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은 종교를 어떻게 정의했을까? 그가 말한 종교는 과학근본주의자들인 도킨스나 해밀턴과는 다른 신의 모습을 그렸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종교에 관한 중요한 에피소드가 있다. 아인슈타인은 1930년에 미국의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 ‘종교와 과학’이라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그는 영적인 우주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며 ‘우주적인 종교 감정’라는 독특한 표현 사용했다. ‘우주적인 종교 감정’이란 인간 욕망의 덧없음과 자연과 사상의 세계 안에서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는 숭고함과 놀라운 질서를 인식하는 감정 상태다. 이 인식은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말한 내용을 반복한다.
ordo et connexio idearum idem est, ac ordo et connexio rerum
“질서와 생각의 연결은 질서와 사물의 연결과 동일하다.”
아인슈타인은 인간 심리의 세 단계를 종교의 진화를 통해 추적하였다. 첫 단계는 ‘공포의 종교’다. 이것은 원시인들이 기아, 야생 동물, 병, 죽음에 대해 갖게 되는 공포에 의존하는 사회가 가지는 종교유형이다. 자연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종교다. 원시인들은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그들에게 바치는 희생 제사와 간절한 기도와 같은 의례에 의존하는 종교다. 오늘날에도 이것을 공포를 이용하여 종교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두 번째 단계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 발견되는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신에 대한 관념의 종교’다. 인간들은 신을 인간과 유사한 형태로 만들어 숭배한다. 인간처럼 감정을 지닌 신은 사제들을 통해 소통하고,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기준으로 인간들에게 상을 주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고통에 처한 인간을 위로하고 죽은 자들의 영혼을 심판하며, 생전에 신을 믿고 따른 자들에게는 영생을 허락한다. 아인슈타인은 이 두 번째 단계의 종교를 ‘사춘기 종교’라 불렀다. 종교가 아직 성숙의 단계에 들어서지 못했다. 관념의 종교에서 신은 사실 인간이 만든 신이다. 인간들은 신을 절대신이라고 착각하지만, 자신의 욕망과 고상한 신의 모습을 투영하여, 자신이 만든 원칙을 신에게 투영시켜, 그 신을 신봉하는 형태다.
그가 원하는 세 번째, 그리고 궁극적인 종교 경험의 단계는 ‘인간이 스스로 처한 역사적인 순간 속에서 발견한 종교’다. 자기 나름대로 이해해 만든 전통적인 교리를 넘어선다. 인간은 어느 종교에서나 이 교리를 신주 모시듯이 간직하며 점차로 신을 이 교리 안에 감금시키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은 인간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우주와 자연을 통해 신을 탐구한다.
이 신은 ‘인간의 형상으로 만든 신’에 대한 도그마나 교리를 통해 다가갈 수 없는 존재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우주적인 종교 감정cosmic religious emotion’이라고 명명했다. 성서의 예언자들과 다른 종교, 특히 불교의 가르침에서 그 예를 찾았다. ‘우주적 종교 감정’은 아인슈타인의 반 권위적인 본성과 일치했고, 그는 종교의 제2단계에 필수 요소인 사제계급을 생략한다. 아인슈타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종교는 사제나 종교 단체에 의존하기보다는 그 종교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도덕적 책임이 있는 존재가 되고 삼라만상에 숨겨진 신비를 찾는 탐구를 멈추지 않을 때 발견된다.
이 세 번째 단계에서는 종교 집단의 권위가 필요하지 않다. 종교의 기원을를 추적하다 보면 거의 모든 종교는 기존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이 발견한 참신한 영적인 세계를 행동으로 보여준 자들이다. -. 그들은 당시 종교인들에게 ‘이단’이나 무신론자로 낙인이 찍힌 자들이다. 혹은 당시 동료들에 메시아나 성인으로 추대받기도 했다. 위대한 종교의 창시자들이 다 이런 전력이 있지 않은가?
아인슈타인의 이런 구분은 당시 종교인들이나 신학자들을 화나게 했다. 가톨릭신부이며 교수였던 풀턴 쉰(Fulton Sheen, 1895-1979) 박사는 아인슈타인의 주장을 “가장 멍청한 난센스”라고 조롱했다. 그는 빈정대듯이 아인슈타인이게 묻는다.
“이 세상에 은하계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사람이 있는가?..
그는 자신의 우주적 종교(cosmical religion)에 한 가지 실수를 했다. 그는 단어에 ‘s’를 더했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종교를 우주적 종교(cosmical religion)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종교(comical religion)이라고 혹평했다. 당시 <뉴욕 타임스 매거진>은 아인슈타인에 반대하는 종교인들의 반박문을 실었다. 그러나 사제와 유대교회당이 2,500년 동안 유대인을 지탱하게 한 젖줄이라고 생각하는 유대인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의 자숙의 글들도 있었다. 그들은 아인슈타인이 종교의 핵심이라고 표현한 ‘경외와 존경심’이 본질적으로 종교적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뉴욕에 있는 유대 랍비들을 대표하는 나단 크라스(Nathan Krass)는 “아인슈타인의 종교가 교파 안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모든 유대인들은 인정해야만 한다”는 다소 혼돈스럽지만 새로운 종교 이해의 가능성을 열었다. 대부분 보수적인 유대인들은 그의 견해를 부정했지만 신실한 유대인이라면 아인슈타인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 ‘심오하게 종교적인 비신앙인’deeply religious non-believer의 고백은 스피노자의 전통을 이어받아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신앙으로 한 발작 더 나아갔다.
아인슈타인은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하였다.
Science without religion is lame,
Religion without science is blind.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고
과학이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
사진
<비엔나에서 강의중인 아인슈타인>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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