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2.(木曜日) “권력權力”


인간은 일정한 길이를 지닌 무대 위에 올라간 배우다. 그런 무대에 올라 반드시 자각해야할 사실이 있다. 자신의 배역配役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을 모르는 것처럼 초라한 인생은 없다. 그것은 자신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해있는 공동체의 해악이다. 교육이란 자신의 고유한 배역이 무엇인지 깊이 숙고하라는 격려다. 이 교육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객관적인 내용을 숙지하고 암기하는 막무가내가 아니라, 자신이 운명적으로 던져진 사회에서 자신이 최선을 경주할 수 있는 고유한 임무를 저 높이 나르며 아래를 굽어보는 독수리의 눈으로 찍어보는 영민함이다. 우리는 이 관찰을 ‘명상’ 혹은 ‘기도’라고 부른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적당하고 알맞은’ 배역이 있다. 그 배역을 깨달은 자는,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누구를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 배역을 외부의 지적인 자극인 교육과 스승의 영적인 인도를 통해 조금씩 알게 된다.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무이한 배역을 아는 기쁨을 해탈이며 깨달음이다. 인간은 이 기쁨을 통해서만, 현재보다 더 나은 자신으로 변화한다. 지적으로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은 매력이란 카리스마로 장착한다. 매력이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을 자연스럽게 변화시킨다.

자신의 능력과 배역을 모른 사람이 최고 권력을 거머쥐었을 때 비극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게 불행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자기실현을 위한 깊은 성찰과 교육을 통해, 자신에게 어울리는, 그래서 자신을 행복하고 신명나게 만드는 천직을 만난 사람은 얼굴이 편하고 걸음걸이가 사뿐하다. 반면에 주위사람들의 부추김과 타인을 억지로 지배하고자하는 권력의 노예가 된 사람은 그의 언행을 보기가 역겹다. 요즘 그런 사람들이 TV에 자주 등장하여 불편하다.

권력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타락시키는 악마다. 인간이 건강, 음식, 집, 그리고 여흥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할지라도, 행복하지 않다. 타인을 자신의 말로 굴복시키려는 ‘권력’이라는 악마가 그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엑톤 경Lord Acton은 “권력은 타락한다”라고 말했다. 권력은 인간을 끊임없이 유혹하여, 바닥이 없는 낭떠러지로 영원히 침몰시킨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20세기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버트란트 러셀은 권력을 ‘의도된 결과의 생산’이라고 정의하였다. 권력이란 자신의 필요와 욕망을 위해 타인과 그가 속한 세계에 의도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이다. 권력은 가치중립적으로 공공에 해를 끼치거나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권력은 개인의 능력과 다르다. 권력자가 ‘의도된 결과’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따르는 대중을 이용해야한다. 권력자는 대중을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 낸다. 권력자가 타인에 영향을 주는 형태는 폭력, 지배, 강요 혹은 조작을 통한 비도덕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혹은 진선미 교육, 솔선수범 혹은 설득을 통한 대중을 공동선으로 인도할 수도 있다.

권력은 불안과 위험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고통과 무료가 인간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전락시킬 세상에서, 권력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창조한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인류가 해결해야할 궁극적인 문제를 인간의 ‘내재적인 무기력’이라고 설명하였다. 권력욕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기 위해 축적해온 유전자다. 권력이 의식주와 같은 다른 생물적인 필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의식주에 대한 욕망은 중용中庸을 유지해야한다. 너무 많은 음식이나 음료는 병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권력욕은 잠재적으로 끝도 없고 한계도 없다, 알렉산더 대왕이나 나폴레옹은 누구도 누리지 못한 부와 명성을 축적했지만, 밑이 빠진 독과 같은 권력을 더 소유하려고 일생을 소진하였다.

권력은 적당할 때 제대로 작동하여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과도한 권력, 특히 사회와 정치적인 영역의 절대 권력은 타락한다, 만일 사회가 번창하고 구성원 모두를 위한 최선이 되며 소수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않기 위한 법, 규범, 관습 그리고 사회적인 기구들이 존재해야한다. 불행히도 21세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권력이 극소수에 집중되어있다. 극소수 사람들이 문명의 이기인 IT를 통해, 대중의 생각과 언행을 조작하고, 선악의 기준선동적으로 호도하고 결정한다.

현대인들이 처한 이 난점을 풀 해결책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나 자비가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독재자는 그런 감정을 설교하는 종교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혹은 진리가 인간들을 공평하고 자유로운 인간이 될 것이라고 설파한다. 진리는 외치는 상아탑 철학자들의 말은 독재자들의 귀에 소음일 뿐이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니체는 <아침놀>에서 말한다, “진리 그 자체에는 권력이 없다...진리는 권력을 자신의 편으로 유인하거나 권력 편에 서야한다. 그러지 않으면, 진리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것은 인류역사를 통해 충분히 증명되어왔다.”

권력만이 다른 권력을 좌절시킨다. 만일 한 사회가 독재자의 손아귀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자유 편에 서야한다, 그러나 이 권력은 타인들에게 겁을 주고 조작하고 독재자들 옹호하는 권력과는 다르다, 독재자를 이길 유일한 권력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힘을 길러 그 힘을 자유로운 삶을 위해 사용하고 독재의 간섭에 저항하는 것이다.

16세기 프랑스 법률가이자 철학자인 에티엔 드 라보에티는 독재자는 폭력이나 기나긴 투쟁도 없이 쫓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자유와 진리를 추구하는 깨어있는 개인들이 많이 등장하면 된다. 그들이 규정 불이행과 시민 불복종을 실행하며, 비도덕적이며 자유 침해하는 명령을 거부하는 자신의 삶에서 실천이다. 인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대로 ‘도시 안에서 다양한 혜택을 누리며 사는 동물’이다.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혁신을 통해 각자가 자신의 고유한 임무를 발견하고 타인의 다양한 임무를 인정하고 축하하는, 자유와 진리를 추구하며 스스로 주인이 되는 민주시민民主市民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사진

<바이아 별장의 네로 황제>

폴란드 화가 얀 스티카 (1858–1925)

유화,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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