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8. (土曜日) “기억을 위한 의례, 장례葬禮”


예리코 안에 조성된 언덕인 텔 에스-술탄에는 인류 최초의 영구 거주지가 PPNA(기원전 9500~8000년)에 등장한다. 이 마을들은 조그만 원형을 형성한 가옥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야생동물들을 사냥했고, 야생 곡식과 재배 곡물을 수확했으며 아직 토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이들의 시신매장 방식이다. 그들은 자기 가족의 시신을 그들이 사는 거주지 마루에 매장하고 그 위에 회칠로 덮었다.

PPNB(기원전 7220~5850년) 시기의 예리코는 PPNA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몇 가지 특징이 등장한다. 그들은 다양한 식물을 재배하고 특히 양을 사육해 삶에 필요한 필수품들을 얻는 자원으로 사용했다. 이들에겐 특별한 장례풍습이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유골을 보관, 회칠을 통해 얼굴 모양을 복원하고 조개껍데기를 이용해 눈을 장식했다. 고고학자 캐년은 PPNB 예리코인들은 시신을 회칠한 마루 밑에 매장했다는 사실을 고고학적으로 발굴해 증명했다. 시신이 분해된 후에, 해골 혹은 아래턱이 없는 두개골을 매장한 장소에서 떼어냈다. 수많은 해골과 두개골이 다양한 방식으로 보관됐는데, 이들 중 몇몇은 회칠되거나 다양한 색이 칠해졌다. 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지역에서 이 시기에 61개의 회칠된 해골이 발견됐다. 고고학자들은 성별이나 나이를 알 수 있는 회칠된 해골 외에는 다른 뼈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캐년은 예리코에서 발견된 해골들을 나이가 든 남성이나 통치자로 해석했다. 그녀는 이 장례풍습을 ‘조상 숭배(ancestor cult)’의 증거로 제시하였다. 예리코인들은 이 지혜로운 통치자의 지혜가 그 공동체 안에 지속적으로 거주하기를 희망했다.

인류는 이제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특별한 의식을 통해 ‘기억’과 ‘망각’을 상징적으로 간직했다. 북 아일랜드의 시인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는 <과거라는 감정(The Sense of the Past)>이라는 책에서 과거의 유산의 소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에게는 과거 유산의 소유가 단순히 물건, 항목, 혹은 목록이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기억과 소속감이라는 공동 감정으로 진입할 때 생긴다.”

인류학자 이안 쿠이트(Ian Kuijts)는 신석기시대 예리코인들은 공공의례를 통해 공동체 정체성과 기억을 구축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장례의례, 반복적인 이미지와 작은 인형의 사용, 그리고 해골과 두개골의 사용과 재사용은 생존한 사람들을 죽은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정교한 기술이다. 시신에서 해골들을 분리해 다시 장례의식을 치르고, 그 해골을 회반죽이나 색감으로 칠하여 의례적인 유산으로 보관하는 행위는 그 죽은 자를 공동체 안에서 기억하고 동시에 망각하는 행위다. 그리고 해골들을 다시 한곳에 모아두는 행위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초월해 그 죽은 자가 과거의 일부이면서 앞으로 이곳을 유입될 미래의 일부가 된다.

한 예리코인이 죽으면, 그의 직계가족은 1주일 안에 첫 장례를 거행했다. 그런 후 그가 속한 공동체 전체는 두 번째 장례를 또다시 치렀다. 죽은 자는 이제 한 가족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예리코 마을 전체의 일원이 된다. 사람들은 이 두 번째 장례에서 시신을 사적인 장소에서 공적인 장소로 이동해 매장한다. 이 두 의례에 참여하는 사람은 예리코 마을이라는 커다란 공동체의 신념체계 안으로 편입된다. 예를 들어 두 번째 장례에서 사람들은 유골에서 모든 살을 발라내며 두개골을 분리한다. 이 의례는 마을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는 중요한 마을 의례이다. 참여자들은 이런 행위들은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개인적인 의미를 지닌 영적이며 상징적인 행위로 수용한다. 두 번에 걸쳐 거행되는 장례는 다음과 같이 여섯 단계를 통해 거행된다.

첫 단계는 직계가족이 행하는 첫 번째 장례식이다. 가족의 일원이 죽으면, 1주일 내로 장례를 거행했다. 직계가족과 가까운 친척 그리고 장례를 치르는 동네 연장자가 참여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첫 번째 매장의례다. 시신은 그 죽은 자가 살던 거주지 마루 아래에 묻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마루를 회칠하고 시신이 있는 자리, 특히 두개골이 있는 위치를 표시했다. 시신을 죽은 자가 거주했던 마루에 매장하는 행위는 삶과 죽음, 산 자와 죽은 자를 분리하지 않는다는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신앙표현이다.

세 번째 단계는 몇 년 후 유골을 파내는 행위다. 직계 가족, 의례 집행자, 그리고 동네사람들은 죽은 자의 거주지에서 시신을 꺼내 모든 살을 깨끗이 제거한다. 세 번째 단계는 살이 거의 없어질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망한 지 수년이 지난 후 거행됐다. 이 단계에서 두개골을 다른 부분과 분리하고, 두개골을 제외한 다른 유골들은 다시 매장해 회반죽으로 덮는다. 해골을 다른 부분과 분리하는 행위는 죽은 자가 개인으로 죽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변하기 위한 준비다. 이들은 직계가족의 개인기억에서 이동해 마을 전체의 기억 속으로 이동할 것이다.

네 번째 단계는 분리된 해골을 색칠하고 회반죽으로 장식한다. 특히 눈 부분은 조개껍질을 이용해 표시한다. 이 단계는 두 번째 장례를 치르기 위한 예비 의식이다. 해골을 장식하는 행위는 개인으로 살았던 죽은 자가 이제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 스스로 변신하고 준비하는 과정이다. 해골을 회반죽을 통해 죽은 자의 얼굴을 다시 만드는 행위는 시신을 부활 시키려는 상징이다. 이들은 회반죽을 통해 죽은 자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다시 만들었다. 특히 진흙으로 눈, 귀, 입 그리고 다른 얼굴 모습을 물감을 이용해 그려 넣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의례에서 재창조된 죽은 자의 얼굴 모습을 관찰해 기억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죽은 자를 자신들이 참여해 관찰한, 회반죽돼 재창조된 얼굴로 기억한다. 이 재창조된 얼굴은 새롭게 태어난 개인이거나 무명의 조상이 된다. 이 당시 발굴된 해골들을 보면, 그 생김새가 다르다. 사실 회반죽된 얼굴은 실제 얼굴의 재현이라 기보다는, 정형화된 추상이다. 그러므로 이 해골들은 개인으로 존재했던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았고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조상으로 변한다.

이 단계를 거치면, 다섯 번째 단계인 마을 전체의 공공 장례의식을 거행한다. 이제 죽은 자의 친척과 마을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죽은 자의 장식된 해골이 전시됐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자가 개인이 아니라 커다란 사회의 일원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한 가족이나 일족의 일원이 아니라, 농업의 발견으로 모인 마을의 일원으로 재탄생한다. 그런 후 마지막 단계인 여섯 번째 단계로 진입한다. 마을 지도자는 모든 마을사람이 모인 가운데, 죽은 자의 해골을 중앙 공동체 창고에 묻는다. 이곳은 마을에 살던 죽은 자들의 해골을 보관하는 장소다.

두 번째 장례의식은 직계가족의 입장에서는 망각의 과정이고, 마을 공동체 입장에서는 기억의 과정이다. 시신에서 해골을 분리해 장식하는 행위는 마을 사람들에게 문화적이며 사회적인 기억을 깊이 심어놓은 행위다. 이 반복된 장례를 통해 마을 사람들은 삶은 죽음과 탄생을 반복하는 영원한 회귀이며,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초월한 ‘거룩한 시간’을 경험한다. 죽은 자가 현재 살아있지는 않지만, 그들이 과거에 갇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다른 곳에서 다시 탄생한 자들과 살아 있다. 이 두 번째 장례가 바로 조상 숭배 의식이다. 그 장례가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 있지만, 그들은 공동체 조상의 일원이 된다.

개인의 정체성을 지우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재생하는 과정은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기억을 정교하게 재구성하는 행위다. ‘문화적 기억’은 개인의 기억을 망각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첫 번째 매장된 장소에서 시신을 의도적으로 파내 살을 발라내고 해골을 분리하는 행위는 새로운 공동체의 기억을 구축하려는 시도다.

신석기시대 예리코의 성벽, 망루, 그리고 두개골을 분리해 한곳에 저장하는 정교한 장례의식은 인류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로 살아가려는 정신적이며 영적인 노력이다. 두개골 분리의식은 인류가 기억과 망각이라는 장치를 통해 문화기억을 의도적으로 구축함으로써 문명사회로 도약하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됐다.

사진

<예리코 무덤 잔해들>

영국 버밍엄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