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5. (木曜日) “낙엽落葉”


서울 이사 온 지 넉 달 만에 나의 고독孤獨을 훈련시킨 설악면을 방문하였다. 아침에 일어나지 마자, ‘아침산책’이란 의례를 감행하였다. 산책은 온전한 나를 확인시켜주고 북돋아주는 훈련이다. 북한강 지류를 따라 드넓은 잔디를 밟은 후, 야산으로 진입할 것이다. 반려견, 샤갈, 벨라, 그리고 예쁜이도 오랜만에 가는 산책길이라 신이 났다. 개울가 옆에 마련된 공용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하였다. 이곳에서 산책을 시작한다. 트렁크 칸에 앉아서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샤갈과 벨라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왜, 이제야 자신들의 고향에 돌아왔냐고 나를 원망하는 눈빛이었다. 내가 자동차 트렁크 문을 열고 목줄에 연결된 고리를 풀자마자, 트렁크에서 100m 허들을 하는 육상 선수처럼 아래로 뛰어내린다. 하마터면, 줄을 놓칠 뻔 했다.

이들은 지난 석 달간 자신들이 7년 동안 지켜왔던 이 산책길 영역에 누가 들어 왔었는지 온몸으로 확인할 참이다. 오늘은 이들이 리드줄로 나를 이리저리 인도할 참이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지만, 이들은 예민한 코를 풀잎과 나무에 대고, 3개월간 이 산책길에 누가 왔었는지 조사한다. 마치 셜롬홈스가 돋보기로 증거를 하나하나 수집하듯이, 돋보기 보가 더 정확한 코로 그동안 일어난 무수한 이야기들을 상상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 산책길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남기기 위해 여기저기 자신의 방식대로 영역을 여러 군데 표시하였다.

산책길에 들어서니, 1년 전에 서울에서 이사 와 정원을 ‘전문적으로’ 가꾸는 정원사를 만났다. 그는 나를 좀처럼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말에 들리겠다고 약속했다. 드넓은 논밭에 눈으로 들어왔다. 논밭은 둥글둥글한 흰색 뭉치들로 가득 찼다. 이것들은 ‘곤포梱包 사일리지’로, 볏짚을 짧게 썰어 한 롤이 지금 1.5m. 높이 1.2m 비닐로 꽁꽁 싸서 젖산을 발표시킴 저장 사료다. 이것은 축산농가의 소먹이로 팔릴 것이다. 볏짚과 같은 자투리도 사료로 사용한다니, 자연엔 쓰레기가 없다. 인간만이 쓰레기를 생산한다.

곤포 사일리지로 장식된 논밭을 지나, 야산으로 진입하였다. 야산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논밭길과 연결된 언덕길을 올라가야한다. 그 길을 올라 50m정도 들어서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우리의 발길이 닿지 않아, 지금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이 되었다. 우리가 진입하자, 발길을 옮길 때마다, 낙엽들이 우리를 반기느라 ‘서걱서걱’ 소리를 낸다. 우리가 지난 7년 동안 내 딘 발걸음들이 모아져 길이 생겼고, 그 길은, 이 야산에 들어선 우연한 등산객들의 길잡이가 되었다. 지난 3개월간, 이 길은 누구의 발길로 닿지 않아, 거의 덤불숲으로 변할 참이었다.

우리는 이 갈래 길에서 항상 오른쪽 길을 따라 야산에 올라갔다 그 뒤편에 있는 북한강가 선착장에 도착한 후, 이 왼쪽 길로 연결로 오솔길로 나온다. 샤갈, 벨라 그리고 나는 잠자고 있던 낙엽들을 깨우면서 요란하게 원만한 언덕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야산은 우리의 요란한 발걸음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적막한 야산에 소란이 일어나는 광경은 엔키두가 길가메시에게 백향나무 숲 산지기 괴물 ‘훔바바’를 묘사하는 부분과 유사하다. 신들의 대장인 바람의 신인 엔릴Enlil(𒂗𒆤)이 소리를 낸다. ‘엔릴’은 수메르어로 ‘바람의 주인’이란 의미다. 엔릴은 그 누구도 이 거룩한 산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훔바바를 산지기로 세워놓았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V.1 엔릴신은 훔바바를 백향나무 숲을 지키기 위해 세워놓았죠.

V.2 훔바바는 백성들에게 공포에요.

V.3 훔바바의 목소리는 홍수를 일으키는 무기이며

V.4 그의 말을 불길이며, 그의 입김은 죽음이죠.

V.5. 아주 먼 곳에서도 누가 산으로 진입하는지 분명하게 듣죠.

V.6. 누가 그의 산을 침입할 수 있겠습니까?

<길가메시 서사시> 제2토판 (기원전 14세기 신-레케-우닌니 표준 바빌로니아 판본)

잠잠하던 숲이 두 갈래 길, 지점에서 오른 편으로 들어서자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바람이 불어왔다. 이 야산에 훔바바는 없지만, 엔릴신이 자신의 입김을 저 높은 하늘에서 힘차게 내뿜었다. 바람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아직도 여름인줄 알고 가지에 붙어 있던 나뭇잎을 ‘우수수’ 떨어뜨린다. 이 바람은 숲을 살아있게 만드는 호흡이다. 작년에 떨어진 잎들은 이제 겨울에 올 눈에 덮여 자신이 지닌 모든 자양분들을 땅속에 있는 나무뿌리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 자양분은, 줄기를 타고 나뭇가지로 올라가 내년 봄과 여름엔 태양을 맞아하는 푸릇푸릇한 잎으로 부활할 것이다.

숲은 언제나 나를 구원한다. 시인 매리 올리버는 자신을 구원하는 나무들을 이렇게 찬양한다.

When I Am Among the Trees

<내가 나무들 사이에 있을 때>

When I am among the trees,

especially the willows and the honey locust,

equally the beech, the oaks and the pines,

they give off such hints of gladness.

내가 나무들 사이에 있을 때,

특별히 버드나무와 주엽나무,

똑같이 너도밤나무, 참나무, 소나무 사이에 있을 때,

이 나무들은 나에게 즐거움이란 기분을 기꺼이 선사한다.

I would almost say that they save me, and daily.

I am so distant from the hope of myself,

in which I have goodness, and discernment,

and never hurry through the world

but walk slowly, and bow often.

나는 이 나무들이 매일 나를 구원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한 희망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나무사이에서 나는 선과 분별을 얻는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결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고 종종 고개를 숙인다.

Around me the trees stir in their leaves

and call out, “Stay awhile.”

The light flows from their branches.

내 주위에서 나무들이 자신들의 잎 속에서 꿈틀거리며

소리를 낸다. “잠시 쉬십시오.”

빛이 가지들 사이에서 흘러나온다.

And they call again, “It’s simple,” they say,

“and you too have come

into the world to do this, to go easy, to be filled

with light, and to shine.”

그리고 나무들이 다시 부른다. 그들은 말한다. “간단합니다.

당신도 이 세상이 이것을 완수하기 위해 왔습니다. 편하게,

빛으로 당신을 채워 주변을 비추십시오.”

하루라는 나뭇잎을 통해 햇빛을 모아 주변을 비추면 좋겠다.

사진

2020.11.5. 설악면 야산에 울려퍼진 낙엽들의 합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