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 (金曜日) “문학文學”


나는 35년 전,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어렴풋이 들었던 ‘진리’를 찾는 공부여정을 시작하였다. 진리는 사실 객관적이 아니라 주관적 자기-확신이다. 자신의 최선을 담보할 만큼 강력한 자기믿음이다. 나는 그 당시, 무엇을, 왜, 그리고 어떻게 공부해야할지 몰라, 큰 난관에 봉착해 실의에 빠져있었다. 내가 영어가 서툴러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고, 저의 생각을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글로 선명하게 써 본적이 없었다. 아니, 그런 교육과 훈련을 받아 본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무식했기 때문이다.

나는 육체적으로는 성인이었지만, 지적으로는 어린아이였고 영적으로는 태어나지도 않은 상태였다. 멘토는 나에게 자신의 속주머니에서 책 한권을 꺼내 보여주었다. 윌리엄 스트렁크와 E.B. 화이트의 The Elements of Style이라는 포켓사이즈 조그만 책이다. 이 책이 내 삶의 바이블이 되기까지 수 십 년이 걸렸다. 멘토는 이 책을 매일 저녁 침대 협탁에 놓고 한 조금씩 읽는다고 말했다. 나는 이 책이 몸가짐과 옷가짐, 혹은 예절에 관한 안내서인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 소설가 스티븐 킹이 On Writing이란 책 서문에서,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이 조그만 책을 반드시 읽어야한다고 열 번을 토한다. 그 이유를 요즘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사람이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말과 행동은 자연스럽기 때문에, 제어하고 훈련하지 않으면 허접해지기 일쑤다. 언행을 품격이 있게 만드는 연습이 있다. 바로 읽기와 쓰기다. 읽기를 통해 인류의 성현들을 만나고 나의 언행을 바꾸고 자신만의 인격의 모델을 만들고 글쓰기를 통해, 그 모델을 자신의 정신적인 석판에 새긴다. 읽기와 쓰기를 정결하게 준비시키는 것이 묵상이다. 묵상을 통해 건져낸 생각이 읽기를 통해 상상이 되고 쓰기를 통해 작품이 된다.

2020년, 인류를 엄습한 COVID-19는, 타인과의 경쟁을 통해 승리하는 이기적인 인간이 아니라, 자신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숙고하는 새로운 인류를 요구하고 있다. 자신에게 친절한 인간이 남에게도 친절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신중한 인간이, 타인뿐만 아니라, 동물과 자연까지도 자신처럼 소중하게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교양교육 커리큘럼에서 그 핵심인 읽기와 쓰기를 찾을 수 있다. 카롤링거의 샤를마뉴대제(Charlemagne, 768∼814)는 고대 그리스의 서양교육과목들을 부활시켰다. 그는 사제교육에 한정되었던 배움을 ‘아르테스 리버랄리스’ artes liberalis, 즉 ‘교양교육’ 혹은 ‘인문교육’이란 용어로 설명하고 귀족들과 귀족자제들의 교육으로 확장하였다. ‘트리비움’trivium은 수도원과는 별도로 등장하기 시작한 교육의 기본 커리큘럼이 되었다. 이 교육의 기초가 되는, 그래서 하찮아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교육을 ‘트리비움’이라고 정의했다. ‘트리비움’을 완수한 수련생은 그 다음 단계인 ‘콰드리비움’quadrivium, 즉 ‘네 과목’을 배운다. ‘시간’을 배우는 ‘산수’arithmetic, ‘공간’을 배우는 ‘기하학’geometry, ‘시간과 공간의 조화를 배우는 ‘음악’music, 그리고 ‘초월과 신’을 공부하는 ‘천문학’astronomy이다. ‘트리비움’은 중등교육(초중고) 과정이고 ‘콰드리비움’은 고등교육(대학) 과정이다.

중고등학교 과정인 ‘트리비움’의 기초는 ‘독서’다. ‘논리’는 자신의 생각이 다른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최소도구다. 인간은 논리라는 통로를 통해 소통한다. 논리를 통해, 옳고 그름, 문명과 야만, 깨달음과 아둔함을 구별하던 소크라테스가, 대중의 어리석음을 통해 독배를 마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니 시민을 위한 교육의 핵심을 ‘문학’이라고 여겼다. 인류가 ‘노벨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축하는 이유다.

그는 <시학>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감동시킬 수 있는 ‘비극문학’과 ‘공연’이 아테네 시민들의 정신을 고양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비극은 사실 비극이 다루는 주제나 인물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비극에서 중요한 점은 비극의 내용이 아니라 비극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다. 이 반응이 교육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독자를 자신이 경험하지 못해 알지 못하는 세계로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문학은

자신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극적인 삶을 산 인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들려 준다. 독자는 이 경험을 통해 자신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의 실마리를 찾는다. 읽기와 쓰기는 인간 정신과 영혼개초의 첩경이다. 도반들도 자신에게 맞는 책을 선정하여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일기를 쓰면 좋겠다. 문학文學은 자신의 영혼에 흠모하는 자신의 무니를 수놓은 날개 짓이다.

<독서하는 여인>

네덜란드 황금시대 화가 피터 얀센스 엘린가 (1623–1682)

유화, 17세기 중엽, 75.5 cm x 63.5 cm

독일 뮌헨 알테 피나코텍Alte Pinakothek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