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 (月曜日) “경외敬畏”


늦은 밤, 마당에 나가 보았다. 오늘 밤엔 날씨가 흐려 별을 감추고 달만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달을 보기 위해서는 나는 눈을 들어 위로 치켜 올려야한다. 내 몸은 지구 중심에 있는 내핵을 향해 90도로 서 있으면서 고개를 들고 머리를 뒤로 밀어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응시해야한다. 인간의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거의 무한대 별들이 밤하늘을 수 놓는다. 밤하늘엔 달과 북두칠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별들은 가만히 관찰하는 자들에게 숨겨진 별들을 하나 둘씩 보여준다. 보면 볼수록 많아지는 것이 별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별들이 존재할까? 내가 볼 수 없다고 별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아무리 성능이 좋은 망원경을 개발한다 할지라도, 하늘의 별은 여전히 우리가 측정하는 것 이상을 훨씬 많이 존재한다. 망원경의 존재를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한 별들만 실제 존재한다고 착각한다. 혹은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최근에 개발된 망원경으로 ‘우주의 끝’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도, 몇 년 지나면, 자신이 관찰한 별들이 모래사장의 모래 한 알이란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망원경은 ‘과학’이 인류에게 가져온 획기적인 세계에 대한 은유다. 나는 망원경을 통해 이전에 존재하리라고 상상하지도 못한 별들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망원경과 같은 과학적인 도구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과학은 바로 이 시점까지 ‘진리’이며 미래에서는 ‘거짓’일 가능성이 많다. 시간이 지나면, 성능이 더 좋은 망원경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과학적 지식은 ‘일시적’이며 ‘가변적’이다. 자신이 아는 과학적인 사실을 ‘진리’라고 주장하는 순간, 그 과학은 종교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종교근본주의와 같은 ‘과학근본주의’라는 수렁에 빠진다.

1990년 4월 미국 항공우주국이 디스커버리 우주왕복선에 실어 상공 610km궤도에 올려 진 허블우주망원경은 이전 지상 망원경으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우주를 관측하였다. 인간은 이제 이 망원경으로 이천억개 이상을 별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허블우주망원경이 본 별들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별들은 아니다. 이 망원경을 능가하는 여러 망원경들이 등장하였다. 특히 2013년 미국 항공우주국은 제임스웹이라는 망원경을 내놓았다. 이것은 2018년 프랑스령 기아나 우주센터에서 아리안5호에 실려 허블을 대치하게 된다. 이 망원경은 자상으로부터 150만km나 떨어진 라그랑주 점 L2라는 곳에 투하되면. 허블망원경보다 7배 집광력을 지녀, 거의 무한대의 별을 관측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웹 망원경도 인류가 얼마 있지 않아 개발될 성능이 더 좋은 망원경과 비교하면 초보적인 수준일 수밖에 없다. 무한한 우주에서 인간이 탐구를 통해 발견한 별들은 유한이며, 그 유한은 무한의 경지에서 보면 거의 무시해도 되는 티끌 수준이다. 이 티끌은 그 모습이 초라해도, 무한으로 가고자하는 인류의 숭고한 노력이다. 과학은 무한하고 신비한 진리에 대한 감탄이며 경외다. 우리가 우주와 생명의 신비를 보면서 가져야할 마음가짐은 무엇인가? 20세기 초, 유럽에 거주하던 한 청년은 우주의 신비를 매료되어 자신이 느낀 경외를 수학공식으로 표현하였다.

1905년 스위스 베른의 특허청에서 일하던 26살 난 한 청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아인슈타인이다. 과학도였던 아인슈타인은 당시 첨단과학의 중심이었던 베를린, 파리, 혹은 런던에서 활동하던 과학자가 아니다. 그는 풍광이 뛰어나고 일상이 평온한 베른에서 다른 사람들이 신청한 특허지원서를 평가하던 공무원이었다. 그에겐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학문적인 환경과 그 분야에 몰입할 수 있는 열정과 한가로움이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아버지는 아들의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여 라이프치히 대학의 빌헴름 오스트발트교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1901년 4월 13일에 보냈다. 아인슈타인 아버지, 헤르만 아인슈타인의 수준 낮은 염치와 미래가 불확실한 취준생 아이슈타인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901년 4월 13일

빌헬름 오스트발트 교수

라이프치히 대학,

라이프치히, 독일

존경하는 교수님! 당신처럼 저명한 교수님에게 자신의 아들 문제로 편지를 보낼 정도로 뻔뻔한 아버지를 용서해 주십시오. 먼저 내 아들 알베르트는 22세라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그는 (대학 졸업후) 직장이 없어 자신을 한없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경력을 쌓아야하는 길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스스로 매일매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는 자신이 가난한 우리에게 부담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우울해 합니다. 그래서 제가 교수님에게 조그만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가능하다면, 아들에게 격려의 말이 담긴 편지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야 내 아들이 삶과 일에 있어서 기쁨을 되찾을 것입니다.

만일 교수님께서 제 아들에게 지금이나 다음 가을학기에 조교자리를 주시면, 저는 무슨 말로 감사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내 아들은 제가 이런 식으로 이상한 수단으로 교수님께 연락드린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교수님을 높이 존경하며 따릅니다.

헤르만 아인슈타인”

오스트발트교수는 아인슈타인 아버지에게 답장을 보내지도 않았고, 당연히 아인슈타인은 조교자리도 얻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의 대학학점 평균도 6점 만점에 4.91로 B-정도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었다. 그는 수업을 빼먹기 일 수였고 출석한다 하더라도 자유분방태도로 교수들에게는 건방지고 실력없는 학생으로 기억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친구 마르셀 그로스만의 도움으로 1902년 스위스 베른의 특허청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그의 특허청 생활도 겉보기에는 실패의 연속이다. 특허청 상사는 1904년에 아인슈타인의 승진을 거부한다. 그는 더욱이 동거를 시작한 물리학자 밀레바 마리치 사이에서 딸이 태어난다. 보통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평범하게 살았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인 이 환경에서 인류역사상 가장 유명한 과학적 성과를 거둔다.

그의 관심은 근본적이다. 그는 남들의 정의한 문제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의심하고 그 기본 전제를 살펴본다. 그런 후, 자신 스스로가 그 안에 산재한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 해결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의 학문은 독창적이다. 그는 자신에게 묻는다. “우주라는 공간을 움직이는 추상적인 원칙은 무엇인가?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을 규정하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물질이란 무엇인가?

아인슈타인은 당연하고 근본적이며 독창적인 질문을 만들고 그것에 집착한다. 그에게 이 질문들은 아직 깨지지 않는 ‘알’과 같다. 이 질문을 안고 소중하게 여기고 자기 삶의 일부다 되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안에서 생명이 태어나기 마련이다. 1905년 그는 자신의 고민을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와 <물체의 관성이 그 에너지 함량과 관계가 있는가?>라는 논물을 발표한다. 볼 것이다. 그의 관심은 공간, 시간,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물질이다. 이 호기심으로, 특허청 직원인 아인슈타인은 당시 과학계의 신으로 추앙받던 갈릴레이와 뉴턴의 가정에 정면 도전하였다. 아이슈타인은 지금 이전에 볼 수 없는 신비한 세계를 보기 위해 하늘에 ‘허블 망원경’을 올릴 셈이었다. 나는 질문을 하는가 아니면 해답을 구하는가? 나는 일상을 보고 놀라는가 아니면 지나치는가?

사진

달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