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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1. (水曜日) “준엄峻嚴한 미美”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특징은 ‘자기보전에 대한 본능’이다. 매일묵상은 나의 자기보전을 위한 최선의 본능이다. 개체가 진화라는 장구한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된 이유는, 그 개체가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이다. 각 개체는 유관으로는 볼 수 없는 유전자들이 품고 있는 고유한 정보를 그의 신체를 통해 과감 없이 표현한다. 자신의 현재를 유지하기 위한 생존적인 노력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거기에 적절한 절제와 군더더기 해체가 없다면, 그(녀)는 배타적인 이기심이 조절하는 괴물로 변할 것이다. 교육이란,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이며, 타인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기를 바라는 희망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스웨덴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스웨덴의 화학자, 공학자 그리고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 거부가 된 알프레드 노벨은 1896년 죽으면서, 자신이 남긴 재산의 94%를 기부하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였다. 혜택받은 자들의 이 실천은 선행이 아니라 의무다. 그의 실천으로 인류는 진보하였다. 매해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혜택을 베푼 사람”에게 상을 수여하였다. 노벨상은 1901년부터 다음 다섯 분야를 선정하였다: 노벨 물리학상, 노벨 화학상, 노벨 생리학-의학상, 노벨 문학상, 그리고 노벨 평화상. 1968년 여섯 번째 분야인 ‘경제학’에 첨가되었다. 경제학 분야의 상은 ‘노벨상’이 아니라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국립은행 경제학상’이다.

노벨은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분야를 과학이라고 판단하였다: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노벨 평화상은 스웨덴이 아니라 이웃나라 노르웨이 위원회에서 결정하였다. 인문분야이 유일한 노벨상은 ‘문학’이다. 역사와 철학과 같은 분야가 있지만, 노벨은 ‘문학’분야를 선정하였다. 노벨이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고 개조시키는 가장 원초적인 분야를 철학, 종교, 혹은 예술이 아닌 문학에서 찾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철학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탐구하고 재발견하여, 인간, 인간 사회, 그리고 환경에 대한 깊은 시선과 성찰의 깨달음은 정교한 논리를 갖춘 말과 글로 설명한다. 철학은 언제나 그 사회를 이끄는 리더들의 학문이었다. 철학이 논리적이란 점에서는 장점이지만, 그 내용을 대중에서 쉽게 설득할 수 없기 때문에 동시에 단점이다. 기원전 6세기 소아시아 지역에서 ‘철학’이란 학문에 등장한 후,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 온 세상에 전파되었지만, 언제나 소수 지식인들의 ‘지적인 놀이’였기 때문에 대중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기원전 4세기 서양철학의 시조인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 배심원들의 판결로 독배를 마셔 인생을 마감하였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아직도 엘리트 교육이 아테네 문화와 문명을 유지하는 근간이라고 판단하였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모든 사람들이 예상하고 당연시 된 문인이 아니라, 선정이 된 후에야, 고개를 끄덕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시인이었다. 수상자는 미국 시인 루이스 글뤽Louise Glück (1943-)이다. 노벨위원회는 그녀를 “준엄峻嚴한 미美를 지닌 명백한 시인의 목소리로, 개개인의 존재를 우주적으로 승화시킨다her unmistakable poetic voice that with austere beauty makes individual existence universal”라고 평가하였다. ‘준엄한 미’란,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엄격하고 간결하고, 그래서 당황스럽지만, 진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뤽은 신화와 고전에서 영감을 얻어 감정적으로 강렬하고 야만적일 정도로 정직하다. 다음은 그녀가 1990년에 발표한 <아라랏>(노아방주가 걸쳐 있었다는 산맥)이란 시집에 나오는 ‘첫 기억’First Memory라는 시다.

First Memory

“첫 기억”

Long ago, I was wounded. I lived

오래전에, 나는 다쳤다. 나는

to revenge myself

나를 복수하고 싶었다.

against my father, not

나의 아버지에 대항하여. 그 복수는

for what he was—

그 당시 아버지 때문이 아니었다.

for what I was: from the beginning of time,

그것은 그 당시 나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in childhood, I thought

시간이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생각했다.

that pain meant

아픔이

I was not loved.

내가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It meant I loved.

(그러나) 그것은 내가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글뤽의 시들은 누구나 경험했지만 그냥 지나쳐버린, 가족, 어린 시절, 욕망, 섹스, 죽음, 상실, 정신적인 충격, 외로움, 반려견, 자연과 같은 주제를 다룬다. 일상을 통해, 자아를 각성시키고 변화시킨다. 그런 자아는 1인칭에서 벗어나 2인칭과 3인칭, 더 나아가 동물과 자연으로 나가, 자신 안에 아직 목소리를 낸 적이 없는 또 다른 자아를 일깨워 준엄할 정도로 간결하게 자신의 노래를 부르도록 격려한다. 예술은 이미 알려진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고 심지어 숨어있는 그 무엇에 빛을 비추는 용기다.

글뤽의 시는 지극하게 사적이기에 인류보편적일 수밖에 없다. 가장 사적이 것이 가장 공적이며, 가장 은밀한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선율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시는 고백적이며 자서전적이라 심지어는 인간이 여간 용기를 내지 않고는 진입할 수 없는 심연이다. 그녀는 종종 그리스 신화와 구약성서에서 그 주제를 숙고하여 시를 썼다. 최근 친구를 잃은 나의 심정을 추스르는 시다.

The Triumph Of Achilles

<아켈레우스의 승리>

In the story of Patroclus

파트로클로스 이야기에서

(*아켈레우스의 갑주를 입고 전투에 참가하여 헥토르에게 살해당한 아킬레우스의 친구)

no one survives, not even Achilles

아무도 생존하지 않는다. 심지어 아킬레우스도 그렇다.

who was nearly a god.

아킬레우스가 거의 신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Patroclus resembled him; they wore

파트로클로스는 그를 닮았다. 그들은

the same armor.

똑같은 갑주(갑옷과 투구)를 입었다.

Always in these friendships

이들 우정에서 항상

one serves the other, one is less than the other: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섬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

the hierarchy

위계질서는

is always apparant, though the legends

항상 분명하다. 전설들은

cannot be trusted--

믿을 수가 없다.

their source is the survivor,

그들에 관한 자료가 생존자다.

the one who has been abandoned.

그것은 버려진 자다.

What were the Greek ships on fire

화재가 난 그리스 함선들은

compared to this loss?

이 손실에 비교하여 무엇인가?

In his tent, Achilles

자신의 천막에서 아킬레우스는

grieved with his whole being

온 몸으로 슬퍼하였다.

and the gods saw

그리고 신들은 보았다.

he was a man already dead, a victim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of the part that loved,

사랑했던 분신의 희생자였다.

the part that was mortal.

그 분신은 죽었다.

루이스의 준엄한 미를 지닌 간결한 시가 나를 위로한다. 나는 그녀의 언어처럼, 간결하고 강력하며, 동시에 친절하고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가?

사진

<루이스 글뤽 (1943-)>

2020 노벨문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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