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7. (木曜日) “전쟁戰爭”


세상에 ‘정의正義로운 전쟁’은 없다. 무자비한 전쟁을 준비하고 감행하는 자가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사일 뿐이다. 인간은 ‘도시가 제공하는 혜택을 누리며 사는 동물’이다. 우리는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가시적인 틀을 ‘문명’文明, 그리고 도시민들이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를 ‘문화文化’라고 불렀다. 인간은 도시라는 문명 안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삶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 생각해왔다. 도시는 직계가족을 넘어, 친족, 부족, 그리고 혈연과는 상관없지만 생존을 위해 이념 공동체인 민족民族, 더 나아가 영토를 상위개념으로 둔 국가國家를 만들었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이웃과 분쟁해왔다. 내가 속한 부족이 생존의 우위를 차지기하기 위해, 그 경계에서 전쟁한다. 전쟁은 원시시대부터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인 ‘빵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 언급한 ‘손톱과 발톱이 피로 물든’ 생존을 위해 타인을 죽여야 하는 약육강식弱肉強食과 적자생존適者生存을 삶의 원칙으로 고수해왔다. ‘전쟁’을 의미하는 고대 히브리 단어 ‘밀하마’milhama는 ‘레헴’lehem이란 단어에서 파생하였다. ‘레헴’은 ‘빵; 곡식; 곡창지대’라는 의미다. 고대 중동인들에게 ‘전쟁’은 빵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다.

전쟁의 이유가 원시사회에서 문명사회로 전이하면서 달라진다. 기원전 12세기경 일어난 일이다.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인에서 탈출하여 가나안에서 팔레스타인 원주민들과 싸운 이유는 정신적이며 이념적이다. 그들은 자신이 신봉하는 야훼 신을 위해 전쟁을 감행하였다. ‘야훼’의 원래 전쟁신이다. ‘야훼’의 오래된 명칭인 ‘야훼 쩨바오쓰’Yahweh Tsebaoth는 흔히 ‘만군의 여호아(야훼)’로 번역되나 원래의미는 ‘천체天體 군대들을 지휘하는 분’이란 의미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전쟁은 자신이 신봉하는 신과, 적군이 신봉하는 신들과의 대결로 여겼다.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적의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하고 연소시켜 신에게 바쳤다. 이런 전쟁의 형태를 ‘헤렘’herem이라고 부른다.

전쟁의 원인이 이스라엘에서는 종교적이며 이념적이었다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개인적이며 심리적이다. 서양의 정체성을 부여한 고대 그리스의 <일리아스> 신화는 ‘분노’라는 심리학적 의미를 지닌 고대 그리스 단어 ‘메닌’menin으로 시작한다. 고대 그리스 도시들로 이루어진 연합군이 트로이와 전쟁을 한 이유는 심리적이다. 한마디로 자존심 때문이었다.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자신의 부인 헬레네가 트로이 왕자와 사랑에 빠져 도망한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스 연합군에 참전한 영웅 아킬레우스는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를 그리스 연합군의 사령관 아가멤논이 가로채 분노하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전쟁의 원인을 생존이나 이념이 아니라, 자존심에 난 상처에서 찾았다.

고대 인도의 서사시 <바가바드기타>는 전쟁의 이유가 아니라, 전쟁의 정당성을 처음으로 제기하였다. <바가바드기타>는 ‘쿠루크세트라’Kuruksetra라는 평원에서 서로를 파괴하려는 혈육 간의 전쟁 이야기다. 판다바 왕자인 아르주나는 그의 전차를 모는 마부인 크리슈나에게 전투가 치러 질 평원의 한가운데로 가라고 말한다. 아르주나는 적들 가운데, 자신의 친척들, 친구들, 그리고 스승들이 본다. 그는 이들을 보자 전쟁을 치룰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는 마부이자 스승인 크리슈나에게 전쟁을 치러야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묻는다. <바가바드기타>는 전쟁터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기록했지만, 삶의 목적, 정체성 혼란, 영적인 추구에 대한 알레고리다.

고대 인도인들은 ‘정의로운 전쟁’을 ‘다르마-유다’dharma-yuddha라고 불렀다. ‘정의로운 전쟁’은 전쟁의 치루는 당사자들 간의 ‘균형’과 같은 기준을 제시한다. 예들 들어, 전차병은 기마병을 공격할 수 없다. 전차병은 전차병만 공격할 수 있다. 혹은 전쟁에 사용한 도구의 정당성을 토론한다. 예를 들어, 독이나 가시가 돋친 화살을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전쟁을 치루는 이유의 정당성에 대해 대화한다. 예들 들어, 상대방에 대한 분노 때문에 야기된 전쟁을 정당하지 않다. 로마인들도 ‘정당한 전쟁’이론을 원칙을 제시하였다. 기원전 4세기 로마의 멸망을 지켜본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의로운 전쟁을 두 주제로 구분하였다. 첫 번째, ‘유스 아드 벨룸’jus ad bellum. 즉 ‘전쟁을 위한 정의’는 전쟁터에서 폭력을 사용해도 되는 조건들을 나열한다. 두 번째, ‘유스 인 벨로’jus in bello는 전쟁터에서 취해야한 윤리를 제시하였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트라키스 여인들>의 초반부에 헤라클레스가 오랫동안 집을 떠나 전쟁을 치룬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데이나네이라는 15개월동안 전쟁터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 헤라클레스는 생사여부를 알기 위해 아들 휠로스를 내보낸다. 트라키스의 소녀들로 구성된 합창대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데이나네이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지금은 짝 읽은 기러기 신세가 되어, 마음이 괴로우시대요. 마님께서는 그리움에 하염없이 눈물을 지으시며, 오래전 출타한 남편 때문에 노심초사하시며 독수공방으로 여위어가십니다. 무슨 불상사가 일어날 것은 예감 때문에.”(105-111행)

데이나네이라는 헤라클레스가 두고 간 서판하나가 마음에 걸렸다. 거기에는 마치 유언이라고 한 듯 여러 가지 지시가 빼곡하게 적혀있다. 그녀가 불안에 떨고 있는데, 전령이 한명 그녀에게 다가와 말한다. “데이아네이라 마님, 전령들 중 제가 맨 먼저 마님을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드리려고 왔어요. 알크메네의 아드님(헤라클레스)께서는 살아 계실 뿐만 아니라 승리를 거두시고 신들을 위해 싸움터에서 곡식과 과일을 가지고 돌아오시고 계십니다.”(180-184행) 그녀는 이 갑작스런 소식이 의심스러워 그 출처를 그에게 묻는다. 전령은 ‘리카스’라는 다른 전령 다른 사람들에게 외치는 소리를 듣고 먼저 달려왔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빨리 달려온 이유는, 이 소식에 대한 포상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안심하며 노래한다. “오이테 (남텟살리아 지방의 높은 산) 산의 풀 베지 않는 목초지를 다스리시는 제우스시여, 늦긴 해도 이제야 그대가 우리에게 기쁨을 주셨나이다. 집 안에 있는 여인들이여! 환호하라! 그리고 집 밖에 있는 여인들로! 이 소식이 뜻밖에 빛을 비쳐주니, 우리 모두 기뻐해요!” (200-2004행)

전령 리카스가 포로로 잡힌 ‘사랑스런’ 여인들을 데리고 등장한다. 데이나네이라는 리카스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녀는 전령에게 헤라클레스가 살아있는지 묻는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이 정복한 에우보이아 섬 북서부에 있는 곶에서 제우스신을 위해 제단을 축성하고 제물을 바치고 있다. 그가 제사를 드리는 이유는 포로로 잡인 여인들의 나라를 함락시킬 때 한 서약 때문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에우뤼토스의 도시를 함락시킬 때, 자신과 신들을 위해 아리따운 여인들을 선별하였다. 리카스는 헤라클레스가 어떻게 에우뤼토스의 도시들을 함락시키고, 그 도시의 노예들도 해방시켰는지 장황하게 설명한다.

데이나네이라는 포로 중에 출충한 외모를 지닌 이올레에게 묻는다. “오오 불행한 소녀여! 너는 대체 누구이냐? 처녀인가, 아니면 어머니인가? 네 외모를 보아하니 결혼 같은 것은 알지 못하는 양갓집 규수로구나!” (307-309행) 이올레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리자, 이번에 라키스에게 그녀에 관해 말한다. 이올레가 여태껏 일언반구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리카스가 이제, 여자포로들을 데리고 집으로 향해 움직이려하자, 전령이 나서서 데이나네이라를 막고 말한다. 전령은 헤라클레스가 에우뤼토스와 전쟁을 일으킨 이유를 말한다. “헤라클레스는 저기 저 소녀(이올레) 때문에 에우뤼토스와 성탑이 높은 오이칼리아를 내던지셨습니다...소녀를 첩으로 달라는 요구를 그녀의 아버지가 들어주지 않자, 헤라클레스는 사소한 불평거리를 핑계를 삼아 소녀의 나라를 공격하여 소녀의 아버지인 왕을 죽이고 도시를 파괴하셨습니다.” (352-364행) 헤라클레스가 좀처럼 애욕에 휩싸이지 않는 영웅이지만, 이올레를 보고 한눈에 반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데이아네리라는 울부짖는다. “아아, 기구한 내 팔자!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나는 그런 줄로 모르고 어떤 재앙을 내 지붕 밑으로 받아들였는가? 아아, 불운한 내 신세!” (375-377행) 헤라클레스는 한 여인을 차지하기 위한 사적인 전쟁을 벌였다. 데아나네이라는 사랑하는 헤라클레스의 사랑을 돌릴 묘책을 궁리한다.

사진

<에우리티오스 포도주 단지>

기원전 600년, 세라믹, 46cm x 46.5cm x 28.2cm

상단 중간에 헤라클레스가 오른 손을 뻣어 술잔을 들고 그 앞에 이올레가 서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