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 (火曜日) “복음福音”


‘복음’은 예수에 관한 기록이란 특별한 의미다.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첫 네 권의 책은 복음서福音書다. 복음서는 우리가 흔히 아는대로, 한 개인에 일생에 일어난 이야기를 연대지적으로 담은 대한 전기傳記가 아니다. 복음서에는 예수의 신상에 대한 개인적인 정보가 거의 없다. 우리는 그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어떤 학교에서 누구의 사사를 받아 어떤 교육을 받고 자라났는지 알 수 없다. 복음서에는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가 부모 요셉과 마리아에게 착한 아들이었는지, 그의 동생들에게 좋은 형이나 오빠였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오늘날 전기에서 흔히 등장하는 정보들에 복음서들은 침묵한다.

복음서들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마르코의 복음서>는 특히 그렇다. <마르코의 복음서>는 예수의 수난이야기이다. 이 책의 저자는 수난이야기 앞에 예수에 관한 적절한 에피소드들을 배열시켰다. ‘수난이야기’란 예수의 체포, 재판, 십자가처형, 그리고 부활로 구성된다. <마르코의 복음서>는 복음서 가운데 가장 짧다. <마테오의 복음서> 28장, <루카의 복음서> 24장으로 구성되었지만, <마르코의 복음서>는 16장에 불과하다. 물론, 복음서가 맨 처음 파피루스에 기록되었을 때는, 장이나 절 구분이 없었다. 중세교회가 예배낭송을 위해 편의상 고안하였다. <마르코 복음서>는 <마테오의 복음서>와 <루카의 복음서>와는 달리 예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가 없다.

<마르코의 복음서> 1.1은 느닷없이 이렇게 시작한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처음”

이 첫 구절은 바로 뒤에 등장하는 세례요한에 관한 이야기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적인 제목이다. 복음서의 저자가 복음서를 완성하고 맨 마지막에 심사숙고하여 첨가한 화룡점정이다. 이 복음서는 <마르코의 복음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서>다. 위 문장의 그리스어 원전과 한국어 음역은 다음과 같다.

Ἀρχὴ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Υἱοῦ Θεοῦ.

“아르케 투 유앙겔리우 이에수 크리스투 휘우 쎄우”

저자는 복음서의 시작을 ‘아르케’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그는 <구약성서>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를 히브리어 원전 혹은 그 원전에 대한 그리스어 번역인 <칠십인역>으로 읽었을 것이다. <창세기>에서는 ‘처음에’라는 부사로 시작하였지만, 그는 ‘처음’이란 의미를 지닌 ‘아르케’로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처음이란 의미인가? <창세기>에서는 신이 우주를 창조하고 인간을 통한 신의 역사를 기록했다면, <마르코의 복음서>는 그 신이 ‘예수’라는 인간을 통해 구원자 ‘그리스도’가 된 충격적인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려줄 참이다.

‘복음’이란 뜻인 그리스어 ‘유앙겔리온’εὐαγγέλιον는 무슨 뜻인가? ‘유앙겔리온’은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것처럼 종교적인 용어가 아니라 세속적이며 정치적인 용어로 시작하였다. 복음서 저자들이 참고한 ‘유앙겔리온’의 원래의미는 한 비문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터키 남서부에 위치한 에게해에서 16km 떨어진 내륙도시 피리에네Priene에서 발견된 비문이다. 소위 ‘피리에네 연표 비문’(기원전 9년)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의 생일을 기점으로, 달력을 혁신하고 새로운 시대을 알리는 칙령이다. 이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의 섭리가 (온 세상을 축복하여)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통해 완벽한 질서를 확립하였다.

섭리는 덕을 통해 그(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인류에게 덕을 베풀도록 만들 것이다.

섭리는 그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을 위해 ‘구원자’(그리스어 ‘소테르’)로 보내,

전쟁을 종식시키고 만물을 다스릴 것이다.

카이사르는 위용이 이전 통치자들과는 다르다.

그가 이룬 업적에 필적할 만한 통치자는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신적神的인 (그리스어 ‘투 쎄우’) 아우구스투스의 탄생은 온 세상에 ‘복음’(그리스어 ‘유앙겔리온’)이다.”

이 비문은 로마제국에 새로운 기년법紀年法을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의 탄생을 기점으로 시작한다는 법령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구원자’로 수용하고 충성을 맹세하는 자들에겐 그 전에 지은 범죄나 세금에 대한 대 사면이라는 ‘보상’이 주어진다. ‘복음’을 의미하는 ‘유앙겔리온’에는 ‘복음’과 ‘복음 수용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란 의미가 있다. 마르코는 이 세속적인 의미를 지닌 ‘유앙겔리온’을 종교적으로 전환하고 혁신하여, 그리스도의 근간인 복음서의 기반들 놓았다. 그에게 ‘신적인 구원자’는 아우구스투수가 아니라 예수라고 선언한다. 마르코라 정의 새로운 의미의 복음은 무엇인가? 그 비밀은 그가 사용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문구에 숨겨져 있다. 다음 주 글에서 그 의미를 추적하고 싶다.

사진

<피리에네 연표 비문 뒷면 32-60행>

기원전 9년, 피리에네, 이오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