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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6. (水曜日) “시기猜忌”


행복幸福이란 마음의 상태다. 외부의 자극이나 환경에 의해 나의 ‘행복’이 영향을 받는다면, 나는 불행不幸하다. 불행이란 자신의 행복은 유지할 수 없는 상태다. 하루는 나의 오감을 자극하고 유혹하는 광고들로 넘쳐난다. 저마다, 내가 불행한 이유는, 그것이 광고하는 물건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행복이, 내가 조절할 수 없고, 내가 개선할 수 없는 외부에 있다면, 나는 영원히 불안과 초조 안에서 헤매며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저 공중에 떠있는 풍선風扇과 같아, 바람이 불지 않고 고요하면 잠시 행복하다고 느끼고, 비바람이 치면, 불행하다고 느낄 것이다. 비바람은 불기 마련이고, 천둥번개는 치기 마련이다. 행복은 비바람에 도달할 수 없는 내 마음 속에 고요히 존재存在한다.

인생이란 항해는 크고 작은 사건들의 연속이다. 이 연속적인 사건들에 일희일비하는 경솔한 마음과 반응이 불행의 시작이다. 행복은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것에 기대지 않는다. 운이 좋은 일들은 자만하지 말고 더 겸손하게 정진하라는 충고이며, 불운한 일들은, 앞으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이다. 자신이 짧은 인생동안 반드시 성취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고 그것에 온전히 몰입하는 내공이 행복이다. 행복은 마치 마당에 핀 장미薔薇와 같다. 사람들은 누군가 장미를 심어 놓았고, 그 장미가 잘 피도록 관리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장미에게 ‘왜 너는 장미꽃을 피웠느냐?“라고 묻는다면 장미는 대답할 것이다. “그 질문은 어리석습니다. 그냥 핀 것입니다.” 과학과 기술은 그 원인과 결과를 정확하게 설명하려 하지만, 장미의 마음은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을 옳고 상대방은 틀리다는 극단적인 생각이며, 틀린 상대방은 제거할 수 있다는 폭력을 신봉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가만히 돌아보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보는 숙고熟考를 모른다.

자기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자신이 해야 할 한 가지를 숙고를 통해 발견하는 자는 언제나 부자富者다. 그(녀)는 미래에 이룰 자신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신을 숙고한 적이 없고 행복을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찾아 경쟁에 몰두하는 사람은 항상 가난하다. 그(녀)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신의 소유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하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을 독립적이며 고유한 존재로 보지 않고,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는 숫자를 이용하여, 자신의 가치와 타인의 가치를 비교한다. 자신의 그 숫자가 적으면,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그런 상대에 대한 첫 반응은 ‘부러움’이다. 그의 시선은 자신의 심연에 존재하는 행복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고정되어 있다.

부러움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할 때,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헛된 바램이다. 인간의 DNA가 모두 다르듯이, 개인은 저 마다의 소질素質이 있다. 교육은 무엇을 암기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사적인 소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것을 발견하여 발휘하라는 격려다. 부러움이 시간이 흐르면, 시기猜忌로 변한다. 자신의 고유함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개하는 행위가 시기다. 어떤 대상에 대해 근거가 없는 의혹을 제기하여, 그들과 같이 시기의 대상을 사냥하고 있는 대중과 연합한다. 시기를 품은 개인이나 공동체는 자신이 내뿜은 나쁜 기운으로 스스로 자멸한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트라키스 여인들>은 인간이 지난 가장 기본적인 감정인 소유욕, 시기, 그리고 그것이 초래하는 비극을 아테네 시민들에게 보여준다.

<트라키스 여인들>은 소포클레스의 비극들 중 가장 이해하기 힘들어 널리 알져지지 않는 작품이다. 신화적 배경이 복잡하고, 그 주제가 현대인들이 이해하기는 난해하다. 이 비극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 부분은 ‘데이라네이라’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데이라네이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최고의 영웅인 헤라클레스의 두 번째 부인이다. ‘데이라네이라’의 이름은 의미심장하다. 이 이름은 그리스어로 ‘살해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데이오오’deioo와 ‘남편(남자)’를 의미하는 ‘아네르’aner의 합성어로 ‘남편을 살해하는 여인’이란 의미다. ‘데이라네이라’라는 이름에서 이 비극에서 일어날 비극적인 가정불화와 사건을 상상할 수 있다. 두 번째 부분은 헤라클레스가 데이라네이라가 마련한 옷을 입자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데이나네이라가 자살하는 내용이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시민들은 제우스의 아들인 헤라클레스에 관련된 전설을 잘 알고 있었다. 제우스는 일생동안 그의 정직을 의심하는 아내 헤라에 의해 고통을 당했다. 헤라클레스는 테바이의 공주 메가라와 취하여 세 아들을 낳았다. 헤라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헤라클레스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 결과 헤라클레스는 메가라와 세 아들을 활로 쏘아 죽인다. 처자식을 죽인 헤라클레스는 델포이로 가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한 신탁을 받는다. 신탁은 그에게 명령한다. 헤라클레스는 이제 미케네로 가서 ‘에우리스테우스’ 왕의 노예가 되어 12가지 과업을 완수해야한다. 이것인 ‘헤라클레스의 12과업’이다. 헤라클레스는 이 12과업 중에 하나로, 저승세계로 내려가, 지옥을 지키고 있는 삼두견인 케르베로스는 지상으로 데리고 온다. 헤라클레스는 그곳에서 영웅 멜리아그로스의 혼백을 만났다. 멜리아그로스는 그에게 자신이 죽고 나면, 누이동생 데이라네이라와 결혼해 달라고 부탁한다. 헤라클레스와 데이라네이라가 결혼하게된 경위다.

<트라키스 여인들>은 이런 신화적인 내용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주제도 난해하다. 헤라클레스와 데이라네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섹스, 유혈이 낭자한 폭력, 시기, 질투가 비극에 점철되어있다. 이 비극이 거의 상연되지 않는 이유는 상상을 초월하는 반전反轉 때문이다. 사랑스럽고 이성적인 여인인 데이아네이라는 남편을 소유하기 위해 사랑의 미약을 찾았다. 그러나 그 미약은 그녀를 겁탈하려는 켄타우로스 괴물을 죽인 헤라클레스 화살 독이었고 결국 헤라클레스는 이 독 때문에 죽는다, 이 신화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무엇을 전달하려 시도했는가?

비극은 트라키스에 있는 헤라클레스의 궁궐 앞에서 시작한다. 트라키스는 델포이의 북쪽에 위치한 도시다. 무대 위로 헤라클레스의 부인 데이라네이라와 유모가 등장한다. 데이라네이라는 비탄의 노래로 비극을 시작한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그 누구도 죽기 전에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있는 동안에 제 삶이 불운하고 괴로울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1-5행) 그녀는 멧돼지 사냥으로 유명한 멜리아그로스의 여동생이다. 강물 신인 아켈로오스가 세 가지 괴물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그녀에게 청혼하였다. 그녀는 아켈로오스와 결혼하느니 차라리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중에, 헤라클레스가 그를 물리치고 그녀와 결혼하였다.

데이나네이라는 헤라클레스 사이에 아들 휠로스를 낳았지만, 헤라클레스는 아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헤라클레스는 휠로스 보기를 마치 농부가 멀리 떨어진 밭을 파종 때 한번, 수확 때 한번 보듯 합니다.” (32-33행) 궁술의 명인으로 알려진 테살리 지방 오이칼리이의 왕 에우리토스는 자신과의 궁술시합에서 승리하는 자에게 딸을 내 주겠다고 약속한다. 헤라클레스는 이 궁술시합에서 이겼으나, 에우리토스가 약속한 딸을 주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는 후에 에우리토스와 그의 아들 이피토스를 살해한다. 헤라클레스는 이 살해사건으로 15개월째 방랑생활을 있었다. 이 사건으로 데이나네이라와 휠로스는 트라키스라는 땅으로 추방당했다. 트라키스에서 남편을 기다리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데이아네이라는 남편이 돌아올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이 자신을 더 이상 떠나지 못하도록 묘책을 간구하고 있다. 그녀는 남편을 온전히 자신이 소유하고 싶었다.

그림

<데이나네이라를 납치하는 켄타우로스 네수스>

루이 장 프랑수아 라그레네Louis-Jean-François Lagrenée (1724–1805)

유화, 1755년, 157 × 185 cm,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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