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3. (火曜日) “지배支配”


나는 나를 지배하는가? 나의 생각, 그 생각에서 저절로,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하게 나오는 말, 그리고 생각의 다른 표현인 행동을 관찰하고 나에게 감동적인 언행을 일삼는가? 조절調節이란 이미 내 던진 언행을 주워 담으려는 애처로움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생각훈련을 통해,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나 행동이 초래할 결과를 상상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나의 양심에 비추어 거리낌이 없고, 그 언행이 나에게 감동적일 뿐만 아니라, 내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가는 정확하게 분석하려는 숙고다. 그런 생각훈련을 오래한 사람은, 오랫동안 무술을 수련한 사람처럼, 오히려 침묵한다.

인간은 자신의 언행을 조절할 때, 더 나아가 그것을 지배할 때, 비로소 자립自立하는 인간이 된다. 자립하는 인간은 주위사람에게 구걸하지 않는 인간일 뿐만 아니라, 구태의연한 자신과 그런 자신의 오래된 습관에 굴복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 새로 태어나, 인생을 처음 경험하는 사람처럼, 신중하게 사는 사람은, 매일 아침, 그날 자신이 완수를 시도해야할 임무를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런 임무가 없다면, 인생이 허무하고 낭비이다. 인생이란 무대, 오늘이라는 인생의 첫 번째 막이 올려 졌으나, 무대 위에서 자신이 맡은 배역을 모르는 바보와 같다.

<도마복음서>은 어록 2는 세상에 태어난 인간이 추구해야할 단계와 가치를 설명한다. <도마복음서>는 고대 이집트어의 마지막 단계인 콥트어와 그리스어로 기록되어있다. 다음은 콥트어 원문번역과 그리스어 원문번역이다.

<도마복음서> 어록 2

콥트어 원문번역

“예수가 말했다:

무엇을 찾는 사람은, 그것을 찾을 때까지 찾는 행위를 멈추지 말아야한다.

그들이 그것을 찾았을 때, 당황하여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런 후 그는 (한동안) 혼란에 빠진 상태를 유지하면서 괴로워한다면,

자신들이 발견한 세계를 보고 놀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만물을 지배할 것이다.”

그리스어 원문번역

“(예수가) 말했다.

무엇을 찾는 사람은, 그것을 찾을 때까지 찾는 행위를 멈추지 말아야한다.

그들이 그것을 찾았을 때, 당황하여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런 후 그는 (한동안) 혼란에 빠질 때, 그는 만물을 지배할 것이다.

그가 만물을 지배하면, 평안을 찾을 것이다.”

학자들은 이 두 번역본들 중에서 그리스어 원문을 원형이다. 콥트어 원문은, 당시 영지주의가 초기그리스도교 당국에서 이단으로 몰리자, 로마와 예루살렘으로부터 그 영향력이 덜한 이집트로 전파되어, 고대 이집트어의 마지막 단계인 ‘콥트어’로 예수의 어록을 기록하였다. 콥트어 번역본은 이집트 ‘옥시린쿠스’O라는 장소에서 다 해진 파피루스 조각으로 남아있는 그리스어 원문에 대한 번역일 것이다.

‘콥트어 원문’에는 구도자가 자신이 발견한 진리를 깨닫고 큰 혼란에 빠져 괴로워할 것이라고 기록한다. <도마복음서> 콥트어 필사자는 구도자의 간절한 심정을 강조하기 위해 ‘괴로워한다’라는 표현을 첨가하였다. 반면에 ‘그리스어 원문’은 구도자가 결국 만물을 지배하여 ‘평안을 찾을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콥트어 번역에는 ‘평안을 찾을 것이다’라는 표현을 생략하였다. 영지주의를 신봉하여 로마제국과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박해를 당하고 있는 필사자에게 ‘평안을 찾을 것이다’라는 표현을 비현실적이었다. 그는 이 문장을 생략하고 ‘그는 만물을 지배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간략하게 단락을 마친다.

자신뿐 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에 영향을 주는 환경까지 지배하기 위한 여섯 단계가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추구追求’다. 시간이라는 순간을 사는 인간에게 행복이란 자신이 간절하게 원하는 목표가 있고 그것에 온전히 몰입이다. 목표는 주위사람들이 강요하거나 주위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에 적당하여, 최선을 유발시킬 만큼 매력적인 것이야 한다. 배움이란, 그 목표를 구도자 스스로 찾도록 돕는 격려이자, 그런 배움을 중단하지 않도록 응원하는 도움이다.

인간에게 행복이란, 타인을 억압할 수 있는 권력, 상대적으로 좀 더 편한 환경을 보장해 주는 재물, 혹은 타인의 박수와 환호를 보장해 주는 명성이 일부일 수 있으나 근본적이나 전부가 될수 없다. 이런 것들은, 스토아철학자 에픽테토스의 말대로,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추구할 고귀한 목표를 지닌 사람은 행복하다. 복음서에서는 그런 자를 ‘마음이 가난한 자’라고 칭송한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주변 사람들이 정한 목표가 자신의 목표인줄 알고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지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단계는 ‘인내忍耐’다. 탁월함은 순간에 반짝이는 천재성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하여 구도자 삶의 일부가 된 습관이다. 기원전 6세기 소아시아 에페소스 철학자 헤라클리토스의 말대로 “인간의 습관이 천재성/운명이다”라는 말이 옳다. 구별되고 좋은 습관은 그것을 인내하고 지속하는 사람의 운명을 바꿔주고, 그를 둔재에서 천재로 탈바꿈시켜준다. 좋은 습관은 인내의 결과다. 구도자가 좋은 습관을 훈련할 대상은 일상이다. 숨쉬기, 보기, 걷기, 말하기, 식사하기, 독서하기, 경청하기 등, 그(녀)가 매일 하는 행위를 관찰하여 그것을 수정하고, 수정된 행위를 지속하는 노력이 나를 조금씩 변화시킨다.

세 번째는 단계는 ‘당황唐惶’이다. 구도자가 자신의 힘으로 발견한 진리는 독보적이며 독창적이고, 자신이 이전에 알던 진리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는 망연자실 당황한다.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구도자의 삶을 통해서 발견한 자기-확신이다. 자기-확신은 자신만이 옳다는 건방이 아니다. 진리난 타인에게도 그(녀)가 확신하고 있는 믿음이 있다는 인정이며, 수련을 통해 더 나은 진리를 추구할 것이라는 열린 마음이다. 구도자는 자신이 발견한 진리의 다름 때문에 당황하고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 혼란은 자기-자신이라는 샛별이 탄생하기 위한 바탕이다.

네 번째는 단계는 ‘고통苦痛’이다. 고통이란 자신의 현재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자신을 창조할 때, 당연하게 생기는 불협화음이다. 과거 자신으로부터 탈출하여 미래 자신으로 변모할 때, 파생되는 에너지다. 구도자는 고통을 통해, 미래의 자신으로 변모할 것이다. 고통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의 존재방식이자 변화다. 만일, 그런 고통이 없다면, 그는 화석화된 과거에 머무르는 자다.

다섯 번째 단계는 ‘경이驚異’다. 구도자는 자신이 마련한 망원경으로 세상을 조망하고, 현미경으로 사물을 관찰한다. 그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세계의 존재를 두 눈으로 확인한다. 그런 시선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그를 이해하거나 인정할 수 없다.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세계는, 자신의 시력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자신이라는 선명하고 성능이 좋은 안경을 장착한 수련자는, 자신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세계를 매일 조금씩 발견하여 놀란다. 그에겐 하루는 기적이며 경이의 발견이다.

여섯 번째 단계이자, 마지막 단계는 ‘지배支配’다. 구도자는 자신이 흠모하며 주변사람들에게 감동적인 세계를 발명하여 유유자적한다. 그가 경쟁해야할 유일한 대상은, 과거의 구태의연함을 벗지 못한 못난 자신이다. 범인들은 타인과 소모적인 경쟁을 벌이지만, 현자는 극복해야할 자신과 경쟁한다. 자기-자신이 극복의 유일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흠모하진 자아상을 가지고 있는가? 소유하고 있다면, 그것을 위해 지금 몰입하고 있는가? 그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구도자는, 알렉산더나 진시황보다 위대한 리더다.

사진

<주피터와 테티스>

프랑스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

유화, 1811, 324 cm x 260 cm

액상 프로방스 그라네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