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2. (日曜日) “지공指空”


요즘은 도산공원 앞에 있는 ‘코라채플’로 출근한다. 일생 학교에서 가르치며,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하던 내가, 이젠 매일 가야할 구별된 장소가 생겼다. 오전에 도착하면, 채플 안에 마련된 공간 중앙에 조용히 앉는다. 나는 ‘위문僞門’형식으로 만든 나무 재질의 제단을 바라보고 바닥에 좌정坐定한다. 위문이란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내부의 독특한 실내건축양식이다. 선왕 파라오의 시신을 모신 피라미드의 정 가운데 특별한 공간이 있다. 사자死者가 된 파라오가, 후왕 파라오가 제사를 지내러 오는 묘실이다. 사자는 죽음의 세계에서 삶의 세계로 건너오기 위해, 그 중간 경계를 통과해야한다. 이 경계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위문’이다.

사실 죽은 자와 그를 기리는 산 자와의 만남 장소는 이집트가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하였다. 인류 최초의 도시라고 불리는 ‘우룩’ (오늘날 이락의 알-와르카al-Warqa)에 샛별신인 인안나Inanna를 위한 신전에 오색찬연五彩缤纷한 벽감장식이 등장한다. 기원전 4천년대 문화와 문명의 중심은 우룩이었다. 학자들은 우룩에서 시작된 문화와 문명이 동쪽으로는 인도가 건너가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문명을 일구도록 자극하였고 서쪽으로는 이집트로 흘러들어가 거의 동시에 인류의 천재성이 발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학자들은 이 파격적이며 원초적인 문명의 흐름의 시기를 ‘우룩평창시대’Uruk Expansion Period라고 명명하였다.

이집트 피라미드 안 위문僞門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지방이다. 산 자는 위문 앞에서 죽은 자를 위해 음식을 장만한다. 위문은 거대한 돌덩이 혹은 나무판자를 ‘문’형식으로 고르게 다듬는다. 이 문은 실제로 몸이 드나드는 장소가 아니다. 그 벽을 겹겹이 장식하고 깊이를 드러내는 벽감壁龕형식으로 만든다.

나는 위문 형식으로 만든 제단 앞에 앉아 눈을 감는다. 하루를 일생처럼, 일생을 하루처럼 살겠다고 다짐하는 의례다. 이 채플의 정중앙에 검은 색 방석 짙은 고동색 나무로 만들어진 원형 구조물로 둘러 쌓여 있다. 이 구조물의 아래는 밖으로 열려 있어, 약간의 바람에도 살랑살랑 움직인다. 건축가 김개천교수가 위문과 원형구조물을 신비하게 디자인하여 만들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좌정하는 이유는, 쓸데가 없는 곳에 가지 않기 위해 오늘 하루 다리를 묶는다는 결심이며, 눈을 감는 이유는, 눈을 떴을 때, 정말 봐야만 하는 것을 깊이 응시하겠다는 다짐이며, 입을 다무는 이유는, 입을 벌려 말을 할 때는, 어제 습관대로 아는 것을 떠들어 대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친절한 말을 하겠다는 결기다.

두 손을 양 무릎 위에 올려놓고, 허리를 지구 중심과 일직선으로 나열하고 머리를 하늘 끝으로 올리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앉아 휴식休息한다. 휴식은, 정신없는 일생생활에서 틈을 내는 자투리 시간이 아니라, 내가 온전히 자신에게 몰입하는 고도의 예술행위다. 휴식은 지금-여기에 몰입하는 간절하고 평안한 마음이다. 눈을 감고, 앉아 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신은 인간의 구별된 삶을 통해 자신을 완성한다.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은 신을 완벽하게 만든다. 14세기 페르시아 수피 시인 삼스-웃-딘 무함마드 하피즈Shams-ud-din Muhammad Hafiz (1320-1389)는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시인이다. 에메슨, 괴테, 가르시아 로르카, 작곡자 브람스, 그리고 철학자 니체는 하피즈로부터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다.

하피즈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I am

a hole in a flute

that the Christ’s breath moves through

listen to his

music

“나는

피리에 있는 하나의 구멍입니다.

그리스도의 숨결이 나를 통해 움직입니다.

그의 음악音樂을

들어보십시오.”

나는 오늘 어떤 음악을 연주할 것인가?

사진

<하피즈>

세라믹 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