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주 동안 삶에 대한 깊은 시름에 빠졌다. 만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깊이 삶에 대한 애정과 철학을 공유하고, 길가메시와 엔키두처럼, 명성名聲과 영생永生을 찾아보자고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하였는데, 엔키두가 생을 갑자기 마감하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금요일 오전, 양재대로에 있는 서울추모공원에서 누군가를 초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하더니 인생의 도반이 된 친구의 시신을 모신 관이 도착하였다. 그의 영정을 따라 그의 시신을 담은 관이 따라가고,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흐느끼며 뒤 따라갔다. 우리는 모두 화장로로 조용히 걸어갔다. 나는 이 의례에 참여하고 있지만, 이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꿈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를 실은 관은 화장로로 들어가고 1시간동안 그와 나의 인연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기억記憶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최고의 예의다. 기억을 통해, 그 대상이 부활하기 때문이다. 친구는 내 인생의 후반에 만난 절친切親이자 도반이었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지금부터 12년 전, 2008년이었다. 나는 당시 모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최고지도자인문학과정>을 맡고 있었다. 나는 이 과정의 영어이름을 AFP 즉 ‘아드 폰테스 프로그램’Ad Fontes Program이라고 붙였다. ‘아드 폰테스’는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르네상스 운동의 모토로 ‘원천으로’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문구다. 이 과정의 1기에 당시 굴지 기업의 대표이사가 다녔다. 그는 우리 프로그램의 영향을 받아, 그 회사 입사와 진급에 한국사 능력 시험 통과를 필수로 넣었다. 나는 동시에 그 회사 임원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6개월동안 과정을 진행하였다. 나는 그 당시 큰 키에 빨려 들어가는 눈을 가진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당시 그 그룹의 경영연구소 소장이었다.
그는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직업군인이신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학업에 집중하기 힘든 환경이었지만, 그는 서울대학교 화공과를 입학하여 졸업하였다. 그 후 줄 곳 이 회사에 헌신하여 계열사 대표이사로 작년까지 근무하였다. 내가 다시 그와 조우한 시점은, 이제 그가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조용하게 삶을 돌아보려는 찰나였다. 그는 특히 헬렌과 스콧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읽고 정적의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우연히 내 페북에 들어와 매일묵상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와 연락을 시작하였다. 그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위해 정신적인 닻이 필요했다.
작년 12월, 삼청동 한 갤러리에서 나는 그를 11년 만에 만났다. 그는 인생이란 무대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받아, 최선을 다한 평온한 얼굴을 지녔다. 그 평온한 얼굴에는 초초함도 있었다. 자신의 전부를 내어줄 독보적인 자신을 불어낼 소명召命을 찾고 있는 애타는 모습이었다. 그는 내가 살고 있는 가평 설악면에 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월 그로부터 연락이 왔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소식을 전했다. 자신이 한 중견기업의 대표이사로 2월부터 이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연 속에서 조용히 자족하는 삶을 추구하려다가, 운명적으로 치열한 경영세계로 다시 뛰어들었다.
기업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윤을 남기는 일이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은, 그 이윤을 통해 무엇을 이루느냐다. 만일 이윤만 추구한다면,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란 무기로 이기는 전략이 최선이지만, 그 이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다면, 경영철학이 달라질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이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는 이유를 찾은 것 같았다. 그는 기업을 성공적은 운영하고 은퇴하여, 경영자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존경받는 기업인’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강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시작할 ‘서브라임’에 그를 경영과목 강연자로 모실 생각이었다.
그가 떠난 이 시점에, 나는 뭐라고 심정을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전도서> 3장에서 시인이 부른 노래가 생각난다.
1 무엇이나 다 정한 때가 있습니다.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무슨 일이나 다 그 때가 있습니다.
2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습니다. 심을 때가 있으면 뽑을 때가 있습니다.
3 죽일 때가 있으면 살릴 때가 있고 허물 때가 있으면 세울 때가 있습니다.
4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애곡할 때가 있으면 춤출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지금이고 순간이다. 내가 이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지 못하거나, 영원으로 만들려고 몰입하지 않는다면, 부지불식간에 나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지난 8월,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만날 날, 그는 나에게 만년필과 신비한 색을 지닌 잉크를 선물해 주었다. 신비한 몸체를 지닌 그라폰 파버 카스텔 만년필Graf von Faber-Castell for Bentley와 바이올렛-블루violet blue 잉크를 선물로 주었다. 더욱 힘을 내, 매일묵상을 쓰라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인생의 과업은 언제나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다. 친구와의 약속대로, ‘사브라임 2020’에 오는 젊은이들이 배움을 통해 성공하는 인간을 넘어, 스스로에게 존경을 받을 뿐만 아니라, 주위사람들에게, 더 나아가 인류에게 존경받는 인간이 되기 위한 마음의 씨앗이 심겨지면 좋겠다. 꿈에서라도 다시 만나면, 왜 바이올렛-블루 잉크를 주었냐고 묻고 싶다.
사진
<그라폰 파버 카스텔 만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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