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8. (火曜日) “진정한 종교심true religiousness”


진정한 종교는 특정 종교에서 발견되는가? 아니면 그 종교가 전달하는 교리에서 발견되는가? 아인슈타인은 초등학교 여학생과의 편지에서. 진정한 종교가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1936년 1월, 뉴욕의 리버사이드 교회 주일학교 6학년인 필리스 롸이트Phyllis Wright)라는 소녀가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주일학교 학생들을 대표해 아인슈타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1936년 1월 19일

존경하는 아인슈타인 박사님께

우리 주일학교 수업에서 질문이 나왔어요. “과학자도 기도하나요?”

우리가 과학과 종교를 둘 다 믿을 수 있는지 묻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과학자들과 다른 중요한 분들에게 편지를 쓰는 중이에요.

우리의 질문에 해답을 바라고 있어요.

만일 박사님이 우리의 질문에 대답해준다면 우리는 영광스럽게 생각할 거예요.

“과학자도 기도하나요? 그리고 한다면 뭘 위해 기도하죠?”

저는 엘리스 선생님 반 6학년입니다. 답장바랍니다.

리버사이드 교회, 필리스“

이 편지를 받고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1934년 1월 24일

필리스에게

네 질문에 되도록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해볼게.

이게 내 답변이야.

과학자들은 인간에게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포함한 모든 일들이 자연의 법칙 때문이라고 믿어.

그러므로 과학자는 사건들이 기도,

다시 말하자면 초자연적인 존재에 기대하는 기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믿지는 않아.

그러나 우리는 자연의 힘에 대한 우리의 실제적인 지식이 완전하지 않아서 결국엔 궁극적인 영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일종의 신앙이지.

이러한 믿음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과학의 성과에 널리 퍼져 있어.

그러나 과학적인 탐구를 진지하게 추구하는 사람은 어떤 영이 우주의 법칙에 드러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지.

그것은 그 사람의 영보다 훨씬 우월한 것이야. ‘

이런 방식의 과학적인 추구는 특별한 형태의 종교적인 감정인데,

이것은 분명히 좀 순진한 사람들의 종교와는 완전히 다르지.

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네. 안녕.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의 답장은 필리스와 그녀의 반 친구들이 알고 싶은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필리스(와 그녀의 주일학교 선생)는 자신의 신앙이 “순진하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에 무시당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이 조심스러운 대답에서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무한한 세계에 대한 과학적인 경외심이 “종교적”이라고 정당하게 불릴 수 있는 숭고한 감정으로 도달하게 된다고 말한다. 아인슈타인의 답장은 필리스 신앙에 대한 무시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을 훨씬 뛰어넘는 자연의 신비에 대한 신앙, 혹은 우주의 법칙에 대한 경외를 표현한 사려가 깊은 반응이다.

그는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만일 많은 언어로 기록된 책들이 도서관에 들어 차 있다면 어린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그 책들을 저술했다는 사실뿐이다. 어린아이는 그 책들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 책에 기록된 언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에게 과학적 탐구는 일종의 신앙이었다. 만일 그러한 모든 것을 관통하는 법칙을 발견했다면, 스피노자도 아인슈타인도 예언자나 성인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과학은 진리를 향한 끊임없는 추구이며, 새로운 진리를 발견한 후, 그것을 과감하게 버리는 용기다. 그가 종교가 추구해야할 숭고한 가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The most beautiful thing we can experience is the mysterious.

It is the source of all true art and science.

He to whom the emotion is a stranger,

who can no longer pause to wonder and stand wrapped in awe,

is as good as dead —his eyes are closed.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입니다.

신비는 모든 진정한 예술과 과학의 원천입니다.

신비라는 감정에 낯선 사람은

그래서 하던 일을 멈추고 경탄하거나 경외심에 싸여 가만히 서 있을 수 없다면,

그는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눈은 닫혔습니다.”

The insight into the mystery of life,

coupled though it be with fear, has also given rise to religion.

To know what is impenetrable to us really exists,

manifesting itself as the highest wisdom and the most radiant beauty,

which our dull faculties can comprehend only in their most primitive forms

—this knowledge, this feeling is at the center of true religiousness.

“삶이라는 신비에 대한 통찰력이

두려움과 연결되면, 종교를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정말 존재합니다.

그것은 최고의 지혜와 가장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아둔한 머리로는 가장 원시적이고 기초적인 모습으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지식, 이 감정이 진정한 종교심의 중심에 있습니다.”

사진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은하수>

라 실라 관측소La Silla Observatory 촬영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