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3. (火曜日) “신비神祕”


세상엔 절대적이며 객관적이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는가? 얼굴이 붉어지도록 자신의 사소한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는 저 사람들의 주장은 옳은가? ‘진리’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에메쓰’emeth다. 이 단어의 어근은 ‘믿는다’란 의미를 지닌 ‘아멘’amen이란 형용사에서 파생했다. ‘진리’란 원래부터 존재하던 어떤 것이 아니라, ‘숙고와 연구를 통해 자신이 그 당시까지 믿고 있는 어떤 것’이다. 그 ‘진리’는 더 심오한 진리에 의해 쉽게 ‘거짓’을 판명될 것이다.

그런은 과학자들이 깊은 연구를 통해 만물을 세롭게 보는 참신한 시선이다. 우주 연구의 핵심은 대상 안에 그 해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는 주체와 연구 대상이 된 객체와의 관계에 있으며, 그 해답 또한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아인슈티인은 이 우주의 속성을 푸는 공식을 발표한다. E=mc2. 나는 이 공식을 이해 할 수 없다. 이 공식은 우주의 비밀을 담기엔 너무 우아하고 간결하다. 아인슈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아버지가 걱정하는 철없는 아들에서, 우주의 비밀을 푸는 공식을 발견한 천재로 거듭났을까? 나는 이 공식보다도 이 공식을 만든 아인슈타인의 도전과 용기, 그의 끊임없는 호기심에 경의를 표한다.

E=mc2은 내게 기원전 6세기 무명 유대인 작가가 고백한 <창세기> 1.1.3에 등장하는 우주창조이야기처럼 들린다. “신이 우주를 창조하기 시작한 맨 처음에, 그 때 땅은 혼돈하고 어둠은 심연위에 있고 강한 바람은 물위에서 요동치고 있었는데, 신이 말했다. ‘빛이 있으라!’라고 말했더니 빛이 나타났다.” 기원후 120년경 요한이라고 불리는 한 유대인이 이 이야기를 <요한복음> 1.1에 간략하게 썼다. “태초에 로고스가 있었다.” 요한은 이 로고스를 통해 만물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이슈타인은 우리에게 “태초에 E=mc2가 있었다!”라고 21세기 복음을 전했다. 아인슈타인이 전하는 21세기 복음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神祕입니다.

신비는 모든 진실된 예술과 과학의 원천입니다.

신비라는 감정이 낯선 사람,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거나,

경외로 휩싸여 가만히 서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그의 눈은 감겨져 있습니다.

생명의 신비에 대한 이 혜안은 두려움과 함께 종교를 탄생시켰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그것 자체로 가장 높은 수준의 지혜와 가장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자신들 드러냅니다.

이 지식, 이 감정이 진정한 종교성의 중심에 있습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 그리고 이런 점에서만

저는 신실하게 종교적인 사람들에 속해있습니다.

저는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에 상을 주고 벌주는 그런 신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간략히 말해, 그런 신은 인간적인 약점의 반영일 뿐입니다.

저는 자신의 육체가 죽은 후 살아났다는 사람을 믿을 수 없습니다.

물론 심신이 약한 사람은 공포나 터무니없는 이기심으로 그런 생각을 품습니다.

저에겐 다음이 삶에서 충분합니다.

모든 영원을 통해 그 자체로 영속하는 의식이 있는 삶의 신비를 묵상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희미하게 아는 우주의 놀라운 구조에 대해 숙고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연 안에 드러난 우주에 관한 지식의 극미량이라도

이해하려고 겸손하게 노력하는 일입니다.”

이런 우주의 신비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는 물질이 있다. ‘암흑물질’이다. 물리학자들은 이 ‘물질’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어 ‘암흑’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물리학자들은 1915년 다양한 물질에 에너지를 전달하면서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전자파로는 감지할 수 없는 물질의 존재를 감지하였다. 물질이라면 그 단어의 정의상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어야하는데, 암흑물질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다른 현상들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존재를 간접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신비한 물질이다. 1922년 네덜란드 천문학자 J.C. 캅테인Kapteyn (1851-1922)은 은하수계 별들의 움직임을 연구하면서 이 신비한 물체를 가정하였다. 그 후 스위스 천문학자 프리츠 쯔비키Fritz Zwicky (1898-1974)는 은하수 성운에 존재하는 ‘잃어버린 물질’을 ‘둔클레 마테리에’ 즉 ‘암흑물질’이라고 불렀다.

한 가지를 상상해 보자. 당신이 밤에 꿈에서 깨어나 눈을 떠 의식을 되찾아 보니, 주위엔 빛이라고 찾을 수 없는 컴컴한 동굴에 서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이 서 있는 이 공간은 무엇인가? 그리고 당신이 서 있는 공간은 몇 차원인가? 당신이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성냥개비가 몇 개 남지 않은 성냥갑을 발견하였다. 성냥개비 한 개를 켜니 주위가 잠깐 보이더니 사라진다. 몇 개 남지 않는 성냥개비를 켤 때마다 주위를 조금씩 인식하나, 그 동굴 전체를 인식할 수는 없다.

미국 천문학자 베라 루빈(1928-2016)는 우리는 동굴 안에서 주위를 살피려는 인간과 같다고 말한다. 우리가 성냥개비를 켤 때마다, 주위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나, 볼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녀는 우주물질의 대부분이 빛을 내지 않기 때문에 전기 자장 스펙트럼으로 감지할 수 없다. 볼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밝은 물질에 가한 효과를 통해 암흑물질을 연구한다. 암흑물체의 존재를 새로운 전자기파 도구인 ‘카네기 이미지 튜브’를 이용한 은하계의 회전을 통해 관찰하였다. 이 무한한 우주의 90%는 보이지 않는다.

암흑물질은 바닥이 없어 그 끝을 볼수 없는 심연과 같다. 루빈이 발견한 것은 바로 이 ‘알 수 없음’이다. 그녀는 오히려 ‘알 수 없음’으로 우주의 신비를 밝혔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신비와 경외를 우주의 끝을 탐구하면서 발견하였다. 루빈은 그 옛날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깨달음을 경험하였다. 소크라테스의 친구 카이로폰은 당시 아테네 거리를 활보하며 자신이 ‘말을 근사하게 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자신들이 아는 지식이 유일한 진리하고 주장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싫었다. 그는 자신의 지식의 한계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겸손한 소크라테스가 그들보다 지혜롭다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질문에 정답을 주는 델피에 있는 아폴로신전으로 간다. 그는 그곳에 거주하며 질문에 대답하는 여자 예언자에게 문답형식으로 물었다. “누가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가?” 그러자 예언자를 말한다. “아무도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롭지 못하다.” 카이로폰을 아테네로 돌아와 친구 소크라테스에게 말한다. “친구여! 자네가 가장 지혜로운 자다.” 소크라테스는 고민한다. “나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말인가?”

그는 수년 동안 자신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아테네인들, 특히 소피스트들에게 물어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들에서 일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깊이 알고 있지 않았다. 소크라테스가 서양철학의 시조인 이유는 깊은 생각과 연구를 통해 한 가지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더 완벽한 지식과 지혜를 추구하기 때문에 위대하다. 루빈도 소크라테스의 깨달음처럼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고백인 ‘암흑물질’을 발견하였다. 이 암흑물질의 발견이 가져다주는 가르침을 ‘경외’다.

사진

천체물리학자 베라루빈 (1928-2016)

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