력이나 금력도 넘볼 수 없는 카리스마다.

단테는 사랑을 색욕色慾과 불리 시켰다. 사랑은 자신의 최선을 이끌어내기 위해, 상대방과 나와의 간격間隔을 소중하게 여기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더불어 자기 자신의 고결한 품위를 유지하는 절제節制다. 색욕은 사랑과 유사해 보이자만, 정반대다. 상대방의 경계를 무단침입하고 자신의 정제되지 않는 감정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강요한다. 색욕의 특징은 무절제無節制다. 단테는 <신곡> ‘지옥편’에서 무절제의 첫 번째 예로 색욕을 소개한다. 단테는 생물학자이기도 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힌트를 얻어, ‘무절제’를 이탈리아아로 ‘인콘티넨짜’incontinenza라고 불렀다. ‘인콘티넨짜’의 원래 의미는 ‘요실금’尿失禁이다. 인간이 자신의 정신을 다듬지 못하고 영혼을 돌보지 않는다면, 요실금처럼, 자신의 품격과는 상관없는 어이없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현대인들은 성적인 방종, 과도한 음식섭취, 쇼핑중독, 과도한 분풀이, 그리고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이라는 요실금에 걸려있다.

심리학자인 사회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현대인들이 지닌 ‘사랑’에 대한 잘못한 인식을 <사랑의 기술>이란 책에서 바로 잡기를 시도하였다. 사랑은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기술이다. 프롬은 ‘사랑에 빠지는’ 감정이 사랑인가를 독자들에게 묻는다. 현대인들이 대중문화의 등장으로 본질적으로 외로워,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를 고대한다. 사랑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라는 황금률처럼, 진정한 겸손, 용기, 믿음, 그리고 훈련 없이는 소유할 수 없는 보물이다. 사랑은 한 순간에 빠지는 동사動詞 아니라, 상대방을 내 몸처럼 아낄 수 있도록 수련하여 도달하는 마음의 상태, 즉 형용사形容詞다. 헤라클레스와 데이아네이라의 문제는 한 순간에 빠지는 사랑이 전부일 줄 알고, 상대방을 존재存在가 아니 소유물所有物로 여겼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가 ‘오이칼리아’라는 도시를 공격하여 초토화시킨 이유는 그 도시이 공주 이올레를 보고 첫 눈에 반했기 때문이다. 데이아네이라는 남편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고 전쟁을 치르게 한 ‘사랑’의 위력을 알고 있다. 이 소식을 전해온 전령은 전체 사건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소녀를 첩으로 달라는 요구를 아버지(에우뤼토스)가 들어주지 않자, 헤라클레스는 사소한 불평거리를 핑계 삼아 [헤라클레스의 말에 의하면, 에우뤼토스가 권력을 남용하는] 소냐의 나라를 공격하여 [소녀의 아버지인 왕을 살해라고] 도시를 파괴한 것입니다.” (359-364행) 헤라클레스는 그녀를 보고 불일 듯 일어나는 애욕의 감정을 다스릴 수 없었다.

이올레는 외모가 출중하고 왕가의 공주였다. 그녀에겐 잘못이 없다. 헤라클레스의 일방적인 사랑이 모든 문제를 일으켰다. 이제 무대 위로 전령이 들을 헤라클레스의 행적을 말한 리카스가 등장한다. 리카스는 왕비의 분노와 당황을 보고, 헤라클레스의 행적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러자 전령이 다시 나서서 왕비에게 전말을 고하라고 촉구하면서 말한다. “저 소녀에 대한 애욕(포쏘스, pothos)가 전 도시를 파괴한 것이 아닌가. 도시를 파괴한 것은 뤼디아의 여인이 아니라, 저 소녀에 대한 사랑(에로스, eros)이었다고 자네한데 직접 들었지.” (431-433행) 전령은 이 문장에서 ‘사랑’에 연관된 두 가지 서로 다른 그리스어 단어를 사용한다. ‘애욕’이라고 번역된 ‘포쏘스’란 그리스 단어는 한 순간에 솟구치는 일시적인 본능이지만, ‘사랑’이라고 번역된 ‘에로스’는 화살을 맞은 심장처럼,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갈망이 담겨있다. 그 대상을 소유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열병을 앓을 것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데이라네이라는 전말을 파악하고 체념하며 한탄한다. “사랑의 신 에로스에 맞서 권투라도 할 것처럼, 주먹을 휘두르는 자는 현명한자가 아닙니다. 에로스는 신들조차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스립니다. [에로스는 나도 지배하는데, 다른 여인들은 왜 지배하지 못하겠소?] 만일 내가 이런 증세를 두고 내 남편을 나무라거나 또는 그녀(이올레)에게는 수치스럽지 않고 내게는 해롭지 않는 일에 그이와 한패인 그녀를 나무란다면, 나는 완전히 미친 사람일 될 것입니다.”(441-448행) 데이나네이라는 심지어 이올레의 심술궃은 운명을 걱정한다. 이올레는 자신의 미모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가 다스리는 나라를 파괴하고 자신을 노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리카스는 데이나네이라의 마음을 이해하고 한숨 돌리면서 전모를 말한다. “마님, 나는 당신이 인간이 생각해야하는 것을 생각하는 인간이지 오만한 인간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마님께 진실을 더 이상 숨기지 않겠습니다. 모든 것은 이 사람(전령)이 털어놓은 것처럼, 사실입니다. 저 소녀에 대한 무시무시하고 집착하는 욕망(데이노스 히메로스 포쏘, deinos himeros poths) 헤라클레스를 덮쳤습니다. 그녀 때문에 그녀의 고향 도시인 오이칼리아는 창에 유린되고 파괴되었습니다.”(472-478행)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두 주먹으로 우주의 모든 것을 굴복시켰지만, 이올레에 대한 사랑 때문에, 정복당하고 말았다. 이들의 말을 지켜보던 트라키아 여인들로 구성된 합창대는 절제되지 않는 사랑의 강력한 힘을 찬양한다. “퀴프리스(사랑의 신 아프로디테의 별칭)의 힘은 위대하다. 언제나 승리를 거둔다.” 데이라네이라는 고민에 빠진다. 사랑에 빠진 헤라클레스를 되돌릴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사진

<이롤레와 헤라클레스>

이탈리아 화가 안니발레 카라치(1560년~1609년)

유화, 1601년, 로마 파르네세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