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30. (月曜日) “누가 내 입을 가지고 말하는가?”


누군가 11세기 무슬림 신학자이자 역사가인 아부 하프스Abū Ḥafṣ에게 물었다.

“누가 수피입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수피는 수피가 누구인지 묻지 않습니다.”

루미의 어록이 담긴 <마쓰나위-이 마으나위>Mathnawī-i maʿnawī(M)에 등장하는 장님에 관한 이야기는 이슬람 신비주의, 아니 더 보편적으로 신비주의가 얼마나 정의하기 어려운지를 알려준다. 장님이 코끼를 만져, 그 대상을 묘사하라고 요구받았다. 어떤 이에겐 코끼리가 왕좌와 같고, 다른 이에겐, 부체, 수로, 기둥과 같다. 그 누구도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길이 없다. (M 3:1259-68)

수피즘은 이슬람 신비주의를 총칭하는 이름이다. 이슬람 신학자들은 이슬람을 정의할 수 있는 사상들들 추려 ‘이슬람’의 특징을 설명하지만, 신비주의는 그런 정의를 회피한다. 신비주의라는 의미를 지닌 영어단어 ‘미스티시즘’mysticism은, ‘신화’를 의미하는 단어 Myth, ‘신비’를 의미하는 단어 Mystery와 같은 어원에서 출발하였다. 이 단어들은 모두 그리스어 동사 ‘뮈에인’myein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뮈에인’은 ‘입을 다물다; 눈을 감다’라는 뜻이다.

신비주의는 역설적으로 눈을 감아야 볼 수 있고 입을 다물어야 들을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인류가 향유하는 위대한 종교들엔, 경전에서 추려낸 교리를 초월하지만 포용하는 위대한 영적인 흐름이 존재한다. 신비는 만물을 만물답게 만들며, 만물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원칙으로, 지혜, 빛, 사람 혹은 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우리가 길거리에서 무심코 발견하는 민들레를 민들레답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생명력과, 다른 식물과는 구별된 민들레다움이다. 그 과정과 결과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어, 과학적으로 관찰이 불가능하고 철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변화무쌍한 살아있음이다. 그 원칙은 오직 심장에서 울려나오는 지혜인 ‘그노시스’gnosis를 통해서만 접근가능하다. 이와 같은 영적인 경험은 우리의 감작, 지각, 이성, 그리고 직관을 넘어선 엄청남이다. 그것을 찾아 인생이라는 여정을 떠난 사람이 의존해야할 유일한 등불은, 자신의 내면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빛이다.

이 등불은 내가 세상과 남들의 매력적인 유혹을 단절하기 시작하고 내 마음의 명경明鏡을 매일 매일 정성스럽게 닦을 때, 환해지기 시작한다. 정화淨化는 숙고에서 나온 삶에 대한 조심, 진정한 명상 그리고 구별된 열망을 통해 조금씩 이루어진다. 정화는 나를 비하하고 비열하게 만드는 동물적인 욕심을 제거하기 시작할 때, 진정한 힘으로 태어나 나의 지적이며 영적인 에너지로 변한다.

오랜 정화의 기간, 그리스도교 신비주의가 말하는 ‘위아 푸르가티와’via purgativa를 통해 영적인 깨달음의 길은 ‘위아 일루미나티와’via illuminativa에 도달할 수 있다. 그 길은 사랑과 지혜로 수놓아져 있다. 이 길에 들어선 자는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그 원칙과 하나가 되는 ‘신비한 합일’unio mystica를 이룬다. 신비한 합일에 도달한 사람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귀로는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기 시작한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본 불이 붙었지만 연소되지 않는 나무이며, 목소리를 듣지만, 그 연원을 알 수 없는 소리와 같다. 무함마드가 10년 동안 히라 동굴에서 기도하면서 들은 알라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위시오 베아티피카visia beatifica 즉 ‘지복직관至福直觀’으로 상태로 진입하여 신이 우주를 탄생시키는 빅뱅의 순간을 경험한다. 이 경험이 세상을 본래 모습을 왜곡하고 감추고 있는 ‘무식이라는 베일을 걷어내는 행위’다.

신과의 합일을 이루면,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자기-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의 귀로 세상을 듣고, 그의 머리로 세상을 이해한다.

신비주의는 ‘절대에 대한 온전한 사랑’이다. 진정한 신비주의와 단순한 금욕주의와의 차이는 사랑이다. 수행자가 신비체험을 통해 얻은 신적인 사랑은 신이 그(녀)의 영혼을 시험하고 정화하기 위해 마련한 고통과 고난을 견딜 뿐만 아니라, 당연한 과정으로 여기고 즐기기도 한다. 이 사랑은 신비주의자의 마음을 마치 독수리가 먹잇감을 낚아채듯 새로운 경지로 데리고 간다.

수피 시인 잘랄 알-딘루미Jalal al-Din Rumi (1207–1273)의 시 <누가 내 입을 가지고 말하는가?>Who Says Words With My Mouth?에서 신적인 합일을 갈구하는 시인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Who Says Words With My Mouth?

All day I think about it, then at night I say it.

Where did I come from, and what am I supposed to be doing?

I have no idea.

My soul is from elsewhere, I'm sure of that,

and I intend to end up there.

누가 내 입을 가지고 말을 하는가?

하루 종일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 밤에 말한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나의 영혼은 어디에서가 왔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거기서 인생을 마칠 예정이다

This drunkenness began in some other tavern.

When I get back around to that place,

I'll be completely sober. Meanwhile,

I'm like a bird from another continent, sitting in this aviary.

The day is coming when I fly off,

but who is it now in my ear who hears my voice?

Who says words with my mouth?

이 술 취함은 다른 술집에서 시작하였다.

내가 그 장소로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완전히 깨어났다. 그 동안,

나는 다른 대륙으로부터 날라와 이 새장에 앉아있는 새와 같다.

내가 날라 가 버릴 날이 왔다.

그러나 지금 내 귀에서 나의 목소리를 듣는 자는 누구인가?

누가 내 입을 가지고 말을 하는가?

Who looks out with my eyes? What is the soul?

I cannot stop asking.

If I could taste one sip of an answer,

I could break out of this prison for drunks.

I didn't come here of my own accord, and I can't leave that way.

Whoever brought me here will have to take me home.

누가 나의 눈을 가지고 밖을 보는가? 영혼이란 무엇인가?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일 그 해답을 한 모금 맛 볼 수가 있다면.

나는 술 취함을 위해 이 감옥을 박차고 나갈 수 있다.

나는 자발적으로 이곳에 오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떠날 순 없다.

This poetry, I never know what I'm going to say.

I don't plan it.

When I'm outside the saying of it,

I get very quiet and rarely speak at all.

나는 내가 말하고 있는 이 시를 결코 알지 못한다.

나는 시 짓기를 마음먹은 적이 없었다.

내가 시를 낭송하는 것 이외에는,

나는 매우 조용하고 거의 말하지 않는다.


사진

<루미>



동영상

루미 번역가 콜먼 박스Coleman Barks의 낭송

https://www.youtube.com/watch?v=N0McrPJ9dT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