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2.(木曜日) “기근飢饉” (히브리어, ‘라아브’ (רָעָב, rāʿāb))


서양문학의 두 기둥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은, 각자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다르다. 로마 서정시인 호라티우스(기원전 65-8년)다. 그는 <시학>Ars poetica이라는 헬레니즘 서사시 전개방식을 선명하게 설명한다. 그는 서양문학의 전형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예를 들어 이렇게 설명한다:

“트로이 전쟁은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호메로스는 항상 행동하는 장면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사건들의 중간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그는 이 방식을 라틴어 문구로 ‘레스 인 메디아스’res in medias, 즉 ‘사건들의 가운데로’라는 문구로 그 특징을 묘사한다. 서양의 문학작품에서 흔히 등장하는 ‘플래시백’flahback용법이다.

헤브라이즘방식은 다르다. 구약성서의 이야기 형식은, 오히려 독자들의 호기심에 불응하고 불친절하다. 오히려 실타래와 같이 얽혀있는 이야기를 풀 생각이 없다. 독자가 알아서 풀어야한다. 에리히 아우버바흐가 1946년에 저술한 <미메시스: 서양문학의 현실재현>(Mimesis: The Representation of Reality in Western Literature)이란 책에서 히브리 문학의 특징을 ‘침묵속의 웅변’eloquentia ex silentio라고 명명하였다. 헬레니즘 문학은 독자들의 궁금증을 모두 풀어주고 즐겁게 만들어 주지만, 헤브라이즘 문학은 독자들을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여 스스로 흥미진진하게 그 실마리를 찾으라고 유혹한다. 헬레니즘 문학은 산문적이지만, 헤브라이즘 문학은 시적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내가 그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심오한 결을 하나씩 서두르지 않고 보여준다. 그런 이야기들 중에 으뜸은 <룻기>다. 룻기는 4장으로 이루어진 에피소드다.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아직 이웃 나라들처럼 왕권을 확립하지 못한 소위 기원전 12세기경 판관判官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판관’이란 사람들이 마을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함께 살면서 일어나는 갈등들을 약식재판으로 판결해 주는, 그 공동체의 지도자다. 룻기의 저자는 4장으로 이루어진 함축적인 이야기를 통해, 공동체의 안녕과 질서를 구축하는 기반은, 정의가 아니라 배려와 자비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룻기>은 아마도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이스라엘인들이 바빌론으로 포로생활이후, 새로운 유대공동체를 구축하면서, 필요한 시대정신인 포용과 자비를 고취시키기 위한 문학작품이었을 것이다.

나는 1989년 여름 어느 날, 그전 몇 년동안 연마한 히브리어 문법을 적용하기 위해, <룻기>를 히브리 원문으로 읽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나는 고전 히브리어에 심취하여 <룻기> <요나서> 그리고 <시편>을 원문으로 암기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룻기>는 그 원문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이 가진 숨겨진 의미를 조금씩 알려준다. 내가 인생 경험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만큼, 성서 이야기도, 그 만큼 자신이 숨겨왔던 비밀을 하나씩 풀어준다.

<룻기> 1장 전반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판관判官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던 시대에, 그 땅에 기근이 있었다.”

이 문장에서 ‘판관’을 의미하는 ‘쇼페트’(šōpēț)는 고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주변 해양도시국가인 우가리트, 페니키아, 페니키아의 상업 식민지인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널리 사용된 관직으로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사건을 관장하고 판결한다. 판관은 법정에 올라온 문제를,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판결한다. 이스라엘에서 판관시기에는, 아직 십계명이나 <레위기>에 등장한 정교한 법령이 등장하지 않아,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존경을 받는 연장자 혹은 이웃 마을과의 전쟁에서 선봉장에 서는 ‘영웅’이 판관이다. 만일 그 당시 법이 있었다면,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의 왕 함무라비가 제정한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태복수업’同態復讐法을 기반으로 판결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 당시 정의란, 복수였다.

<룻기>의 저자는 4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이야기의 시작을 ‘판관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던 때“로 그 배경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어서 의미심장한 문장을 나열한다. “그 땅에 기근이 있었다.” 이 문장에서 ’그 땅‘이란 좁게는 이 이야기가 전개될 배경이 되는 지역을 의미한다. 혹은 넓게는 인간이 발을 밟고 있는 이 땅,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삼고 있는 일상이란 의미다. 복수와 폭력만이 판을 치는 상황이 ‘기근飢饉’이다,

‘기근’이란 의미를 지닌 히브리 단어 ‘라아브’ (רָעָב, rāʿāb)의 기본 의미는 ‘기근; 배고픔’이란 뜻이다. 라아브는 우리의 일상을 작동하게 해주는 음식이 부족하거나 없는 상황이다. ‘라아브’는 또한 비유적으로 ‘신의 메시지’의 부족을 의미한다. 인간은 신체적으로는 음식을 먹고 살지만,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는 신이 우주, 자연, 그리고 세상에 숨겨놓은 신의 메시지를 알지 못하는 무식이다. 기근이라는, 그 메시지를 모르는 어리석음이며, 그것을 인식하더라도 실천하지 않으려는 게으름이다. ‘신의 메시지’는 경전에 기록된 말이 아니라, 그 말의 세상에 펴져 변혁을 일으키는 ‘사랑’이다. ‘사랑’을 히브리어로 ‘헤세드’ḫésed다. <룻기>를 기록한 저자는 주인공 룻과 그의 남편 보아스의 사랑을 통해 ‘헤세드’가 회복되는 로맨스를 쓴 것이다.

사진

<룻과 보아스의 만남>

유대 프랑스 화가 마크 샤갈 (1887-1985)

리소그래피, 196, 52.5 cm x 38 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