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1 (金曜日) “교양인敎養人”


가장 위험한 위기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무식이다. 가장 절망적인 위기는 그 위기를 타개할 전략가들이 없다는 사실이다. 전략가란 위기에 봉착했을 때, 대중들이 다 알거나 원하는 대책이 아니라, 그들에게 자신의 판단을 숙고할 수 있는 화두를 던져 그들이 감동할 만하고 승복할 만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자다. 그런 흠모할 만한 청사진을, 과학자 아이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고안할 때 사용했다는 오랜 ’사고실험’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은 숙고하는 국민들과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힌 그들의 염원들을 수렴하여, 최소공배수를 산출하는 예술이다.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정세에서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자유이며, 무엇이 공정이고 무엇이 최선이냐라는 이데올로기 싸움양상으로 가면, 그 공동체는 희망이 없다.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하여 노란 띠나 파란 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들이 항상 상대방을 무시하고 싸움을 건다. 태권도 검은 띠 수련을 마친 사람은 쓸데없이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자신의 발차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녀)는 오랜 세월 수련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과 움직임을 미리 알고, 그 급소가 허점이 보일 때, 조용하고 신속하게 공격한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는 오늘날 대한민국처럼 위기에 봉착했다. 오늘날 이란에서 페르시아 제국이 등장하여, 그리스에 곡식을 공급했던 곡창지대인 이집트와 철학과 과학이란 개념을 만들어 그리스인에게 정신적인 고향이었던 소아시아를 정복하여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리스 반도의 많은 도시들 중, 아테네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어 해상무역에 의존할 밖에 없었지만, 지중해 항구들은 이미 페르시아 제국의 소유가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군주정치를 기반으로 한 페르시아 제국을 이길 힘은 ‘위대한 개인’과 그 위대한 개인이 리더가 되는 ‘민주주의’가고 판단하였다.

귀족이라는 영어단어 ‘아리스토크랫Aristocrat’은 흔히 ‘귀족’으로 번역되는데, 숨겨진 본래 의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깨닫고, 그것을 발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란 의미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아레테를 ‘인간 노력의 탁월함’으로 발전시킨다. 그는 아레테를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내면에서 노력하는 과정에 서서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레테는 자신이 최선을 이루겠다는 결심과 노력이다. 운동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지속적인 마음이다. 자신이 무엇을 이루어야겠다는 확신, 이를 지속적으로 완성해 나가려는 겸손에서 아레테는 시작한다. 그리스 교육체계는 암기가 아니라 참여다. 매일매일 체육관에서 운동을 통해 육체를 연마하며 그동안 알지 못하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자신의 무식을 인정하는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무아(無我) 상태를 연마하여 정신적인 최선을 지향한다. 거기에는 사지선다가 없다. 시험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성적이 아니라 경쟁이다. 이들은 육체적으로 올림픽 경기를 통해 경쟁하는 것처럼, 시·산문·연극·음악·그림·연설을 통해 아레테를 연마했다.

아리스토크랫은 자신에게 주어진 육체적·정신적 환경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연습을 끊임없이 한다. 타인의 다양한 마음을 진실로 이해하고 그들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이 바로 공부다. 이런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자신의 것처럼 상상하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다. 이에 따라 공동체는 그를 지도자로 인정하여 자연스레 그를 ‘선’과 ‘존경’의 화신으로 여긴다. 그리스어로 ‘티메(time)’는 아레테가 가져다주는 명예名譽다. 육체적·정신적으로 최선을 지향하는 노력이 바로 아레테이다. 스스로 최선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레테는 떠나버린다. 오랜 연마를 통해 아레테에 이른 이에게 공동체는 그에게 공적으로 명예를 추서한다. 개인이 아무리 탁월하다 할지라도 도시라는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 인정을 받아야한다. 명예는 한 개인이 자신의 고유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하길 시도할 때, 공동체 구성원들이 그에게 주는 신의 선물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는 기원전 500년경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정치제도인 ‘민주주의’를 실험하기 시작하였다. 새로 등장한 이 제도는 불안정했다. 철학의 시조인 소크라테스, 그의 수제자들인 플라톤과 크세노폰은 아테네 민주주의의 실효성을 의심하고 비판하였다. 크세노폰이 저자는 아니지만 그의 이름으로 출간된 <아테네 정체에 관하여>라는 소책자에서 크세노폰은 아테네 민주주의를 민중들을 위한 정치체계로 사회악에 만연하고 ‘최선의 질서’ 추구에는 관심이 없다고 평가한다.

민주주의가 안정적인 정치제도로 정착하고 모든 시민들을 위한 정치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사회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숙고하여 모든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제도다. 제도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서서히 정착된다. 둘째는 그 민주주의의 원칙을 잘 이해하는 시민집단이다. 시민들은 학교 교육을 통해 폭넓은 교양과 다양한 세계관을 배우고, 미디어를 통한 시민교육으로 숙고하는 인간이 된다. 민주주의의 성공은 숙고하는 개인의 숫자에 달려있다. 숙고하는 개인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세 번째는 높은 수준의 리더십이다. 리더는 위급한 사태에 직면하여, 다양한 사람들의 지혜를 경청하고 공동체를 위한 최선의 방안을 시민들에게 설득하는 자다. 이 세 가지 정치제도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리더다.

대부분 정치가는 대중의 욕망과 편견에 부합하거나 부추기는 말을 통해 인기를 얻는다. 페리클레스는 매년 자신의 신임을 대중에 물어야 하는 취약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민중들에게 아첨하거나 그들의 편견에 편승하지 않았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이 당면한 현실이 아무리 절망적이라고 할지라도 있는 그대로 전달했고, 자신과 함께 대처해 나가자고 설득했다. 그는 아테네 시민 스스로가 만든 공포를 초월하자고 설득했고, 단기간의 이익에 탐닉하지 말자고 촉구하였다. 그는 필요하다면 시민들을 꾸짖었고 그들의 화도 감수하였다. 토론이 민주주의 정책 결정의 중요한 보루이기 때문에, 민주시민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직언을 들었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그리고 에우리피데스는 민주주의의 성공을 시민교육에서 발견하였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물질적 풍요뿐만 아니라 정신적이며 영적인 비전을 제시하였다. 아테네 시민들은 이 비전으로 자신의 일상이 던지는 어려움조차 인내로 극복하는 삶의 지혜를 얻게 되었다. 아테네가 기원전 6세기 인류 최초로 ‘민주주의’란 개념을 만들어내고 그 제도를 과감하게 실행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어떤 천재들의 상상력의 결과인가? 이전엔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혁명적이고 파격적인 정치 형태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과 절차가 필요했나? 민주주의가 한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높은 수준의 교양이 필수적이다. 혼돈에 빠진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깨어있고 교양이 있는 시민들이다.

사진

<앉아 있는 소포클레스>

무명조각가

대리석, 기원전 3세기, 12 cm (4.7 in)

파리 메달 박물관Cabinet des Médail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