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골 삶은 동물과의 공생이다. 아침묵상과 산책의 동반자인 진돗개 샤갈-벨라, 책상 옆에서 스핑크스처럼 앉아 나를 감시하는 예쁜이가 내 일상의 동반자다. 예쁜이는 4년 전 읍내에서 발견하였다. 샤갈과 벨라의 동의를 얻어 이젠 한 식구가 되었다.
며칠 전 산책을 다녀온 후, 정원 구석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하였다. 짙은 회색모양의 새였다. 가만히 서서 그 새를 응시하였다. 딱새였다. 딱새는 참새목으로 크기가 15cm정도의 작은 새다. 나는 이 딱새가 날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있다. 아마도 비행하던 중에 우리 집과 부딪혀서 기절했을 것이다. 내가 사는 공간은 오래전에 딱새의 비행연습 구간이었을 것이다. 내가 딱새와 그 조상들이 오랫동안 비행하는 길을 막아선 것이다. 나는 딱새를 가만히 쥐고 새장에 넣었다. 물그릇과 옥수수를 으깨 넣어주었다. 입구를 제외하고 검은 천으로 가리고 찬바람이 불어오는 이층 구석에 놓았다.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딱새를 찾아갔다. 새장을 덮은 검은 천을 벗기니 딱새가 횃대 위에서 나를 빤히 쳐다본다. 딱새의 움직임이 어제와 다르다. 나는 딱새가 든 새장을 들고 정원으로 나갔다. 딱새는 나에게 자신을 이 좁은 공간에 감금시킨 이유를 묻는 눈길이다. 딱새는 다시 훨훨 날라 가 버리길 바라는 내 마음을 아는 것 같다. 나는 새장 문을 열기로 결심했다. 새장 문을 열자마자, 딱새는 횃대를 박차고 올라 나르기 시작하였다. 한 순간에 일어났다. 딱새는 비틀거리며, 날개를 퍼덕이더니, 집 옆 야산까지 날아가 버렸다. 나는 이층 베란다에서 딱새를 한참 보았다. 딱새도 나를 한참 보더니 하늘로 치솟아 오르면서 나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딱새가 창공을 가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비행만 하면 좋겠다.
나는 아내에게 이 복음福音을 전해주었다. 나의 간절한 마음이 무명의 새를 다시 나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되는 것만큼 신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러자 아내는 어제 만나 보았던 비참한 여덟 마리 개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아내는 동네 친구 완호(13세) 군을 통해 구조할 개들에 관한 정보를 듣는다. 아내는 어제 완호와 끔찍한 장소에 다녀왔다.
그곳은 읍내를 지나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 탁구장을 지나가면, 거대한 쓰레기 처리장이다. 이 시골동네 고물들과 폐휴지가 모두 쌓이는 장소다. 아내는 그곳에서 플라스틱 상자를 철사로 엮은 가로세로 1.5m 공간에 갇혀있는 여덟 마리 개들을 보았다. 그 안에는 흑구 어미와 흑구 새끼 5마리, 그리고 누가 갖다버린 2마리 병든 백구가 있었다. 사료와 물은 없고, 천지개벽이후 한 번도 청소한 적이 없는, 배설물로 가득한 지옥이었다고 한다. 아내는 완호에게 물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보낸 후, 그 지옥을 청소하기 시작하였다. 아내는 이 개들을 보자마자, 자신의 자식처럼 여겼다.
내가 오늘 아침, 딱새의 새로운 삶에 관해 이야기해도, 그녀의 얼굴에는 그 불쌍한 개들 생각에, 수심이 가득하다. 나는 아내와 함께 이 불쌍한 개들을 구조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잘 알고 지내는 목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차장 옆으로 8마리가 지낼 수 있는 견사를 짓기로 결정하였다. 장마로 소나기가 퍼붓는 가운데, 우리는 그 쓰레기 처리장으로 가고 있었다. 간판이 다 벗겨진 탁구장 입구에 차를 대고 내렸다. 땅은 소나기를 통해 엉망진창이었다.
도착하니,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표정을 한 백구 한 마리가 하얀 철망에 앙증맞은 앞다리를 올려놓고 이리저리 쳐다본다. 하도 울어 눈 밑이 검붉은 색으로 물든 한 달도 되지 않는 슬픈 백구다. 그 옆에는 짙은 초콜릿 털이 수북한 어미 개가 우리를 본다. 이상하게 퉁퉁 부은 흑구의 가슴은 새끼 흑구 5마리와 백구 2마리에게 젖을 주었을 것이다. 흑구 어미는 꼬리를 가끔 흔들고 괜한 하품을 연신하나 어떤 희망도 없다. 수북한 털에는 지네와 구더기로 가득하다. 고통스럽고 무료한 삶이 더 이상 슬프지도 않은 일상이 되었다. 그 옆에는 갈색 털을 지닌 백구가 아내가 어제 두고 간 사료를 먹고 있다.
아내는 몸을 구부려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쓰고 간 우산으로 개집 입구에 놓고 흑구 새끼 5마리를 찾기 시작한다. 이들이 없어졌다. 누군가 아내와 완호가 이곳에 온 사실을 알고 잘 생긴 흑구 새끼들은 빼돌리고 병든 백구 2마리와 어미 흑구만 남긴 것이다. 우리는 이곳을 한참 청소 한 후, 집으로 다시 오는 중이었다. 아내가 말한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면, 그 즉시 실행에 옮겨야 해요. 어제 제가 아이들을 전부 집으로 데리고 오지 않는 것이 후회돼요.” 나는 속으로 상상하였다. ‘어제 아내가 여덟 마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면, 어디서 키운다는 말인가? 집에는 늑대와 같은 진돗개가 세 마리나 있는데.’ 그런 이성적인 계산은 아내의 마음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개들을 가져옵시다.”
우리는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갔다. 우리가 다시 온 것을 안 세 마리 개들은 구세주를 만난 듯, 꼬리를 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이들을 차에 태워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내는 기상천외한 냄새를 풍기고 구더기가 들끓는 어미흑구를 데리고 차 앞자리에 앉았다. 뒷 자석엔 쓰레기 처리장에서 발견한 빈 라면 박스 안에서 두 마리 백구가 불안에 떨고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안도의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날이다. 내가 관여한 다른 동물들이 과거보다 더 나은 개선改善의 여지餘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개선의 여지가 희망希望이다. 천국이란 희망이라는 등불을 들고 차근차근 정진하는 삶의 현장이다. 지옥이란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답보踏步다. 아무리 육체적으로 힘들다 할지라도, 정신적으로 신이 나고 영적으로 고무된다면, 그런 날은 행복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내일 아침부터 샤갈-벨라와 산책하기 전에, 이 세 마리와 산책할 스케줄이 생겼다.
우리 삶에 들어온 개들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흑구 어미는 ‘샤호르Shaḥor’ 그리고 백구 두 마리는 ‘선’Sun과 ‘샤인’Shine이다. ‘샤호르’는 히브리어로 ‘검은 색’을 의미한다. 온몸은 검은 색이고 등은 짙은 초록색인 어미에게 알맞은 이름이다. 백구들은 쓰레기 처리장에서 햇빛을 보지 못해 아직 의기소침한 상태지만, 점점 태양처럼 밝은 웃음을 가지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달하라는 의미에서 ‘선’과 ‘샤인’으로 이름을 붙였다. 어떤 대상에서 이름을 부여하면, 그 대상이 존재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임무가 생긴다. 이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운명적인 일들이 궁금하다. 즐거운 고민과 무거운 책임을 느끼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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