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정성을 깃들인 정원庭園이다. 정원은 외부와는 단절된 기획된 공간으로, 인간의 이상과 최선을 요구한다. 이 정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기운이 문화文化이며, 그 일들을 작동하는 원칙이 문명文明이다. 문화란 정원에 알맞은 무늬를, 정원 곳곳에 특히 정원에 거주하는 자들의 표정, 말, 그리고 행위에 새겨놓는 작업이다. ‘문화’에 해당하는 영어단어 ‘컬쳐’culture는 ‘땅을 개간하다; 돌보다’란 의미를 지닌 라틴어 동사 ‘콜레레’colere의 과거분사형인 ‘쿨투라’cultura에서 파생되었다. 그 의미는 ‘관리된 것; 개간된 것’이란 의미다. ‘문화적인 인간’이란 자신을 관리한 사람, 자신의 마음을 갈아엎은 자다. 그(녀)는 그곳에 새로운 종자의 씨를 심고, 그 씨가 발아하고 자라나고 커다란 나무가 되어 새들이 둥지를 틀고, 사람들이 그 나무가 자비롭게 주는 그늘에서 쉬도록 배려한다.
자신을 돌아본 적이 없고, 자신의 심전을 갈아엎은 적이 없는 괴팍한 사람은 야만인野蠻人이다. 야만인은 자신의 욕심과 야망의 노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응시한 적이 없고, 제어한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행복을 타인을 제어함으로 획득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한다. 그에겐 무질서와 폭력이 법이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충동적으로 떠나 들판(野)에서 헤매며, 마치 뱀(虫)처럼 웅크려 자신보다 약한 자를 공격하며 알 수 없는 말(䜌)을 끝없이 지껄인다. 야만인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바바리언’barbarian은 그리스어 ‘바르바로스’barbaros에서 유래하였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페르시아인들을 ‘바르바로스’라고 불렀다. 그들의 말을 흉내를 내어 ‘바르바르’, 즉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다는 자’란 의미다. 자신들 돌본 적이 없는 야만인들의 말은 이해하기 힘들다.
로마시대 정치가이며 철학자인 키케로는 ‘쿨투라’cultura를 ‘학문과 지식을 갖춘 자’ 더 나아가 ‘그런 사람들이 관습과 업적’을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는 문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소수의 소유인 문화나 거룩이 없다면, 인간에게 풍요나 물질이 소용없습니다. 그런 인간은 증오, 부러움, 시기, 복수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문화는 깨어있는 자들의 신성한 의무입니다.”
문화의 민주주의라는 정원의 내용이라면, 문명은 그 정원의 외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쪼온 폴리티콘zoon politikon’ 번역하지면 ‘도시 안에서 거주하는 동물’이라고 정의했다. 인간은 ‘도시’라는 물질적이며 추상적인 원칙이 없다면, 자신의 욕망대로 활동하는 야생동물과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동물이 아니라 승화된 인간, 동물과 신 사이의 경계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도시’라는 개념을 등장시켰다. 도시는 직계가족이나 친족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아니다. 혈연관계를 넘어선 공동의 문화를 공유하는 이념적인 공동체다. 그 공동체는 한 개인이 속한 집단과 대적하는 집단, 혹은 자신들이 신봉하는 종교와 다른 종교를 숭배하는 집단, 혹은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이 포함될 수도 있다. 도시란 언제나 분쟁소지가 있는 다양성의 활동공간이다. A라는 시민과 B라는 시민의 이해관계가 다를 때. 혹은 도시 전체의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때, 사적인 문제와 공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그 중재자가 지도자이며 그런 문제를 판결하는 장치가 법정이다.
개인 간 혹은 집단 간의 문제를 도시가 인정한 법정에서 판결을 내린다. 시민들은 도시 전체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표를 통한 다수결 원칙을 따른다. 아테네 시민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었다. 아테네라는 도시를 하나의 유기체로 운영해야하는 지도자들은, 아테네가 민주주의라는 정원을 잘 가꾸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시민교육’이라고 여겼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들은 철인哲人 통치자가 국가의 리더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한 사람의 훌륭한 리더가 도시국가라는 정체를 유지하는 가장 효율적인 체계라고 판단하여 아테네 아르카디아 평원에 ‘아카데미아’를 세워 국가의 미래 리더들을 양육하였다.
이상적인 아테네를 건설하기 위해, 이 철학자들과는 달리, 새로운 도시국가 운영의 핵심을 간파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부패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였다. 거대한 국가 조직이 한 사람에게 과중하게 집중되면, 그는 오만할 수밖에 없고,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아둔의 상태로 진입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치리하는 공동체에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소포클레스는 소수의 철학이 아니라 자신을 성찰하도록 만들어 주는 ‘문학文學’을 통한 시민교육이 아테네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소포클레스는 시민 한명 한명을 ‘문명화된 인간’으로 개조하기 위해 그리스 비극공연이라는 대중 엔터테인먼트를 시작하였다.
문명이란 영어단어 ‘시블라이제이션’civilization은 ‘도시와 관련된; 도시의 질서를 준수하는; 시민으로서 손색이 없는’이란 의미를 지닌 라틴어단어 ‘시윌리스’civilis에서 파생하였다. 문명이란, 도시라는 공간에서 자신과는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정중하고, 예의가 바르면, 친절한 시민들이 만들어 내는 조화와 질서다. 다른 시민에 대한 배려나 친절이 없이 도시문명을 불가능하며, 민주주의는 자신의 이익만을 부르짖는 야만으로 전락할 것이다. 문명文明이란 해와 달처럼 배타적이며 적대적인 것들을 대화와 경청을 통해, 한 곳에 절묘하게 배치하려는 노력이다.
소포클레스는 민주주의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리더들의 탁월한 통치력만큼 성찰하는 시민들의 의식수준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아테네 시민이 자신을 응시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속에 이기심과 시기와 같은 잡초가 자라나는 것을 방치한다면, 아테테라는 이상적인 정원은 정글로 퇴락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는 최초의 비극시인이며 선배였던 아이스킬로스 비극공연 방식에 중요한 변화를 통해, 시민교육을 심화하였다.
아테네 시민 만 오천 명 가량이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남동쪽에 위치한 바위언덕에 앉았다. 그들 앞에 반원모양의 춤추는 장소가 있고 그 뒤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무대가 있었다. 그리스의 첫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는 살라미스 전투에서 싸웠던 군인으로, 비극공연에 직접 참여하여 노래를 부르고 연기하였다. 소포클레스는 어려서부터 합창대로 그리스 비극에 참여했었으나, 그의 목소리가 강하지 않아 무대에 서기를 포기하였다. 소포클레스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비극공연 경쟁자였던 에우리피테스는 결코 무대에 서지 않았다.
비극 공연을 구성하는 세 가지는 배우, 관객, 그리고 합창대다. 합창대는 사실 배우나 관객보다 오래된 그리스 종교의식에서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합창’이란 그리스 단어 ‘코로스’khoros는 ‘원무; 춤추는 장소; 무희들, 합창대’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 비극은 합창대의 확장이다. 소포클레스가 비극작품의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아테네 비극경연에 참여하기 위해서, 아테네의 유력자가 ‘코레고스’choregos가 되어 비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모든 비용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으로 지불하였다. 소포클레스는 아이스킬로스의 공연방식에 변화를 주었다. 무대 위에 대화를 주고받는 두 명의 배우이외에 세 번째 배우를 등장시켰다. 대화를 주고받는 두 명의 배우들의 표정과 심정을 지근거리에서 느끼기 위해, 무명의 관찰자를 무대 위에 올렸다. 이 세 번째 배우는 관객석에 앉아 있는 아테네 시민을 대표하여 무대 위로 올라와 배우들의 희로애락을 실감나게 느꼈으며, 무대 뒤나 앞에서 반주로 노래하거나, 춤추던 합창대를 대신하여, 배우들에게 가까이 가, 이들의 공포와 연민을 응시하였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렉스>에서 무대 위에 오른 세 번째 배우인 무명의 테베 시민은 장님이 된 오이디푸스와 그의 손을 이끌고 가는 안티고네를 바라본다. 그는 친부를 죽이고 친모와 결혼한 사실을 알고 스스로 자신의 눈을 어머니의 브로치로 찔러 장님이 된 후, 딸이자 누이인 안티고네의 손에 이끌려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오이디푸스를 응시한다. 그리고 그는 가만히 눈물을 흘렸다. 그는 무대 위에서 오이디푸스가 겪는 무시무시한 공포恐怖와 그를 향한 연민憐憫으로, 자신은 없어지는 무아無我를 경험한다. 그 순간에 온전히 오이디푸스와 하나가 되어, 울부짖는 오이디푸스와 함께 운다. 그는 사실 오이디푸스와 하나 된 ‘자신’을 보고 울고 있었다. 이 장면을 보고 있었던 만 오천 명의 아테네 시민들의 눈에서 한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관객석 맨 앞에 앉아 있던 소포클레스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숙고하는 시민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정원이다. 그들은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여기는 ‘연민’의 소유자다.
문명이 다양한 인간들이 모여 도시와 문자를 통해, 한곳에 어울려 사는 정착하는 인류를 만들었다면, 문화는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닌 인간들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문명의 핵심이란 사실을 알려주는 정교한 예술이다. 기원전 5세기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아테네인들은 ‘그리스 비극’을 통해 연민과 배려를 배웠다. 연민과 배려라는 시민교육과 배움이 없는 사회는, 시기, 질투, 그리고 악의로 가득한 야만사회다. 소포클레스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오레스테스,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아이아스, 필록테테스, 그리고 엘렉트라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가? 당신은 사회의 가장 취약하고 불행한 사람의 눈으로 자신을 보고 사회를 보는가?” 소포클레스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묻는다. “여러분은 숙고하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제3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응시하십니까? 여러분은 타인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까?”
사진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
대리석, 기원전 1세기
로마 국립박물관Museo nazionale romano di palazzo Altem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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